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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칼럼] 끝나지 않는 역사전쟁… 내년 광복절이 더 걱정이다

鶴山 徐 仁 2024. 8. 15.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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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칼럼] 끝나지 않는 역사전쟁… 내년 광복절이 더 걱정이다

 

  • 동아일보
  • 업데이트 2024-08-15 00:432024년 8월 15일 00시 43분 

‘끝나야 할 역사전쟁’ 저자 독립기념관장
광복회-야당은 해임 요구하며 역사전쟁
“친일세력이 나라 지배” DJ사관 언제까지


1935년생인 유종호 전 연세대 교수는 1945년 8월 16일 거리 여기저기에서 흰 바지저고리 차림의 아저씨들이 떼 지어 “좋다! 좋아!” 하면서 덩실덩실 춤을 추며 행진하는 것을 보았다고 ‘나의 해방 전후’(2004년)에 썼다. 충주남산초등학교 5학년 때다.

 

다음 날 운동장 조회에서 교장이 전쟁 끝났으니 이제 방공호 파기 같은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기억은 분명한데 일본 말이었는지 우리말이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다음 날은 대오를 지어 교사들이 준비한 종이 태극기를 흔들며 우리말로 만세를 불렀다. 동네 사람들도 거리를 행진하며 만세를 불렀는데 일본 말로 만세 부르다 처음 우리말로 불러보니 낯선 진정성 같은 것이 느껴지더라고 했다.

기억은 선택적으로 선명하다. 개인의 기억뿐 아니라 국가의 기억도 그렇다. 보통 사람은 각자에게 닿는 의미에 따라 기억하거나 잊어버리지만 국가의 집단기억은 다르다. 권력 의지에 따라 역사가 선별돼 민족 정체성을 굳히고 특정 감정을 키울 수 있다.

분단사관을 가진 진영에선 대한민국을 ‘태어나선 안 될 나라’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남북 분단을 불러온 매국노로 기억하고 가르치려 들었다. 노무현 정부 때는 대한민국 역사를 오욕의 역사처럼 서술한 고교 근현대사 교과서에 맞서 뉴라이트 지식인 모임 ‘교과서 포럼’이 대안 교과서를 내놓기도 했다.

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장은 뉴라이트에 속하지 않았다. 2022년 저서 ‘끝나야 할 역사전쟁’에서 이념을 매개로 국민을 편 가르는 그간의 건국 논쟁을 극복하고 국민 통합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 역사학자다. 부제가 ‘건국과 친일 논쟁에 관한 오해와 진실’인 책을 쓴 그가 뉴라이트라며 역사전쟁 한가운데로 소환됐다. ‘수박’ 멸칭을 만들어낸 더불어민주당 정봉주 최고위원 후보가 개딸들에게 수박으로 몰린 것만큼이나 극단적이고 황당하다.

광복회에선 김형석이 대한민국 건국 시점을 임시정부 수립 연도인 1919년이 아니라 1948년이라고 했다며 임시정부 역사를 폄훼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그렇게 주장하지 않았다. “건국 시점을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1919년 임시정부 수립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탈피해, 1919년의 3·1독립선언에서 1948년의 정부 수립까지의 과정으로 이해했다”고 썼을 뿐이다.

김형석도, 윤석열 정부도 ‘건국절’을 추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종찬 광복회장이 김 관장 임명이 건국절을 추진하는 의도 때문이라며 임명 철회를 요구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독립기념관장 면접 과정에선 일제강점기 우리 국적이 어디냐고도 물었다고 한다. 기이한 질문이다.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의 손자인 1936년생 이종찬은 일제강점기 중국에 살았기에 이 땅의 삶을 모를 수 있다. 유종호는 운동장 조회 때마다 제일 먼저 황국신민(臣民)의 맹세를 외쳐야 했다고 기억한다. 김형석이 “일본”이라고 답하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국권을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을 한 것이 아니냐”고 했는데도 식민 지배를 정당화했다고 매도당한다면, 나라도 억울할 듯하다.

따지고 보면 역사전쟁을 시작한 사람은 야당 지도자 시절의 김대중(DJ)이었다. 1993년 동아일보 광복 48주년 특별기고에서 애국지사들이 귀국해 박대받고 후손들이 가난에 시달린 것은 “미군정 이승만 박사 통치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까지 결국 친일파 세력이 중심이 되어 이 나라를 지배해 왔기 때문”이라고 썼다.

DJ는 그러면서도 “(국내에서) 교육 문화 종교 사회사업을 하며 실력을 양성하게 했던 분들의 공로를 잊어선 안 된다”며 “그중에서 대표적인 분이 (인촌) 김성수 선생”이라고 적었다. “일부에서 사소한 행적을 들어 친일 운운하는데 이런 자세는 재고해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김형석은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에 대해 “잘못된 기술로 매도되는 분들이 있어서도 안 되겠다”고 했다. 그런 김형석을 친일파라고 비판한다면 DJ도 친일파라는 소리나 다름없다.

“먹고살기 힘든 국민들에게 건국절 논쟁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최근 윤 대통령은 맞는 말을 했다. 그렇다고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에 입각할 때 통일 시점이 건국일이 된다”는 대통령실의 설명까지 말이 된다는 건 아니다. 통일이 되기 전까지 우리나라는 미완의 국가라는 의미로 들릴 수 있다.

역대 대통령들도 통일이 광복의 완성이라고 강조하긴 했다. 윤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라는 방향성이 담긴 통일을 강조할 예정이라고 한다. 윤 정부 들어 자유도, 민주주의도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대로 간다면 내년 8·15 경축식이 온전히 열릴지 우려하는 국민을 위해서라도 윤 대통령은 지금, 여기서부터 자유와 민주주의가 살아 숨 쉬는 정치를 보여주어야 한다.

김순덕 칼럼니스트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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