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승욱의 시시각각
대통령을 오판한 두 사람
중앙일보 입력 2023.01.30 01:06
서승욱 기자중앙일보 논설위원
솔로몬 재판 진짜 엄마의 용기 있는 불출마. '나경원 사태'의 종점은 이런 결말이었다. 나 전 의원은 지난 25일 회견에서 자신의 결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제 출마가 분열 프레임으로 작동하고 있고 극도로 혼란스럽고 국민께 안 좋은 모습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에 솔로몬 재판 진짜 엄마의 심정으로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출마 결정은 쉬웠을지 모른다. 그러나 불출마 결정은 용기가 필요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2023 업무보고(통일,행안,보훈.인사)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통령실]
불출마가 선당후사의 결단과 용기의 결과물이란 설명이다. 이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않는 사람도 있다. 믿는 사람들은 불출마에 따른 정치적 타격을 감수하겠다는 나 전 의원의 결정을 높게 평가한다. 반대로 믿지 않는 이들 중엔 민주당 출신 신경민 전 의원의 표현이 재미있다. TV에 출연한 그는 '용기 있는 불출마'란 설명이 "뜨거운 아이스커피"란 말처럼 형용모순이라고 했다. 나 전 의원의 불출마는 윤석열 대통령과 척지기 두려워, 윤심(尹心)이 두려워 내린 용기 없는 결정이란 주장이다. 용기 있는 출마는 있어도 용기 있는 불출마는 말이 안 된다고도 했다. 나 전 의원의 '불출마 결단'엔 다양한 평가가 있다. 어쨌든 한 가지 분명한 건 '나경원 사태'가 나 전 의원의 시나리오대로 흘러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윤심 기대했던 나경원의 불출마 멋쩍은 이재명의 영수회담 제안 적당한 타협 없는 대통령 스타일 |
당내 친윤계는 애초에 다른 특정 후보를 밀고 있었다. 지난 5일 오전 '윤핵관 맏형' 권성동 의원이 갑작스럽게 불출마를 선언했다. 세 시간 뒤 친윤계 핵심들이 모여 그 특정 후보에게만 마이크를 허락했던 송파을 당협 신년 인사회는 윤심의 결정적 장면이다. 하지만 나 전 의원은 그날도 "당권에 도전하게 된다면 당연히 저출산위 부위원장직은 내려놔야 하는 게 맞지 않나" "그 자리(국민의힘 대표)에서 더 크게 (윤 대통령을) 도와드릴 수 있지 않나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윤심은 이미 굳어졌는데 이 베테랑 정치인은 여전히 다른 기대감과 가능성을 피력했다. 윤심을 뒤집진 못해도 자신의 높은 지지율이라면 설득이나 타협이 가능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과거의 대통령들이라면 그랬을 수 있다. 중간쯤에서 다른 답을 찾았을 수도 있다. 나 전 의원을 만나 주고, "당신도 열심히 뛰어 보라"고 격려하는, 좋은 게 좋은 그림 말이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현실은 정반대였다. 만나주지도 않았고, 장관급 두 자리에서 나 전 의원을 해임했다. 대통령비서실장까지 나서 "해임은 대통령의 결정"이라고 도장을 쾅 찍었다. 나 전 의원에겐 망치로 맞은 정도가 아니라 핵 공격 수준의 충격이었으리라. 결국 '용기 있는 불출마'든, '뜨거운 아이스커피'든 나 전 의원은 여기서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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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스타일'을 오판한 이는 또 있다. 대선에서 맞붙었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그는 대선 패배 뒤 서둘러 링으로 돌아왔다. 연고 없는 지역의 보궐선거에 출마해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사법 리스크' 우려 속에서도 야당 대표에 곧바로 등극했다. 그리고 영수회담을 연거푸 제안했지만 대통령실에선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 이 대표로선 영수회담을 통해 국정의 카운터파트로 인정받는 자연스러운 투샷이 연출되길 바랐겠지만, 이런 일은 현실에 없었다. 투샷은커녕 여당 대표를 포함한 다자회동조차 없었다. 이 대표와의 만남이 검찰 수사에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 듯하다.
용산 대통령실에선 "검찰총장 때 보지 않았느냐. 윤 대통령에게 적당한 타협이란 없는데, 이 대표나 나 전 의원이 그걸 몰라 당황했을 것"(핵심 참모)이란 해석이 나온다. 사실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지 않는 스타일은 국가 지도자에게 강점도, 약점도 될 수 있다. 하지만 적당히 타협했다면 윤 대통령의 오늘은 없었을 것이다. 앞으로 윤 대통령과 상대할 정치인들은 좋든, 싫든 기존 정치 문법에 없는 새 접근법을 연구해야지 싶다. 나경원, 이재명 케이스는 좋은 반면교사다.
서승욱 논설위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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