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아마샤 왕하 14:1-9

鶴山 徐 仁 2022. 5. 23. 08:27

아마샤 왕하 14:1-9

 
 
05월 23일 (월)
   
아마샤 왕하 14:1-9



이스라엘의 왕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 제이년에 유다의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왕이 되니
2. 그가 왕이 된 때에 나이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호앗단이요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3. 아마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는 같지 아니하였으며 그의 아버지 요아스가 행한 대로 다 행하였어도
4. 오직 산당들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5. 나라가 그의 손에 굳게 서매 그의 부왕을 죽인 신복들을 죽였으나
6. 왕을 죽인 자의 자녀들은 죽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함이라 곧 여호와께서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자녀로 말미암아 아버지를 죽이지 말 것이요 아버지로 말미암아 자녀를 죽이지 말 것이라 오직 사람마다 자기의 죄로 말미암아 죽을 것이니라 하셨더라
7. 아마샤가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 명을 죽이고 또 전쟁을 하여 셀라를 취하고 이름을 욕드엘이라 하였더니 오늘까지 그러하니라
8. 아마샤가 예후의 손자 여호아하스의 아들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에게 사자를 보내 이르되 오라 우리가 서로 대면하자 한지라
9.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유다의 왕 아마샤에게 사람을 보내 이르되 레바논 가시나무가 레바논 백향목에게 전갈을 보내어 이르기를 네 딸을 내 아들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라 하였더니 레바논 들짐승이 지나가다가 그 가시나무를 짓밟았느니라
 
<아마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는 같지 아니하였으며 그의 아버지 요아스가 행한 대로 다 행하였어도 오직 산당들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단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3-4절).
남왕국 유다의 제9대 왕인 아마샤는 마치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한 것 같았지만 실은 온전한 마음으로 행한 게 아니었을 뿐 아니라(대하 25:2),말년에는 우상 숭배에 빠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에는 적당주의가 통용될 수 없습니다. 


아마샤와 그의 아버지 요아스의 공통점은
① 처음에는 둘 다 여호와께 열심이었다는 것
② 그러나 나중에는 둘 다 우상을 숭배했다는 것(대하 24:18, 25:14)
③ 선지자들의 책망을 거부했다는 것(대하 24:19, 25:16)
④ 배반자에 의해 피살당했다는 것
⑤ 적군에게 성전의 많은 보물들을 내주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샤가 예후의 손자 여호아하스의 아들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에게 사자를 보내 이르되 오라 우리가 서로 대면하자 한지라>(8절).
에돔과의 싸움에서 승리한(7절) 아마샤는 그동안 억눌려 왔던 북이스라엘에게서 벗어나고자 이렇게 도전장을 낸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외적인 이유이고 형제국인 이스라엘에게 도전하는 것은 하나님 뜻에도 합당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아마샤의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유다의 왕 아마샤에게 사람을 보내 이르되 레바논 가시나무가 레바논 백향목에게 전갈을 보내어 이르기를 네 딸을 내 아들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라 하였더니 레바논 들짐승이 지나가다가 그 가시나무를 짓밟았느니라>(9절).
<가시나무>는 유다를, <백향목>은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가시나무가 갑자기 교만하여 백향목에게 딸을 달라고 한 것은 동등한 신분일 때만 성사될 수 있었던 당시의 혼인 풍습상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전혀 분수에 맞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가시나무>는 비천한 신분, 불신앙, 심판, 고난을 <백향목>은 고귀한 신분에 영광, 의인의 번영, 아름다움 등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연히 지나가던 레바논의 들짐승에게 가시나무가 짓밟혔다는 것은 가시나무인 유다가 북이스라엘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북이스라엘 요아스 왕의 이런 비유는 유다의 아마샤의 비위를 몹시 상하게 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의 계획과 준비, 그리고 방식이 신앙의 힘보다 앞서게 되면 그 사람의 가슴 속에는 그 불완전의 틈새를 비집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이 자리를 잡습니다. 
아마샤도 결국은 그렇게 해서 실패하고 맙니다. 
 
- 역대하 25장에서 <다윗과는 같지 않았던>(3절) 아마샤의 죄악들을 확인해 보십시오.
- 옛 이스라엘 지도에서 <욕드엘>(7절)을 찾아보십시오.
- <레바논의 백향목과 가시나무> 비유(9절)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적어보십시오.
 
주님, 자신이 받은 은혜의 원천에 대해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하나님의 은총을 멸시하는 것이자 관계 회복에 이르는 길을 외면하는 결과를 가져올 뿐입니다. 
유다의 왕이된 아마샤는 에돔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자 그 여세를 몰아 북이스라엘에까지 도전장을 냈다가 결국은 레바논의 들짐승에게 짓밟히는 꼴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저희로 하여금 감사와 믿음, 그리고 겸손과 구원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덕목들임을 깊이 깨닫게 해주시옵소서. 
 
   
마치 주님을 대하듯 하면
 
“아프리카에는 ‘우분투’ 라는 말이 있습니다.‘우리가 있음으로 내가
있다’는 의미를 가진 단어라고 하지요. 서로를 묶어 태풍을 견디는 항
구의 배처럼, 촘촘히 다가서서 눈보라를 견디는 황제펭귄처럼,
‘우리’는 더불어 극복해 내며 살아갑니다.”


김미라 저(著) 《위로》 (샘터, 121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수도원에 활기가 사라지자 수도원장이 깊은 시름에 잠겼습니다.
고민 끝에 위대한 스승을 찾아가 물었습니다.
“우리 수도원이 이렇게 맥이 없어진 이유가 죄 때문입니까?”
위대한 스승이 답했습니다. “무지의 죄 때문이다. 너희가 모르는 사실
이 하나 있다. 수도원에 변장한 예수님이 계신다는 사실이다. 그걸 모
르는 무지의 죄 때문이다.” 답변을 듣고 수도원장은 생각했습니다.
“우리 중 누가 변장하고 계신 예수님일까? 회계를 담당하는 수도사?
주방을 맡은 수도사? 아니야. 그들은 문제가 많은 사람인데…. 아니야.
어쩌면 예수께서 결함이 있는 그들로 변장하신 건지도 몰라.”
어느새 수도사들도 서로를 만날 때마다 저분이 변장하고 계신 예수님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수도사들이 서로를 존중하게 되고,
마치 예수님을 대하듯 서로를 대했습니다. 수도원의 분위기는 달라졌
습니다. 경건한 분위기가 회복되고 다시 부흥하게 됐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골3:23)
   
히브리서12장3절
 
 
   
하나님과 나만이 아는 은헤를 체험하라
 여러분! 내가 살아 있다는 것으로 시작해서
 무엇이든지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일을 하시기 바란다
  여기에 자원성이 있다.
 은혜를 깨달은 것은 사람의 생산성을 높이는 일이다.
고후 8:10에 역설적인 진리의 말씀이 있다.
 (고후 6:8-10)“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신앙의 기쁨은 신비한 것이다.
 하나님과 나만이 아는 것이다.
 이 기쁨을 아무도 빼앗을 사람이 없다
 이것이 은혜이다. 
-작자 미상의 글 ‘헌신의 은혜성’에서-


참되고 풍부하고 가장 영원한 기쁨과 은혜는
주님으로부터 옵니다. 
은혜는 힘이요, 지혜요, 용기입니다.
 감사의 생활은 또 다른 감사를 낳습니다.
 은혜로운 사람이 또 다른 은혜로운 사람을 낳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하십니다.
은혜를 받고 증거하고 그 가운데 살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을 섬겨야 또 다른 은혜를 받습니다. 
이것이 생산적인 믿음입니다. 
지금은 은혜를 받을 때요, 지금은 구원을 얻을 때입니다
하나님과 나만이 아는 은헤를 체험하십시오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마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