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ree Opinion

빌리 그레이엄 목사 설교를 듣고

鶴山 徐 仁 2005. 8. 3. 00:52
번 호   6952 조 회   88
이 름   임혜기 날 짜   2005년 8월 2일 화요일
빌리 그레이엄 목사 설교를 듣고
미국의 정신적 지도자, 빌리 그레이엄 목사
*월간조선 8월호



林惠基 在美 소설가

美 뉴욕 거주. 서울 출생. 이화女大 정외과 졸업. 渡美 후 뉴욕 조선일보 칼럼니스트, 뉴욕 한국일보 기자, 뉴욕 한국일보 문화 섹션지 「라이프 타임스」 편집장 역임. 장편소설 좥셋은 언제나 많고 둘은 적다좦, 좥사랑과 성에 관한 보고서좦 등 출간. 그 외 수필집과 번역서 다수.


『「결코」라는 말은 좋지 않아요』

후텁지근하게 찌는 이 여름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전도대회가 뉴욕에서 사흘간 계속되었다. 퀸즈 구역의 플러싱 메도우·코로나 공원은 연일 8만~9만 명의 시민이 집결하여 그의 설교를 들었다. 30분을 넘지 않는 짧은 설교다. 심신이 노곤한 계절, 나태해지고 늘어지는 몸과 마음을 일깨우고 靈的(영적) 거듭남을 촉구하는 老목사의 메시지는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쇠퇴함이 없는 듯하다.

86세의 고령이지만 날카로운 눈매와 진지하고 엄했던 젊은 시절의 표정은 변함이 없다. 머리는 백발이지만 흰 눈썹 밑의 두 눈에는 여전히 압도적인 강함이 서려 있다. 따뜻한 바리톤 음성에는 차고 넘치는 에너지가 담겨 있다. 검은 양복을 입고 단상에 서 있는 모습에서는 이 시대 미국의 선지자, 물질만능 세계의 정신적 지도자로서의 카리스마가 물씬 풍긴다. 일간 신문은 그의 모습이 「놀랍도록 핸섬하다」고 표현했다.

세계 박람회가 열렸던 공원에 설치된 세 개의 대형 비디오 스크린은 가끔 부는 바람에 흰 장발을 날리며 설교하는 老부흥사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마지막 날 설교는 세상과 인생의 끝이 절박함을 경고하며 종말을 위해 준비되어 있는지를 묻는다.

『당신은 준비되어 있습니까? 당신은 예수를 향해 마음을 열었습니까? 당신은 죄를 회개했습니까?』

사람들은 그의 연령과 건강상태로 보아 이번이 마지막 집회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하지만 그레이엄 목사는 「이번이 마지막 집회가 될 것인가」를 묻는 기자에게 『「결코」라는 말은 쓰지 않겠다』고 했다.

『「결코」는 나쁜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결코 알 수 없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23만 명으로 추정하는 참가자들 가운데는 그레이엄 목사의 마지막 전도 유세를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현재 그레이엄 목사의 건강상태는 좋지 않다. 뇌에 물이 차는 증세와 전립선癌으로 고통을 겪었고, 둔부와 골반이 부러져 보조기에 의존해서 걷는다. 대중 집회의 대부분은 그의 맏아들인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가 설교를 맡는다. 이번 뉴욕 전도대회는 『9·11 사태를 겪은 후 세상의 허무함을 배우고 교회를 찾게 된 젊은이들이 많다』는 뉴욕 목사들의 간청으로 이루어졌다.

이번 뉴욕 집회의 총예산은 680만 달러로 책정되었다고 한다. 뉴욕 근교 50마일 이내의 1만2000여 개의 교회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그중 1400개 교회로부터 참가하겠다는 동의를 얻어냈다. 집회에 참여할 각 교회의 목사와 교인들은 43회의 세미나를 가지면서 세부적인 분야를 의논하고 준비해 왔다.

집회 장소인 퀸즈는 어느 곳보다 다양한 민족이 모여 사는 곳이다. 全세계의 모든 민족이 골고루 섞여 있다. 설교는 13개 언어로 동시통역되었다. 6000명의 자원봉사자가 대회 운영을 지원했다.


정치·사회적 이슈 언급 피해

그레이엄 목사는 1957년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첫 뉴욕 선교에서는 공산주의에 채찍을 가하는 발언을 했고, 1991년 센트럴 파크에서 열린 두 번째 설교에서는 운집한 25만 명의 군중에게 마약과 범죄로 유린되는 도시를 구하자고 호소했다. 하지만 그는 특정 정치 노선이나 사회적 이슈들을 지지하거나 비난하는 설교는 하지 않는다.

이번에도 다른 연사들은 9·11 사태의 상처를 언급했지만, 그레이엄 목사는 뉴욕이 받은 재난에 대해 침묵했다. 얼마 전 자동차 트렁크에서 질식사한 소년 세 명의 죽음과 학교 수학여행에서 증발된 소녀의 예를 들어 生의 마감이 늘 가까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현재 논쟁이 되고 있는 줄기세포 연구나 유산과 동성연애, 게이 결혼 등에 관해서도 함구했다. 마지막 복음유세를 하던 날은 맨해튼의 한 구역에서 동성연애자들이 연례 퍼레이드를 벌이는 소란스런 날이었지만 이에 대해서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단상에 서서 어떤 정치이슈에 대해 말한다면 듣는 사람은 분리될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건 복음을 통해 사람들이 일치되는 것입니다』

복음에 치중하는 그의 설교는 단순하고 직접적이다. 이런 단순한 메시지 전달 방법이 깊은 감동을 준다는 것이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모든 것이 시끄럽고 치우치는 세계에서 부드럽게 말하는 그의 설교가 좋다』는 젊은이도 있다. 그레이엄 목사의 마지막 설교는 종말에 대한 경고와 엄포로 막을 내렸다.

『당신들은 앞으로 수많은 해를 살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모릅니다. 오늘이 당신 생애의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르는 겁니다. 성경은 오늘이 바로 그날이라고 합니다. 오늘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유대인들의 분노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설교를 통해 미국의 정신적 지도자로 등장한 시기는 冷戰 시기였다. 『神을 두려워하는 미국이 될 것』을 주창하는 그의 복음은 神의 존재를 부인하는 공산주의 사상과 치열한 대결을 벌이고 있던 시대정신과 맞아떨어졌다. 성서 속의 선지자를 연상시키는 그의 순수한 모습은 그가 「미국의 정신적 지도자」로 입지를 굳히는 데 이바지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뒤를 이을 만한 종교적 지도자가 앞으로 오랫동안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레이엄을 숭고한 종교가로 추앙하는 데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3년 전에, 닉슨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나눈 私的인 대화가 담긴 녹음 테이프가 공개됐다.

이 녹음 테이프에서 그레이엄은 닉슨 대통령에게 동조하여 『유대인들이 대다수의 언론을 장악하고, 외설적 장식으로 망치는 것』을 개탄했다. 이 녹음 테이프가 공개된 후 그레이엄 목사는 당시의 발언을 사과했지만, 그의 명성에 흠집을 남겼다.

전도대회가 끝난 다음날, 뉴욕 타임스 1면에는 위의 사건을 상기시키는 사설이 실렸다. 이는 유대인들이 그레이엄 목사를 용서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