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OGRAPHY
1958년 9월 22일 토스카나 주(州)의 Laiatico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내인 Enrica와 자식들인 Amos, Matteo와 가족농장에서 살고 있으며 아버지인 Sandro Bocelli는
'Chianti Bocelli'라고 불리우는 와인을 제조하고 있다.
그가 음악적인 재능을 가졌기 때문에 그의 부모들은 그가 6살
때부터 피아노를 가르쳤고, 후에는 플롯과 섹스폰을 배우게 되었다. 그는 Pisa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였고,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음악을 하기 전에는 1년여 동안 변호사로
활동했다.
31살의 보첼리-1992년에 Zucchero Fornaciari는
그가 발라드에서 오페라의 아리아까지 모든 형식의 음악을 해석할 줄 아는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발탁했다.
앞을 못보는 장애는 그의
음악적인 재능을 가로막지 못하였고,
다른 활동들을 가로막는 장벽을 깰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는 시각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장애가 있었고, 12살 때 축구경기 중의
사고는
그의 시력을 완전히 빼았았다.
가수인 Zucchero는
그를 1992년에 Miserere 앨범 작업에 참여시켰고,
Luciano Pavarotti가 등장하는 세계적인 음반이 되었다.
1993년에 그는 Zucchero의 유럽 투어 연주에 동행했고,
솔로로 Nessum Dorma(공주는 잠 못들고)를 불러서 큰 환호를
받았다.
San Remo 가요제에서의 그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 곳에서 그는 최고의 인상을 관중에게 심어주었다.
1994년 9월, Modena에서 열린 Pavarotti의 공연에 게스트로 초대되었고,
솔로곡을 부르고 Pavarotti, Bryan Adams, Andreas Vollenveider, Nancy
Gustavsson
그리고 Giorgia와 같이 듀엣곡을 불렀다.
그는 클래식계에서 큰 명성을 얻었으며,
오페라와 콘서트 리사이틀 등에서 활동했다.
1994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교황 앞에서의 공연을 비롯해서 국제적인 음악제 등에
많이 참가했다.
1995년 12월에 그는 Al Jarreau, Bryan Ferry, Roger Hodgson와 같이 네덜란드,
벨기에, 독일, 스페인, 프랑스 투어를 했으며, 45만이상의 사람들이 라이브 공연을 보았다.
그의 두 앨범인 ANDREA BOCELLI와 BOCELLI는 벨기에, 독일 네덜란드의 차트에
진입했고, 상당한 기간 동안 인기를 누렸다.
그의 2집인 Bocelli는 이탈리아에서 더블 플레티넘을 기록했고,
벨기에와 독일, 네덜란드에서 역시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그의 노래인 'Con te
Partiro'(Time To Say Goodbye)는 프랑스에서 6주간 1위를 지켰고, 벨기에에서는 12주 동안 1위를 지켰다.
나폴리 전통음악과 유명한 아리아를 혼합한 3집 VIAGGIO ITALIANO가 발매되었을 때,
불과 몇 달만에 30만 이상이 팔 렸다. 그의 앨범 ROMANZA는 서구를 강타했다.
1999년 독일 -
그 앨범의 수록곡들은 소프라노인 Sarah Brightman과 듀 엣으로 부른
"Time To Say Goodbye"처럼 각종 팝으로 소개 되었고,
곧바로 각종 차트에 상위에 올랐으며, 'Con te Partiro'의 싱글 버전은 300만장 이상
팔렸으며, 6개의플 래티넘을 기록했다.
"Time To Say Goodbye"는 이전 의 싱 글 앨범 판매량보다 100만장이상 더 팔렸다.
독일에서 'Time to say Goodbye' 는 14주 동안 1위를 지 켰다.
Romanza 앨범은
판매지역 모두에서 플래티넘을 기록했고,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스위스, 오스트리아 모두에 서 차트 1위와 100만장 이상이 팔렸다. 그가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고, 가장 늦게 앨범이 발매된 영국에서도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Romanza의 성공은 그를 영국에서도 겨우 7일만에 성공으 로 이끌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영자의 결혼할까요(SBS)'의 배경음악 으로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고, 018선전(사랑은 움직 이는 거야)의 배경음악으로 친숙하다.
영혼의 목소리로 알려지는 과정
그는 시력을 잃은 상태에서 굴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선택한다.
그것이 음악이다. 그의 음익에 대한 열정은 남다른 것이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전설적인 테너 프롱코 코렐리를 찾아가 그의 문하생이 된다.
그는 교습비를 마련하기 위해 클럽과 식당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는데
미래 그의 부인이 될 엔리카를 만나게 된 것도 당시의 일이었다.
1992년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록스타 주개로는 자신과 U2의 멤버 보노가 공동 작곡한 작품 "Miserere"의 데모
테입을 만들기 위한 오디션을 열었다.
이 노래에는 주게로와 듀엣으로 노래를 부를 테너가 필요했던 것이다.
주개로는 이미 마음 속에 자신의 친구인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결정하고 있었고,
단지 데모 테입 제작을 위해 테너 가수를 물색 중이었다.
그때 주개로는 안드레아 보첼리를 선택했고
그렇게 제작된 데모 테입은 파바로티에게 들려지게 되었다.
"주개로, 이 친구 누구야?" 파바로티는 깜짝 놀랐다.
"나를 위해 이 곡을 써준 것은 고마우나 이 곡은 그 누구에게도 부탁할 필요가 없네.
이 데모 테입을 부른 안드레아를 능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주개로는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 믿을 수 없을 정도였죠. 그는 다른 테너들이 결코 가질 수 없는 뭔가를 갖고 있어요.
그것은 바로 목소리에 영혼을 불어넣은 능력이죠."
결국 "Miserere"는 주개로의 원래 계획대로 파바로티와 함께 녹음되었다.
이 곡이 유럽 전역에 히트가 되자 청중들은 그의 공연에서
이곡을 라이브로 듣길 희망하였다.
그때 주개로의 공연 스케줄에 맞출 수 없는 파바로티를 대신하여
주개로는 보첼리를 초대하였다.
당시 보첼리는 무명의 가수였지만
주개로는 내심 관중의 반응을 확신하고 있었고 그것은 적중하였다.
보첼리는 주게로와의 공연을 통해 일약 그 이름을
유럽에 알리기 시작한다.
보첼리와 파바로티와의 관계는 이렇게 주개로를 통해 이뤄졌다.
그의 목소리에 감탄한 파바로티는 연말 자선 콘서트에 보첼리를 초청했는데,
여기에는 브라이언 아담스와 같은 팝스타도 대거 참석하였다.
1996년 전유럽 투어인 "Night of
Proms"에는 거물급 팝 스타들이 대거 출연하였는데
여기 초대된 보첼리는 도합 50만명의 청중과 천만명의 시청자 앞에서
그의 매혹적인 소리를 들여주게 된다.
95년도에
그는 Time to say goodbye의 원곡 "Con Te Partiro(그대와 함께 떠나리)"를 불렀고
이에 감동을 받은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프로듀서 마우리오 말라바시는
두 번째 앨범 "Bocelli"를 제작하여
이탈리아에서만 100만장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둔다.
이제는 전 세계를 무대로
1997년 7월 우리나라에 상륙한 보첼리의 첫 인터내셔널 앨범 "Romanza"는 발매되자마자
현재까지 클래식차트 상위권을 기록하며 지칠줄 모르는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이미 보첼리는 95년 블라디미르
페소세예프가 지휘하는 모스크바 방송교향악단,
러시아 아카데미 합창단과 함께 이탈리아인의 여행을 녹음한 바 있는데
이 앨범에는 19세기말, 20세기토 이탈리안들의 대규모 미국이민을 기리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공주는 잠 못 이루고" "여자의 마음" "생명의 양식"등 이탈리아 오페라 아리아와 민요 등을
수록하고 있다. 이는 판매만큼이나 자사의 레이블 이미지를 중시하는 폴리그램 그룹으로서는
보첼리의 클래식 아티스트로서의 자질을 신뢰하고 있다는 점이다.
파바로티의 전폭적인 지원과 이미 증명된 그의
탁월한 역량이 여실히 증명된 본 앨범은
현 테너 기근의 성악계에 "위대한 테너의 탄생"과 "확실한 쓰리 테너의 대안"이라는
모범 답안을 제시한 것으로 간주된다.(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