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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몰락하는 김정은 정권을 위해 나팔 부는 사람들

鶴山 徐 仁 2024. 9. 28. 14:16

[朝鮮칼럼] 몰락하는 김정은 정권을 위해 나팔 부는 사람들

좌파 미테랑 정부는

예상과 달리 소련과 대립

북한과도 인권 문제로 수교 거부

좌파의 진짜 가짜 판별법이 있다

민주주의·인권의 엄정한 잣대를

북한에도 적용하느냐 여부

김정은 호응해 '통일 지우기' 나선

국내 좌파들, 부끄럽지 않은가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前 외교부 북핵대사


입력 2024.09.27. 00:15업데이트 2024.09.27. 07:45

지난 19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뉴스1

19세기 유럽에서 형성된 사회주의는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과 1945년 냉전 체제 출범을 거치면서 혁명적 급진 노선을 추구하는 공산주의와 점진적 개혁을 추구하는 사회민주주의라는 양대 산맥으로 분화했다. 냉전 시대 초기 20년간 프랑스 공산당, 이탈리아 공산당 등 서유럽의 거대 공산당들은 소련 후원하에 막강한 세력을 형성했다. 그러나 1974년 독일 사회민주당의 헬무트 슈미트 총리, 1983년 이탈리아 사회당의 베티노 크락시 총리, 1981년 프랑스 사회당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집권에 성공하는 등 개혁적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약진함에 따라 유럽 공산당은 급속히 몰락했다.

같은 뿌리를 가진 사회주의 정당임에도 불구, 유럽 각국의 공산주의 정당과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행태는 확연히 달랐다. 공산주의 정당들은 냉전 시대 내내 원칙도 소신도 없이 소련 공산당의 지시에 맹종하면서 소련 대외 정책의 나팔수 노릇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냉전 시대 후반에 공산당의 위세를 꺾고 유럽 좌파 정당의 신주류로 등장한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을 최대의 가치이자 목표로 설정하는 등 공산당과의 차별화를 명확히 했다. 그들은 그러한 정강 정책에 따라 소련 공산당의 일당독재와 인권침해를 신랄하게 비판했고, 소련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정치적 이익을 추구했던 유럽의 우파 정당들보다 강력하게 소련과 대립각을 세웠다.

그 시절 프랑스 주재 대사관에서 근무한 필자가 겪은 프랑스 사회주의의 실체는 세간에서 막연히 추측하던 것과 크게 달랐다. 좌파 미테랑 정부가 소련과 밀착하리라는 예측과 달리, 프랑스는 인권과 국제 문제를 둘러싸고 사사건건 소련과 대립했다. 중동 테러 지원국들을 두둔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와 달리, 미테랑 정부의 강경한 반테러 정책에 대한 보복으로 파리 시내에서는 몇 달이 멀다 하고 폭탄 테러가 줄을 이었다. 북한이 강력히 요구한 대북한 수교도 불가피한 기정사실처럼 보였으나, 미테랑 대통령은 재임 기간 14년 내내 인권 문제를 이유로 수교를 거부했다. 영국, 독일을 포함한 서유럽 국가 대부분이 북한과 수교한 지금도 유독 프랑스는 북한의 인권 탄압과 핵무장을 이유로 수교에 불응하고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 서유럽 정계에는 크고 작은 수많은 사회주의 정당이 난립하여 이들의 진정한 정체성 파악에 애를 먹었다. 그러다가 3년간의 프랑스 근무가 끝나갈 무렵 진짜 사회주의 정당과 친소련 꼭두각시 정당을 가려내는 아주 쉽고 정확한 방법을 터득했다. 유럽 사회주의의 최우선 가치인 민주주의와 인권의 엄정한 잣대를 프랑스는 물론 미국, 소련, 중국, 북한 등 모든 나라에 동등하게 적용하는 정당은 진짜 사회주의 정당이었고, 무슨 구실로든 같은 잣대를 소련과 공산국가들에 적용하기를 기피하는 정당은 십중팔구 소련에 맹종하는 가짜 사회주의 위성 정당이었다.

이 같은 가짜 감별법은 골수 공산주의자, 몽상적 사회주의자, 사회민주주의자, 친북 주사파, 맹목적 종북주의자, 좌파 기회주의자 등 다양한 이질적 구성 요소가 혼재하는 한국 좌파 진영 구성원들의 정체성을 판독하는 데도 매우 유용한 도구다. 한국 좌파 진영의 감별에서 최우선 과제는, 유럽 사회주의 정당처럼 이념적 가치를 위해 헌신하는 ‘진정한 좌파’와 소련의 나팔수였던 유럽 공산당처럼 오로지 북한을 위해 충성의 나팔을 부는 ‘사이비 좌파’를 구별하는 일이다. 가짜 판별의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들이 사회주의 본연의 보편적 핵심 명제인 민주주의와 인권을 진정으로 신봉하고 행동으로 실천하는지 검증하는 것이다. 특히, 그들이 국내 문제에 들이대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엄정한 잣대를 북한의 민주화와 인권, 탈북자 인권, 중국 인권, 신장위구르 인권 등에도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는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 한국 좌파 진영에는 북한발 대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체제 붕괴와 흡수통일의 공포에 질린 김정은이 별안간 선대의 80년 유업인 통일 과업을 폐지하고 통일 운동 흔적을 모조리 지우기 시작하자, 평생 ‘통일’ 구호로 먹고살던 국내 좌파 수뇌부 일각이 덩달아 일제히 통일 지우기에 나서고 있다. 부끄럽지도 않은가. 어떤 합리적 명분도 해명도 없이 돌연 정반대 방향으로 나팔을 불어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소련의 나팔수 노릇 하다 역사의 심판에 몰락한 유럽 공산당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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