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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군김대위가 군인이 된 사연

鶴山 徐 仁 2005. 8. 1.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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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여군김대위가 군인이 된 사연
작성자 태서니 2005-07-22, 조회 : 161, 추천 : 2 

 인생을 살아가면서 해야 하는 중요한 선택 세 가지는 직업과 배우자, 가치관이라고 한다. 이 중 첫 번째인 직업의 선택은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으로써 뿐만  자아실현의 도구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특히나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선택할 수 있다면, 한층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군인을 직업으로 가질 수 있었던 난 행복한 인생을 살았다고 자부한다. 다시 태어나 기회가 주어진다면 군복을 선택할 것이고 더욱 멋진 군 생활을 하고 싶은 바램이 있다.물론 그럴 기회는 다시 주어지지 않겠지만...

 오늘 뉴스기사에 여군이 되고 싶어서 네 번 시험(4수)끝에 꿈을 이룬 후배들의 이야기가 실린 것을 보았다. 남의 일 같지가 않고 너무 대견스러운 일이다. 나 또한 여군이 되기위해 재수를 한 전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여군이 되겠다고 결심한 것은 중학교 때부터, 절도있고 푸른 제복을 입은 군인의 모습에 매료되어 군인이 될것을 꿈꾸었다. 가족 중에 특별히 군에 연고가 있는 사람도 없었고 더구나 여군이 된다니 처음에 부모님도 걱정을 하셨다. 하지만 한 번 한다면 하는 나의 성격을 익히 잘 알고 계신 터라, 선택에 책임을 진다는 전제하에 허락을 하셨다. 대학때 사진반 서클활동을 했었는데, 그 때 나의 별명이 "인민무력부장"이었다. 인민무력부장은 북한에서 군 서열 최고 직책인데, 일찍부터 난 여군이 되겠다고 공언을 해두었기에 남자동기들이 그렇게 별명을 붙여준 것이다. 심지어 나를 만나면 "부장님,나오셨습니까?"하면서 거수경례를 붙이는 동기나 남자후배들이 있었다.

 여군장교는 대학졸업자나 예정자에게 자격이 주어지기에 졸업 전, 여군지원서를 냈다. 1차는 서류심사로 통과하고, 2차 체력검정도 강인한 체력덕에 거뜬히 합격, 최종 면접시험까지 치르고 난 후, 발표까지 지루한 시간이었다. 내 소망이 간절했던지 입대하여 훈련받는 꿈을 꾸기도 했는데.. 1차 응시에서 낙방을 하였다. 내 능력이 이 정도밖에 안되나 싶기도 하고 실망도 많이 되었다. 이 길은 내 길이 아닌가하고 다른 시험준비를 할까 생각도 해 봤지만 도저히 포기가 되지 않았다. 자존심도 상하고..절치부심하며 1년을 기다렸다. 여군장교시험은 1년에 한 번 뿐이라 재수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다음 해 응시 1,2차는 가볍게 통과, 마지막 관문인 면접시험. 군복을 입고 대위,소령..대령까지 여군선배들이 앉아서 이것 저것 물어봤다. 왜 군인이 되려고 하느냐? 부터 전공관련 질문까지.. 제가 군인이 되고자 한 이유는 남녀평등이 가장 잘 된 곳이 군대이고 (동일계급은 동일한 대우를 받을 수 있기에) 절도있고 규칙적인 군생활과 군복이 좋아서라고 답변했다. 첫 해에 응시한 것을 기억한 한 면접관이 이번에도 떨어지면 어쩌겠냐고 물었다.

 난 거침없이 대답했다."옛 말에 삼세판이라고 했습니다. 내년에 다시 한번 도전해서 꼭 군인이 되겠습니다." 어디서 그런 당돌한 답변이 나왔는 지. 마치 준비라도 한 것 처럼 일사천리로 답변이 튀어나왔다. 이번에 또 떨어지면 안된다는 절박함이 내 잠재의식을 자극한 것처럼 거침없이..  면접관이 씨익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렸다. 감이 좋았다.이번엔 꼭 될 것만 같았다. 합격을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합격통지를 받았다. 3월 o일 용산에 있는 여군학교로 입교하라는 통지였다. 내가 입대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써클 남자동기들이 굉장히 아쉬워했다. 여자동기들은 놀라워하며 꼭 될거라 믿었다고 격려를 해 주었지만.. 지금생각하면 아쉬워했던 남자들이 날 짝사랑했었나 싶은 혼자만의 착각속에 빠지기도 한다.(왠 공주병?)

 입교전날, 남자들은 그 들 나름의 환송식을 한다고 들었다. 과연 여군 김대위의 입대전날은 어땠을까? 써클동기들이 모여 술을 한 잔 나누며 입대축하 겸 아쉬움의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여자동기들은 이왕 군에 간 것 여군 최초의 장군이 되라고 별을 장식한 이쁜카드를 만들어 주었다. (아쉽게도 장군은 못되고 대위계급에서 내 군생활이 끝나 동기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동기들의 열열한 환송과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이튿날 입영열차에 올랐다. 내가 바라던 바라 씩씩하게 빠이빠이하며 걸어나왔는데, 개찰구를 통과하고 동기들을 뒤로 하고 돌아서는 순간 돌연 눈물이 쏟아졌다. 얼른 눈물을 훔치긴 했지만.. 흐린 시야속에 나를 환송하던 동기들의 얼굴이 지금도 선하다. 아마도 당시 내 눈물의 의미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헤어짐의 슬픔이리라.

 입대하고 20주를 열심히 훈련받았다. 빛나는 다이아몬드 소위계급장을 달기 위해..여군훈련소에서의 에피소드는 다음 기회에 꼭 들려줄 것을 약속하며..(너무너무 재밌는 에피소드들이 무궁무진..기대하세요.)

 나의 동기중에는 삼수를 해서 여군이 된 동기생이 있다.  당시 동기들 사이에서 별명이 의지의 한국인이었고, 그녀는 공교롭게도 나의 대학 1년선배로 지금도 열심히 군생활을 하고 있다. 오늘 신문기사 중 삼수를 해서 소위로 임관한 후배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군인이라는 직업은 명예롭고 군인을 바라보는 시선에 존경심이 묻어나게 노력하겠다. 여군이란 선물을 준 조국에 보답하겠다."

 너무 대견스럽고 믿음이 가는 각오이고, 후배가 자랑스럽다.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 꿈을 이룬 그녀들은 분명 행복한 군생활을 해나가리가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물론 군생활 동안 힘든일도 있겠지만 간절히 원하던 꿈을 위해 잘 견뎌내리라. 그리고 값진 선물을 준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 꼭 필요한 인물이 될 것으로 기대해 본다.  "꿈이 없는 자는 죽은 자"라는 말이 있다. 살아있다는 것은 아직 내게 꿈이 남아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의지의 한국인에게  화이팅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