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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율 45% 대통령의 졸렬한 퇴장

鶴山 徐 仁 2022. 5. 5. 21:04

Opinion :중앙시평

 

지지율 45% 대통령의 졸렬한 퇴장

 

중앙일보 입력 2022.05.05 00:39


이정민 기자중앙일보 논설실장 구독

 

 

한국갤럽의 지난 주말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45%였다.(4월 26~28일 1003명 조사) 퇴임을 코앞에 둔 대통령으로선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수치다. 곧 취임할 새 대통령(윤석열 당선인 43%)보다도 높다. 집권 연장엔 실패했지만 최후의 순간까지도 콘크리트 지지를 견인해냈으니 신의 경지가 무색할 지경이다. 하지만 이런 든든한 원군의 뒷배에도 원초적 근심을 떨쳐내지 못했던 것일까. 요 며칠새 JTBC 대담, 청와대 청원 답변 이벤트를 통해 ‘없는 치적’을 부풀리고, 어거지 논리로 팩트를 전복했다. 혹평과 비난을 퍼부으며 후임자를 깎아내렸다.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에 대해 문 대통령은 “별로 마땅치 않다”며 각을 세웠다. “많은 비용을 들여 광화문 아닌 다른 곳으로 꼭 이전해야 하는 것이냐. 국가의 백년대계를 토론없이 밀어붙이면서 소통을 위한 것이라고 하니 무척 모순적으로 느낀다”고 수위를 높였다. “위험하다”는 말도 했다. 집무실 용산 이전을 두고 세간에 찬반 논란이 있는 건 사실이나 앞선 국무회의에서 이전 공사에 드는 예비비 승인까지 한 마당에, 떠나는 대통령이 드러내놓고 반대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새 정부의 민정수석실 폐지 방침을 두고 문 대통령은 “걱정된다”고 직격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어법대로 하면 “이쯤되면 막가자는 거 아닌가” 싶다.

 

문 대통령, 용산 이전 “마땅찮다”

도 넘은 윤 당선인 비난·깎아내리기

후임에 덕담없는 건 협량 때문일까

퇴임 6일전 검수완박…국민은 심란

 

문 대통령은 윤석열 당선인을 향해 ‘대통령 모드로 돌아오라’고 훈수했다. 대선 때 북한에 대해 강경발언을 한 게 “북한하고 상대해본 경험이 없어서”라고 나무랐고, 여가부 폐지 방침엔 “잘 알지도 못하고 하면 안 된다”고 비난했다. 상식과 금도의 레드 라인을 넘나드는 발언인데, 자신의 뒤를 이어 나라를 통치할 대통령직(presidency)에 대한 존중이 있다면 이처럼 절제되지 않은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입밖에 낼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자신은 ‘대통령 모드’의 레일을 탈선해놓고, 후임자에겐 ‘모드’ 타령하는 건 또 무슨 경우인가. 블랙 코미디가 따로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신구 권력의 교체가 매끄럽게만 넘어갈 수 없다는 게 그간의 경험칙이다. 심지어 같은 당으로의 정권 재창출이 이뤄진 경우에도 적잖은 잡음이 나곤 했다. 노무현 당선인 시절 김대중(DJ) 대통령은 당시 박지원 비서실장을 통해 민주당에 동교동계 해체를 지시하고 아예 ‘동교동’이란 말을 못 쓰게 했다. DJ는 “국내 정치에는 간여하지 않고 퇴임하면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이자, 노무현 정부에 짐이 돼선 안 된다는 의지”였다고 회고했는데, 나라 장래를 걱정하는 지도자의 원모심려(遠謀深慮)의 지혜가 담겼다.

대통령제를 발명한 나라 미국은 전임자가 백악관을 떠나면서 후임자에게 손편지를 남기는 전통이 자리잡았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전임인 조지 W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비판받고 힘든 순간이 있겠지만 용기를 잃거나 정도에서 벗어나지 말라. 당신을 지지한다’는 편지를 받고 가슴 뭉클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심지어 표를 도둑 맞았다며 대중을 선동한 트럼프조차도 전통에 따라 바이든 대통령에게 손편지를 남겼다고 해 화제가 됐다. 덕담은 대개의 경우 받는 사람보다 화자의 인격과 도량의 크기를 가늠케 한다. 정치인이라고 다를까. 그래서 더 궁금해진다. 후임자의 성공 기원 덕담에 그리 인색한 게 문 대통령의 협량에 기인한 것일까, 아니면 다른 연유가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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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이 꼬리를 문다. 차기 정부에 책임 떠넘기기, 공적 부풀려 선수치기가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지난달과 이달 사이 집중돼서다. 새 정부가 5월 10일부터 청와대를 전면 개방해 시민에게 돌려주겠다고 예고한 며칠 후 청와대 뒤편 북악산 ‘김신조 루트’(4월6일)가 열렸다. 야외 마스크 해제 조치(5월2일)는 인수위의 ‘ 5월말 해제’ 발표 직후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오비이락일 수 있겠으나 왠지 좀스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문 정부는 퇴임 한 달도 안 남은 시점(4월15일)에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같은 큰 일을 결정했다. 생색은 문 정부가, 협상·비준의 궂은 일은 새 정부의 몫이 됐다. 171석 거여 의석을 갖고도 농·어민 눈치보며 시간을 질질 끌던 민주당과 문 대통령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을 처리하는 데는 비상한 솜씨를 보였다. 위장 탈당, 회기 쪼개기, 꼼수 사보임에 편법 국무회의까지 막장 드라마가 완성되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45일이다. 만약 이재명 후보가 당선돼 정권이 연장됐더라도 D-6일의 막장극이 벌어졌을까. 별안간 청와대 뒷산이 열리고, 확진자가 급증하는데도 실외 마스크 벗기가 가능해졌을까. 임기 종료가 가까워오면서부터 더 급박하게 돌아가는 ‘청와대 시계’를 보면서 드는 의문들이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 ‘나라다운 나라’의 약속은 물거품이 됐다. 0.73%포인트 차이의 대선 패배가 그 증거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저는 한 번도 링 위에 올라가지 못했다. 입도 뻥긋 못했는데 선거에 졌다고 말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강변한다. 마지막까지 ‘대안적 진실’이란 허위의식에 안주하려는 정신승리법이 아니고는 이해할 수 없는 궤변이다. 촛불 대통령의 졸렬한 퇴장을 보는 국민은 심란하다.

 

이정민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