7월 9일 아침 프랑스 리용을 출발한 일행은 알프스로 향했습니다.
이날은 그리 즐거운 기분은 아니었고요(...), 나흘간의 쉼 없는 일정으로 피곤하기도 했지만
몽블랑을 다시 조망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샤모니로 다가갔습니다.
리용-샤모니 간의 도로변에는 익숙한 풍경이 이어졌어요...
사브와와 오뜨 사브와 지역을 지나며 옛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즐거움, 기쁨, 슬픔, 고통, 분노, 희망, 신 과의 이별...
샤모니에 도착하니 알프스의 고봉들은 아직 구름속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네요.
날씨 변화가 큰 곳이니 곧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먼저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점심 메뉴는 퐁뒤(소고기)였고요 다행히 일행들이 좋아했어요...
점심 후 계획했던대로 에귀이 뒤 미디로 향했습니다.
작년 여름 이 케이블카에 큰 문제가 있어서 여러 달동안 정지했었는데
그 덕분에 몽땅베르와 브레방 쪽에서 알프스를 조망할 수 밖에 없었거든요.
(지난번 글에 소개해드렸지요)
올해는 몽블랑과 좀 더 가까운 곳에서 알프스의 고봉들을 만나고 싶었는데
케이블카 정류장에서 바라보니 몽블랑은 아직 구름 속에 있더라고요... @.@
그래도 고도차가 크므로 높은 곳은 날씨가 달라질 수 있어서 일단 올라가보기로 했습니다.
샤모니 마을(고도 1300미터)에서 케이블카를 타면 2300미터 지점의
쁠랑 드 레귀이(Plan de l'Aiguille)를 거쳐서 해발 3842미터의 뾰죽한 봉우리
에귀이 뒤 미디(Aiguille du Midi)까지 갈 수 있습니다.
고도가 높아지며 케이블카 창 밖으로 샤모니 마을이 점점 멀어집니다.
몽블랑 아래 암벽을 뚫어 만든 12킬로미터 길이의 몽블랑 터널(프랑스-이탈리아 간)로
향하는 도로가 멀리 보이네요...
중간 지지대를 통과하며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
2500미터 고도에서 산자락마다 짙은 안개구름이 휘감고 있었습니다,
아니 하늘에서 구름이 산들을 짓누르는 듯 했어요.
보쏭 빙하(Glacier des Bossons)도 끝자락만 보여주고요...
아이구, 쁠랑 드 레귀이를 지나며 안개 속으로 들어왔는데
케이블카를 바꿔타고 에귀이 뒤 미디에 도착하니 싸락눈마저 내리고 있네요 ㅠㅠ
전망대로 나오니 해발 3842미터 지점에 있다는 것을 표시해주는 표지판과
각 방향의 고봉을 소개하는 안내그림들만 덩그러니...
짙은 안개 속에서 식별할 수 있는 물체가 거의 없었어요.
저기 제 뒤로 한여름 몽블랑이 있는데 보이시나요? (안보인다구요? ㅠㅠ)
에귀이 뒤 미디 전망대 위로는 사진과 같이 기상관측소가 있습니다.
이 곳이 에귀이(바늘) 뒤 미디라고 불리는 이유는 이 봉우리가 아주 뾰죽하기 때문이지만
아마도 저 건축물이 바늘 모양이어서가 아닐지...
안개 속에 식별할 수 있는 것은 가까이 있는 바위들과 표지판,
스키 코스가 시작되는 지점과 통신 안테나들 뿐이네요...
통신 안테나 아래로는 까마득한 낭떠러지를 느낄 수 있고요.
그런데 어? 사람들이다... 바로 앞 작은 봉우리에 등반대가 나타났습니다.
3명의 산악인들이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안개 속에서 암벽등반을 하고 있었어요.
갑자기 걱정스런 맘이 들어 그들의 이동을 지켜보았습니다.
우리가 케이블카로 올라온 이 봉우리, 3842미터 높이까지...
대부분 깎아지른 암벽으로 이루어진 이 곳까지 저들은 등반을 한 모양입니다.
에귀이 뒤 미디 부근은 눈조차 쌓여있을 수 없는 가파른 암벽만 있어서요,
발 아래는 아찔한 절벽이 계속되었을텐데요...
야~호~ 장하십니다, 조금만 더 힘내세요, 거의 다 왔어요~~
그들이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며 옛 기억이...
오래전 알프스에서 겪었던 소중한 경험과 산악인들의 추억을 떠올리며
맘속으로 그들을 응원했습니다.
물론 정상에서 푸른 하늘과 알프스 산맥을 보실 수 있으면 더 좋았겠지만
아마 님들에겐 그보다는 동료와 서로 연결한 밧줄에 의지한 채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고
목표를 정복했다는 게 더 중요하시겠지요? 자연에 도전하는 열정...
브라보, 축하합니다!!
그럼, 저도 등산을 잘 하느냐구요? 물론 아뇨~~
전 겁장이라서 아마 위의 삐딱한 사진처럼 아찔하게 생각할거예요,
걸음을 옮기기 힘들 듯... ^^*
오래전 리용에서 학교에 다닐 때 하마트면 산악 철인 3종경기에 출전할 뻔 했었습니다.
학과 대항으로 매년 열리는 행사였는데 울 학교는 프랑스의 그랑제꼴간 대회에서
거의 매년 우승을 했었고요,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포함 아마추어 스포츠를
광적으로 즐기는 학생들이 많았거든요.
산악 철인 3종경기는 '24시간 자전거타기'와 함께 학교에서 해마다 열리는 행사이지만
학과의 명예를 걸고 매년 열심히 준비하는데 한번은 제가 꼭 참여해야 할 상황 @.@
이 경기는 천미터의 암벽등반, 계곡에서 급류타기와 산악자전거 20킬로로 구성되고요
남학생 두 명, 여학생 한 명의 3인이 팀으로 출전해야합니다.
그런데 그 해에는 출전 자격을 가진 여학생이 거의 없었어요... 공과대학이다보니.
몇 주 동안 계속되는 권유, 눈치, 압력, 협박(?), ... ㅠㅠ 친구들 왈
'걱정할 필요 없어, 암벽 등반은 우리가 밧줄로 널 끌어올릴테니,
글구 급류타기는 정말 쉬워서 넌 방향지시만 하면 되거든, ...'
에구 하지만 산악 자전거 이어달리기는? 전 자전거 잘 못타거든요, 게다가 알프스에서??
우여곡절 끝에 출전을 포기하고 남학생 세 명이 나갔는데 준우승을 해서
(우리과가 워낙 월등하게 잘해서 1등을 했지만 여학생 출전자가 없어서 준우승했던거죠)
지금까지도 미안하고 아쉽게 생각합니다. 소중한 경험이 되었겠지만 '겁'이 많아서요...-.-
제가 등반팀을 지켜보는 사이 일부 따라오던 일행들도 모두 어디론가 사라지고
혼자서 에귀이 뒤 미디 구석구석을 천천히 다녀봤습니다.
곳곳에서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 날씨는 여전히 달라지지 않네요.
얼음 동굴 안에도 인기척이 없었습니다. 조용하게 혼자 걸어갑니다...
안개구름 덕분인지 전혀 춥지가 않았는데도 아마 일행들에겐 춥게 느껴졌는지,
아님 고산증으로 좀 피곤했는지 어딘가 실내에 모여있나 봅니다 -.-
얼음동굴을 지나 헬브로네(엘브로네) 케이블카 정류장에 가봅니다.
사실 올해의 샤모니 방문 목적은 여기에서 5킬로미터 떨어진 이탈리아 국경 헬브로네까지
케이블카로 왕복하는 것이었는데... 역시 안개속이어서 이용할 수 없네요. @.@
그림에서 보시는 것 처럼 에귀이 뒤 미디(3842미터)에서 헬브로네(3462미터)까지는
거의 수평으로 중간지지대 없이 연결된 특별한 케이블카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약 5킬로미터(편도 25분)에 이르는 구간을 알프스 산맥의 고공에 매달려있는 셈이지요...
몽블랑과 몽모디 뿐만아니라 제앙 빙하와 메르 드 글라스를 내려다보구요,
당 뒤 제앙부터 시작해서 병풍처럼 펼쳐지는 그랑드 조라스를 조망할 수 있습니다!!!
그랑드 조라스(Grandes Jorasses)에는 특별한 추억을 갖고 있어서
이번 기회에 그 암벽을 바라보며 명복을 빌어드리고 싶었는데 아쉽네요...
(전에 '추억의 단편'에 관련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다른 단체여행객들도 이곳까지 왔다가 그냥가는 모양이네요. 날씨는 바뀔 것 같지 않고요...
암벽 위에 만든 에귀이 뒤 미디 전망대와 휴게소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봅니다.
카페 안에서 지친 모습으로 기다리는 일행들을 찾았습니다.
일부는 벌써 샤모니 마을로 내려갔다고 하고요... 이제 저도 이만 내려가야겠죠? ㅠㅠ
마치 화상탐사선에서 보낸 풍경과 같이 낯선 위 사진들은
내려가며 케이블카 창을 통해 본 발 아래 모습입니다.
마치 헝클어지고 어지러운 제 맘과 같았어요...
쁠랑 드 레귀이에서 갈아타며 보니 저기 산 아래는 구름이 없는 듯...
하지만 역시 알프스는 쉽게 속살을 보여주지 않는군요~
이제 샤모니 마을에서 일행을 모아 버스를 타고 제네바로 향합니다.
창 밖으로 흘끔 올려다본 몽블랑, 안개 속에 여전히 그 자태를 감추고 있습니다.
몽블랑에서 샤모니 마을 바로 위까지 내려오는 거대한 보쏭 빙하도
여전히 그 끝자락만 살짝 보여주고요...
보쏭 빙하 옆 따꼬나 빙하도 끝자락만...
신비한 안개 속에 가려진 그들의 자태를 언젠가 다시 보러 와야겠지요.
제네바로 향하는 길, 여러모로 아쉽고 서운했지만
알프스에서의 추억 또 하나를 머릿 속에 담고 떠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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