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고난을 보시다 왕하 14:23-29
05월 25일 (수)
이스라엘의 고난을 보시다 왕하 14:23-29
23. 유다의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 제십오년에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사마리아에서 왕이 되어 사십일 년간 다스렸으며
24.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2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영토를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 26.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고난이 심하여 매인 자도 없고 놓인 자도 없고 이스라엘을 도울 자도 없음을 보셨고 27.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의 이름을 천하에서 없이 하겠다고도 아니하셨으므로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손으로 구원하심이었더라 28. 여로보암의 남은 사적과 모든 행한 일과 싸운 업적과 다메섹을 회복한 일과 이전에 유다에 속하였던 하맛을 이스라엘에 돌린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9. 여로보암이 그의 조상 이스라엘 왕들과 함께 자고 그의 아들 스가랴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유다의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 제십오년에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사마리아에서 왕이 되어 사십일 년간 다스렸으며>(23절).
여러보암 2세는 이스라엘의 왕들 중 영토 확장에 가장 성공한 통치자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가장 골치 아픈 적국이었던 아람이 앗시리아의 침공을 당해 수도 다메섹까지 정복되는 틈을 타 여로보암 2세는 지난 날 잃어버렸던 이스라엘 영토를 모조리 되찾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역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24절)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여러보암이 이스라엘 영토를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25절). 우리는 이 구절을 통해 요나 선지자의 활동 시기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즉 그는 B. C. 780년경 활동했던 사람으로 호세아, 아모스와는 동시대며, 미가보다는 앞선 세대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본문을 통해 성도들은 결코 겉으로 드러난 외형적인 번영이나 업적으로만 그 시대의 흐름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여로보암은 41년이라는 긴 세월을 통치하였고, 또 영토도 크게 확장하는 업적을 이루었지만 그것은 결코 하나님의 축복 때문이 아니라 그의 죄를 오래 참으신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긍휼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외형적인 번영이 주어질 때가 바로 죄악과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의 인내하심과 은헤에 감격해 돌이키며 회개해야 할 때임을 깨닫는 지혜를 발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직면한 현실의 어려움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 원인을 진단하는 과정에서부터 책임의 소재를 분명하게 가려 냉정한 자기반성을 해야 옳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의 이름을 천하에서 없이 하겠다고도 아니하셨으므로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손으로 구원하심이었더라>(27절). 여로보암의 개인적 능력이나 그를 보좌하는 신복들의 탁월한 술수 때문이 아니라 여로보암을 통해 죄인들인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나타내셨다는 말씀입니다. 부디 과거 이스라엘의 그 뼈아픈 체험이 오늘 우리들의 인생살이에도 두고두고 귀한 일깨움으로 남길 빕니다. - 본문의(23절) 여로보암 왕을 왜 <여로보암 2세>라고 할까요(왕상 12:20)?
- <요나>(25절) 선지자에 대해 간략히 적어보십시오(욘 1:1-2). - 본문 25절에 나오는 <아라바 바다>란(민 34:12, 신 3:17, 4:49, 수 3:16)어디를 말할까요? 주님, 여로보암 시대의 번영은 여로보암의 악함과는 관계 없이 온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승리가 곧 그 왕이나 백성들의 삶을 하나님이 인정하셨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그 백성들로 하여금 본질적인 소명으로 돌아오게 하시려고 베푸시는 하나님의 새로운 초청을 의미한다고 봐야 옳은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언제나 인내하시며 당신의 선하신 뜻 가운데로 복귀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기대에 늘 바르게 응답하며 사는 저희들 되게 해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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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죽음을 흔드는 손'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 간에 이뤄진 다섯 차례의 대국에서 우
리는 ‘바둑판을 흔드는 손’ 을 만나면서 다들 충격을 받았었다. 그로부터 4년 뒤, 이번에는 ‘죽음을 흔드는 손’ 으로 다가온 인공지능을 만나며 우리 모두 다시 한번 큰 충격을 받았다. 이미 세상을 떠나 고인이 된 가수를 무대 위에 다시 세워서 신곡을 부르게 한 이 공연 영상은 바라 보는 이의 입장에 따라 다양한 반응과 파장이 뒤따를 수 있다.” 김명주 저(著) 《AI는 양심이 없다》 (헤이북스, 15쪽) 중에 나오는 구 절입니다. 죽은 가수가 인공지능의 기술로 신곡(新曲)을 부른다면 그 가수의 팬 들은 열광할 것입니다. 반면에 오랜 기간 수습 훈련을 받아온 가수 지 망생들은 다시 부활한 선배 가수와도 경쟁을 해야 되기에 큰 부담일 것 입니다. 이러한 ‘디지털 부활’ 뿐만이 아닙니다. 인공지능은 삶과 죽 음에 대한 하나님의 원리를 흔들 수 있는 문제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조만간 인공지능은 디지털 부활을 통해 인간의 죽음을 흔들기 시작할 것이다. 이처럼 ‘죽음을 흔드는 손’으로 인공지능을 활용하기 시작 하면 곧이어 윤리적이며 법적인 논쟁을 피할 수 없게 된다.” (25쪽) 인공지능에 의한 ‘디지털 영생’을 넘어 완전히 다른 차원의 ‘생물 학적 불멸’‘생물학적 영생’이 가능하다는 주장도 솔솔히 나옵니다. 죽는 것은 하나님이 정해 놓은 원리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히9:27) 그러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주장대로 ‘호모 데우스(神)’가 되어 가는 인간은 죽는 것을 거부해 가기 시작합니다. 고대 중국의 진시황이 찾던 불로초(不老草)를 현대 과학의 힘으로 이루려 합니다. 과학은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일반 은총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스도인
들은 과학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더불어 과학이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 하지 않도록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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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박국 3장 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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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희생과 노력이 있어야
술 많이 마시는 주정뱅이 아들은 술 먹는 아버지를 비판하고
싫어하면서 자기도 술꾼이 된다는 것을 아시라 돈 좋아하는 아버지에게 수전노 아들이 탄생하고, 음란한 사람의 지식이 음란한 짓을 하는 것이다. 도적질하고 사기하는 부모에게서 그런 자식이 태어난다. 그러나 확고한 믿음을 가진 경건한 부모에게서는 믿음의 사람이 생기는 것이다. 그야말로 콩 심은 데서 콩 나고 팥 심은 데서 팥이 난다. 자식을 위한 지혜와 상식을 초월한 현명한 판단, 어떤 자식도 거역할 수 없는, 위엄 있는 부모가 되어 자식을 잘 기르고 싶으신가? 진실한 삶, 성령의 능력, 경건, 사랑의 생활이 답이다. -가장 낮은 자의 설교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에서- 공부만 잘한다고 재능만 뛰어 나다고 좋은 자식이 아닙니다. 인격, 믿음, 이상과 꿈, 사랑, 감사할 줄 아는 마음, 열심, 선함, 지혜와 능력, 건강, 사회성, 신령한 생활, 그야말로 부모가 아니면 할 수 없고, 현명한 부모가 아니면 더 더욱 할 수 없는 생명의 희생과 노력이 있어야 한사람, 쓸만한 인물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에게 주신 자식은 장사의 수중에 있는 화살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허공에 자식을 팽개치지 마십시오. 자식을 위해 부모가 얼마나, 어떻게 힘을 쓰며 어떤 방향을 잡았는가에 따라 자식의 평생이 좌우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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