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정은]‘증원 혜택’ 신입생도 동참… 명분 잃은 의대생 수업거부
동아일보 업데이트 2025-03-09 23:122025년 3월 9일 23시 12분 입력 2025-03-09 23:12
김정은 정책사회부 차장
“긴급 상황입니다. OO대학 오늘 1학년 OO명 수업 들었답니다.”
이달 6일 의사·의대생 익명 커뮤니티인 ‘메디스태프’에 올라온 글의 일부다. 의정 갈등이 1년 넘게 이어지면서 의대생들의 수업 거부 역시 장기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25학번 신입생들의 1학기 수업 참여 현황을 파악한 글이 의대생 커뮤니티에 발 빠르게 올라온 것. 지난달 한양대 의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OT)에선 재학생들이 25학번을 대상으로 휴학을 강요한 정황이 나와 교육부가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상태다. 한양대뿐만 아니라 복수의 의대 신입생 OT에서 신입생들에게 휴학을 종용하고 수업 거부의 명분을 강조한 자료집이 배포됐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4일 개강 이후에도 전국 40개 의대는 여전히 ‘개점휴업’ 상태다. 교육부의 ‘의과대학 수강 신청 현황’에 따르면 전국 의과대학 40곳 중 10곳은 1학기 수강 신청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기존 의대생뿐만 아니라 ‘의대 증원 혜택’을 받고 입학한 25학번 신입생들마저 수업을 거부한 것이다.
신입생들이 수업 거부에 동참한 데에는 선배들의 강요와 압박의 영향이 컸다. 서울 소재 한 대학의 총장은 “개강 첫날 예과 1학년 공통교양 과목 수업을 들었던 일부 신입생들이 그날 밤 의대 학장을 통해 수업 불참의 뜻을 알려 왔다”고 했다. 신입생들이 수업에 참여한 걸 알게 된 선배들의 압박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다. 일부 24학번 의대생들은 “우리도 입학 후 얼마 안 돼 수업 거부에 동참했다. 25학번도 동참하라”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와 건양대를 제외한 모든 의대는 1학년 신입생들의 1학기 휴학을 학칙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에 일부 의대에선 재학생들이 25학번들에게 “등록만 하고 수강 신청을 하지 않으면 문제 되지 않는다”는 ‘꼼수 지침’을 내려 논란이 됐다.
의대 증원 혜택을 받고 입학한 25학번은 사실상 수업 거부를 할 명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선배들의 강요에 무릎을 꿇은 모양새다. 이는 예과와 본과 6년, 길게는 전공의 수련까지 통상 10년을 같이 보내는 폐쇄적 집단 구조의 영향이 크다. 선배와 의대생 집단에 찍혀 ‘열외’가 되면 감당해야 할 후폭풍이 너무 큰 탓이다. 때문에 정부가 7일 “3월 말 의대생 복귀 조건하에 내년 의대 정원을 증원 이전인 3058명으로 돌리겠다”고 밝혔지만 의대생 복귀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정부의 발표 직후 이선우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비상대책위원장은 교육부 장관이 의대생들을 협박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이에 더해 이 위원장은 ‘필수의료 패키지 철회’ ‘붕괴된 의료전달 체계의 확립’ ‘24·25학번 교육 파행에 대한 해결’ 등을 해결 과제로 재강조하며 전국의 의대생들에게 일종의 ‘행동 가이드라인’을 던졌다. 때문에 대학가에선 이번에도 의대생 복귀는 쉽지 않아 보인다는 말이 나온다.
정부와의 협상에서 단 하나의 양보 없이 모든 걸 내 뜻대로 쟁취하겠다는 자세는 출구 없는 투쟁만 키울 뿐이다. 국민들 눈엔 신입생들의 학습권까지 불법으로 침해하며 ‘수업 거부 동참’을 노골적으로 강요하는 의대생들의 모습에서 ‘대의명분’보단 ‘이기주의’가 더 크게 비칠 수밖에 없다. 지난한 수업 거부만이 답이 아니다.
김정은 정책사회부 차장 kimj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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