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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집으로 가는 길 (Going home)

鶴山 徐 仁 2024. 8. 26. 20:16

집으로 가는 길 (Going home)

 

 감사 길라잡이 ・ 2024. 8. 16. 6:30

 

[출처] 집으로 가는 길 (Going home)|작성자 감사 길라잡이

 


뉴욕에서 플로리다 海邊으로 가는 버스에 豁達한 세 雙의 젊은 男女가 탔습니다. 乘客이 모두 타자 버스는 곧바로 出發했습니다. 세 雙의 男女는 旅行의 氣分에 醉해 한참을 떠들고 웃어 대다가 時間이 지나자 漸漸 조용해졌습니다.

 

그들 앞자리에는 한 사내가 돌부처처럼 앉아 있었습니다. 무거운 沈默, 鬚髥이 덥수룩한 表情 없는 얼굴--- 젊은이들은 그 사내에게 關心을 두기 始作했습니다. 그는 누구일까? 배를 타던 船長? 아니면 故鄕으로 돌아가는 退役 軍人?

 

一行 中 한 女子가 勇氣를 내어 그에게 말을 붙였습니다. 그에게는 깊은 憂愁의 그림자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葡萄酒 좀 드시겠어요?"

"고맙소."

그는 엷은 微笑를 지어 보이고 葡萄酒를 한 모금 마셨습니다. 그리곤 다시 무거운 沈默--- 그리고 時間이 흘러 아침이 되었습니다. 버스는 休憩所에 섰고 어젯밤 말을 붙였던 女子가 그 사내에게 함께 食事하자고 말했습니다. 그는 수줍은 表情을 보이면서 자리를 함께 하였습니다.

 

食事를 끝내고 다시 버스에 올라탔고, 젊은 女子는 그의 옆자리에 가 앉았습니다. 얼마 後 사내는 女子의 執拗한 關心에 降伏했다는 듯 굳게 닫혀 있던 입을 열고 自身의 이야기를 천천히 꺼내기 始作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빙고'였으며 지난 4年 동안 뉴욕의 矯導所에서 懲役살이 하고 이제 釋放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監獄에 있는 동안 아내에게 便紙를 보냈소. 나는 부끄러운 罪를 짓고 오랜 時間 집에 돌아갈 수 없으니 萬若 나를 기다릴 수 없다고 생각되거나 혼자 사는 것이 苦生된다고 생각되거든 나를 잊어 달라고 했소. 再婚해도 좋다고 했소. 便紙를 안 해도 좋다고 했소. 그 뒤로 아내는 편지(便紙)하지 않았소. 3年 半 동안이나---”

“釋放을 앞두고 아내에게 다시 便紙를 썼소. 우리가 살던 마을 어귀에 커다란 참나무 한 그루가 있소. 나는 便紙에서 萬一 나를 容恕하고 다시 받아들일 생각이 있다면 그 참나무에 노란 손手巾을 달아달라고 말했소. 萬一 아내가 再婚했거나 나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면 손手巾을 달아놓지 마세요. 그러면 나는 그냥 버스를 타고 어디로든 가버릴 거요."라고.

 

그의 얼굴이 그렇게 굳어져 있었던 것은 '거의 4年 가까이 消息이 끊긴 아내가 自己를 받아줄 것인가?' 하는 不安感 때문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그 女子는 勿論이고 그女의 一行들도 이제 暫時 後에 展開될 光景에 對해 궁금해하며 가슴을 졸이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다른 乘客들에게도 傳해져 버스 안은 설렘과 緊張感으로 가득 찼습니다.

 

빙고는 興奮한 表情을 보이거나 窓밖을 내다보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굳어진 얼굴에서 깊은 緊張感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치 그는 이제 곧 눈앞에 나타날 失望의 瞬間을 對備하며 마음속으로 覺悟를 단단히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마을과의 距離는 漸漸 가까워졌습니다. 20마일, 15마일, 10마일--- 물을 끼얹은 듯 버스 안은 靜寂이 감돌았습니다. 自動車의 엔진 소리만이 꿈결에서처럼 아스라하게 일정(一定)한 리듬으로 鼓膜을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乘客들은 모두 窓가로 몰려가 숨을 죽이고 기다렸습니다.

네이버 이미지에서

 

드디어 버스가 마을을 向해 山모퉁이를 돌았습니다. 바로 그때 '와~~~!!!' 젊은이들의 喊聲이 一齊히 터져 나왔습니다. 버스 乘客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소리쳤고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얼싸안았습니다.

 

참나무는 온통 노란 손手巾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20個, 30個--- 아니 數百 個의 노란 손手巾이 물결치고 있었습니다. 或是라도 男便이 손手巾을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칠까 봐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참나무를 온통 노란 손手巾으로 裝飾해 놓은 것이었습니다.

 

如前히 沈默을 지키는 것은 오로지 빙고 한 사람뿐--- 그는 넋 나간 사람처럼 자리에 멍하니 앉아 車窓 밖의 참나무를 뚫어지게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이윽고 빙고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 나이 든 前科者는 乘客들의 뜨거운 歡呼와 拍手를 받으며 버스 앞門을 向해 천천히 걸어 나갔습니다.

 

이 이야기는 美國의 小說家이자 칼럼니스트인 피트 하밀이 뉴욕포스트에 揭載한 'Going home'이란 題目의 글입니다. 이 感動的인 이야기는 1973年 Tony Olando & Dawn이 만든 노래 '오래된 참나무에 노란 리본을 달아주세요.'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d oak tree)가 全 世界的으로 크게 히트를 記錄하면서 모두가 記憶하는 感動 스토리로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노란 손手巾은 ‘容恕와 包容과 사랑의 表現’입니다. 부끄러운 過去를 容恕해 주고 고달픈 歲月을 마다하지 않고 男便을 기다려준 아내의 至極한 사랑입니다.

 

I'm coming home, I've done my time.(나 刑期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If you still want me.(當身이 아직도 나를 願한다면) Tie a yellow ribbon around the old oak tree.(그 오래된 참나무에 노란 리본을 달아주세요.)

 

美國의 心臟部를 强打한 9.11 事件의 被害者들이 마지막 瞬間에 남긴 메시지는 事業이나 會社의 프로젝트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런 말은 한마디도 없었습니다. 人生의 마지막 瞬間에 그들이 남긴 메시지는 하나같이 家族에게 남기는 사랑의 告白이었습니다.

 

"여보, 난 當身을 사랑했어. 當身을 다시 봤으면 좋겠어. 부디 애들하고 幸福하게 살아." 많은 사람이 일에 치여 家族도 잊은 듯 바쁘게 살아가지만 ‘목숨이 1分도 채 남아 있지 않았을 때는 結局 家族을 찾는다.’라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 여보, 나의 아이들아! 그렇습니다. 人生의 가장 本質的인 보람은 일이나 成功이 아니라 家族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들이 아무리 所重하고 價値가 있어도 家族보다 더 重要한 것은 없습니다.

 

2024. 8. 16. 옮겨 온 글입니다

漢字로 誤謬 修正: 中大附屬初等學校 漢字漢文敎育硏究會 李点榮

 

 

[출처] 집으로 가는 길 (Going home)|작성자 감사 길라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