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금송아지 신 9:13-21

鶴山 徐 仁 2022. 6. 25. 12:08

금송아지 신 9:13-21

 
 
06월 25일 (토)
   
금송아지 신 9:13-21



13. 여호와께서 또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았노라 보라 이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14. 나를 막지 말라 내가 그들을 멸하여 그들의 이름을 천하에서 없애고 너를 그들보다 강대한 나라가 되게 하리라 하시기로
15. 내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오는데 산에는 불이 붙었고 언약의 두 돌판은 내 두 손에 있었느니라
16. 내가 본즉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어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도를 빨리 떠났기로
17. 내가 그 두 돌판을 내 두 손으로 들어 던져 너희의 목전에서 깨뜨렸노라
18. 그리고 내가 전과 같이 사십 주 사십 야를 여호와 앞에 엎드려서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그를 격노하게 하여 크게 죄를 지었음이라
19. 여호와께서 심히 분노하사 너희를 멸하려 하셨으므로 내가 두려워하였노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 때에도 내 말을 들으셨고
20.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진노하사 그를 멸하려 하셨으므로 내가 그 때에도 아론을 위하여 기도하고
21. 너희의 죄 곧 너희가 만든 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살라 찧고 티끌 같이 가늘게 갈아 그 가루를 산에서 흘러내리는 시내에 뿌렸느니라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 40주야를 금식하며 하나님이 두 돌판에 기록하여 주신 십계명을 들고 내려오다 산 아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범죄 현장을 목격하고는 <그 두 돌판을 내 두 손으로 들어 던져 너희 목전에서 깨뜨렸노라>(17절)고 합니다. 하나님도 <나를 막지 말라>(14절)며 내가 그들을 멸하여 그들의 이름을 천하에서 없애버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리 진노하시고 모세는 또 왜 그렇게 흥분했을까요?


그들이 <여호와께 범죄하여 자기를 위해 송아지를 부어 만들어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도를 빨리>(16절) 떠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출애굽기 32장을 보면 <모세가 그들이 만든 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살라 부수어 가루를 만들어 물에 뿌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마시게>(20절) 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그들이 만든 금송아지 우상을 갈아 마시게 한 겁니다. <목이 곧은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이 만든 우상을 스스로 응징하게 한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임을 당하니라>(28절). 
하나님이 금송아지를 제작하고 숭배하는 일에 앞장섰던 사람들을 무서운 징벌로 심판하신 것입니다. 


렘브란트가 1659년에 그린 <증언 판을 깨뜨리는 모세>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모세가 두 개의 십계명 돌판을 깨뜨리는 형상인데 분노한 모세의 얼굴에 슬픔이 가득한 모습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언제나 자신의 수호신을 두 눈으로 보고 확인하며 거기서 만족과 안식을 누리려고 합니다. 이 시대의 성도들도 마찬가집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우상을 만들고 은밀하게 혹은 노골적으로 그것을 숭배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 시대 성도들의 금송아지 숭배, 물질주의, 배금주의가 훨씬 더 위기적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다 진지하게 고민하고 깊이 성찰해 봐야할 때라고 여겨집니다. 
 
-본문의 내용이 더 자세하게 소개된 출애굽기 32장의 말씀을 한번 정독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우상을 만들지 말라(제3계명)고 하신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든 금송아지는 어떤 우상이었습니까?
 
주님, 타락한 인간의 마음은 심히 부패하여 끊임없이 눈에 보이는 신을 원하고 우상을 만들어 거기에 절하기를 바랍니다. 
부디 금송아지를 갈아마시게 한 모세의 처분에서 우상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를 느끼고 깨닫는 저희들 되게 해주시옵소서.
 이 시대의 성도들도 마음의 모든 우상을 소탕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며 예배하며 살아가도록 성령으로 지키시고 또 인도해 주시옵소서. 개인도, 교회도 금송아지를 만들고 섬기는 맘모니즘에 빠지지 않도록 늘 깨어 근신하는 저희들 되게 해주시옵소서.
 
   
쥐약 먹고 고양이 앞에서 춤추자
 
쥐가 뭐라고 한마디 하자 고양이가 도망쳤습니다. 쥐가 한 말은?
“나 쥐약 먹었다!”
여기서 쥐약은 ‘희생’입니다. 희생하려는 사람 앞에서는 마귀가 힘을 못 씁니다. 이 세상의 많은 분쟁은 “나는 희생하지 않겠다” 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을 때 발생합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에 보면 로마는 건국 이후 500년 동안, 원로원에서 귀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15분의 1로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많은 귀족들이 전투에 참가해 목숨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지도층 자제들이 입학한다는 이튼 칼리지. 이 학교의 큰 자랑이 있습니다. 졸업생 가운데 2,000여명이 1,2차 세계대전에 참가해 조국을 위해 목숨을 잃었다는 점이 그것입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차남 앤드루 왕자는 포클랜드 전쟁에 전투 헬기 조종사로 참가했습니다.
자유인의 최고의 특권은 ‘희생’입니다.
노예는 희생하려 하지 않습니다. 자유인은 기꺼이 희생합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20:24)
 
“간디가 인도 사람들에게 이런 설교를 한 적이 있다.
‘우리 인도인이 쥐와 같다면 영국인은 고양이와 같습니다. 쥐에게 지
혜가 없어서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 없고, 능력이 없어서 고양이와
대항해 싸워 이길 수도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고양이를 쥐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쥐약 먹고 고양이 앞에 가서 춤을 추는 것입니다. 그때
고양이가 반드시 쥐를 잡아먹을 것입니다. 그러면 고양이도 죽고 쥐도
죽으면 우리 인도는 살아날 것입니다.’
여기서 쥐약은 희생임을 밝혀둔다. 희생 앞에 그 무엇도 이길 수 없다.”


고훈 저(著) 「우리가 꿈꾸는 세상(베드로서원, 103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얻는 사람은
중세기의 유명한 철학자 루소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향해 
“도대체 교회를 보면 이상해. 교회에 가보면 
해결이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충성 딜레마에 빠져 있어.
모두가 거기에 빠져 하나님 나라만 찾고 있단 말이야. 
이처럼 하나님 나라만 찾고 충성하다가 
어떻게 세상나라의 훌륭한 시민이 될 수 있겠는가?”
라고 빈정거렸습니다.
이에 대해 캠브리지 대학의 C. S 루이스 교수는
“하늘을 겨냥하라. 그러면 땅을 덤으로 얻게 될 것이다.
 땅을 겨냥하라. 그러면 어느 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정필도 목사의 ‘믿음의 사람의 가치관’에서-


자신이 고통과 환난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는 것은 
겉 사람인 육신은 잠시 뿐이고 쇠약해지나 
영혼의 속사람은 영원하며 날로 새로워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겉 사람은 대체로 
칠팔십 년 살다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지만, 
우리의 속사람은 절대로 죽지 않습니다. 
천국의 영생복락을 누리든지 아니면 
지옥에 가서 영원히 고통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속사람, 즉 영혼이 잘 되어야합니다.
영혼이 잘되면 그 외의 모든 복이 다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얻는 사람은 세상도 얻게 되나, 
그 나라를 잃는 사람은 세상도 다 잃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을 먼저 구하면 땅의 것은 덤으로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