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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기술 유출 심각한데 법원은 늑장 판결, 국회는 늑장 입법

鶴山 徐 仁 2024. 3. 8. 11:26

오피니언 사설

[사설] 기술 유출 심각한데 법원은 늑장 판결, 국회는 늑장 입법

조선일보


입력 2024.03.08. 03:14

경기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 모습. 2023.2.1/뉴스1

SK하이닉스에서 고대역폭 메모리(HBM) 설계 담당으로 일하다 미국 마이크론으로 이직한 연구원에 대한 전직 금지 가처분이 뒤늦게 인용됐다. 2022년 7월 SK하이닉스를 퇴사한 A씨는 경쟁사에 2년간 취업·용역·자문·고문 등의 계약을 하지 않는다는 약정서와 비밀 유지 서약서에 서명했다. SK하이닉스는 A씨가 이를 어기고 이직한 사실을 뒤늦게 알고 작년 8월 전직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는데, 약 7개월 만에 재판부가 받아들였다. A씨가 해외 거주 중이어서 서류 송달 등에 시간이 걸렸다고 하나 기술 노하우가 마이크론으로 넘어가기에 충분한 시간을 줬다.

SK하이닉스는 인공지능(AI) 시대의 핵심 반도체로 꼽히는 HBM 시장 1위 업체다. 재판부는 A씨가 습득한 지식이 새나가면 후발 주자인 마이크론이 사업 역량을 갖출 시간을 줄일 수 있는 반면 SK하이닉스는 경쟁력을 상당 부분 잃게 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 판단이 너무 늦었다. 세계 각국의 반도체 패권 전쟁이 격화되고 일본이 24시간 365일 공사로 2년 만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는 엄청난 속도전이 벌어지는데 가처분 인용에만 7개월이 걸리는 이런 늑장 대응으론 우리 기술을 지킬 수 없다.

최근 5년 새 산업 기술 유출이 적발된 건수는 96건으로, 매년 늘고 있다. 그중 반도체가 38건(40%)으로 가장 많다. 특히 지난해 1년간 적발된 산업 기술의 해외 유출 23건 가운데 15건이 반도체 기술로, 조사를 시작한 2016년 이후 가장 많다. 그런데도 이를 막는 법과 대응 체제는 미비하기만 하다. 퇴사 직원이 핵심 기술을 외국으로 유출하는 것을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알아도 법적 절차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기소돼도 형량이 너무 낮다. 2021년 1심 사건 33건 중 무죄(60.6%)와 집행유예(27.2%)가 전체의 87.8%에 달했다. 2022년 선고한 영업 비밀 해외 유출 범죄 형량은 평균 14.9개월에 불과하다.

지난해 정부가 산업기술 보호를 강화하는 법안을 제출했지만 민주당 등의 반대로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첨단 기술이 국가 생존을 좌우하는 시대에 우리 대응은 너무 한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