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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거부의 산실

鶴山 徐 仁 2024. 1. 14. 15:21

《 거부의 산실 》

삼성, LG, GS, 효성가문을 배출한 진주 승산마을 앞에는 방어산이 있다. 

삼성, 효성은 물론이고 LG · GS의 전신인 금성엔 이름에 모두 별이 들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지독히도 부지런하게 일해서 벌고, 번 것은 쓰지 않았으며,  쓰지 않았으니 자연히 쌓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승산마을 허씨 가문엔 절약에 관한 전설같은 얘기들이 전해 온다. 

‘담뱃대에 담배를 재고 빨기는 하지만, 불을 붙이지 않고 입김만 내뿜었다.’

GS 허만정 창업주의 부친 허준 선생은 모은 재산을 자식과 조상, 동네 주민, 나라의 몫으로 나누는 유지를 내리고, 마을의 궁핍한 사람을 돕는데 7000만 냥을 분배했다고 한다.

구호를 베풀 때도 받는 사람들의 자존심을 생각했다. 

춘궁기에 그저 곡식을 나눠주지 않고 방어산에 있는 돌을 집 앞마당에 옮겨 놓고 곡식을 가져가도록 지시했다. 

노동의 대가로 곡식을 가져가는 것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쌓인 돌이 마치 1만2천봉 금강산을 닮았다고 해서 ‘승산마을 금강산’으로 불린다.

구한 말 승산마을에는 만석꾼 2가구, 5천석꾼 2가구 등 천석꾼 이상 가구가 16가구에 달했다. 

지리적으로 동쪽으로 흐르는 지수천을 따라 비옥한 땅이 많았고, 마을이 바깥으로부터 숨겨져 있어 큰 환란을 피할 수 있었다.

중앙 권력으로부터 떨어져 있고, 남명 조식의 실천주의 유학의 영향으로 재산을 모으는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김종욱진주K기업가정신 재단 부이사장은 “사농공상이 분명한 중앙에서 철저히 소외된 지방이었기 때문에
지방 재력가가 땅을 사 모으는 것도 가능했다”고 했다.


세계를 놀라게 한 재벌들이 한국의 한 마을에서 무더기로 나온 데는 교육의 역할도 컸다.

식민지 암울한 때에 허씨 집안이 땅을 내놓아 1921년 지수보통학교가 설립됐다.

산 너머 함안, 강 건너 의령과 경계를 이루는 이 신식 학교에 주변 인재들이 몰렸다.

이 마을에 살았던 LG 구인회, 의령군의 삼성 이병철, 함안군의 효성 조홍제 창업주가 같이 어울려 운동하고 공부했다.

1980년대 100대 기업인 중 이 학교 출신이 33명이었다고 하니 놀랍다.

이 기적같은 마을 이야기가 궁금해 세계 47국 150여 명이 진주에 모여 국제포럼을 열기도 하였다.

이 마을이 배출한 기업가들이 이룬 매출액은 연간 8백조원에 이른다.

승산마을은 다시 못올 잊혀진 역사가 아니다.

자유로운 기업가 정신을 권장하고 우수한 인재가 모이면 제2, 제3의 승산마을이 대한민국에 탄생할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혹시 대한민국의 어느 곳에서는 제2, 제3의 승산마을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한국인의 DNA 안에는 세계 최고의 우량 유전자가 무궁무진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출처: 한국 네티즌본부 원문보기 글쓴이: (홉박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