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신용호의 시시각각
민주당이 이상하다
중앙일보 입력 2022.03.31 00:39 업데이트 2022.03.31 06:46
김한길(국민통합위)·김병준(지역균형발전특위)·박주선(취임식준비위) 위원장이 지난 17일 윤석열 당선인과 함께 찍은 '피자 점심' 사진엔 민주당의 대선 패배 이유가 스며 있다. 진보는 한때 그들의 핵심이었던 세 사람을 붙잡아 두지 못했다. 진보의 오만과 독선, 내로남불이 윤 당선인을 돕게 만든 건 아닌지. 김한길 위원장은 김대중(DJ)·노무현 대통령 모두에게 두터운 신임을 받아 중용된 인사다. 당 대표도 지냈다. 김병준 위원장은 노무현 청와대의 정책실장이자 내각의 교육부총리였다. 대통령 임기 내내 지근거리에 있었다. 호남 출신인 박 위원장은 DJ 청와대에서 법무비서관을 지냈다. DJ가 생전 "나와 역사를 함께 쓸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신뢰했다. 오래전 일선에서 그들을 본 적이 있다. 그때 그들이 보수 진영으로 넘어가리란 상상을 해보지 못했다. 민주당이 그리도 내세우는 DJ·노무현의 적자들이란 점에선 뼈아파야 한다. 무엇보다 윤 당선인이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었던 점까지 더해지면 '민주당이 스스로 정권을 걷어찼다'는 논리는 분명해진다. 국민의힘의 승리라기보다 민주당의 패배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한 정치권 인사는 "그날 사진을 보고 만감이 교차했다. 세 사람이 민주당을 떠났다는 건 민주당이 우리가 아는 DJ·노무현의 민주당이 더는 아니라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왼쪽 두번째)이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그런데 대선 패배 후에도 민주당은 여전히 이상하다. 이렇게 큰 선거에서 지고도 책임지는 이가 안 보이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30일 초선 의원들이 뒤늦게 대선 평가회를 열어 반성의 목소리를 내긴 했으나 여전히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분위기가 완연하다. 친명도, 친문도 서로 책임을 안 묻는다. 그러니 "지방선거 무난하게 가려다 무난하게 질 수 있다"(박용진 의원)는 말이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이 당을 이끄는 것 자체가 달라질 의사가 없다는 거다. 그는 강성 친문의 핵심으로 2020년 총선에서 대승한 후 거대 여당의 법사위원장과 원내대표를 지냈다. '임대차 3법' 강행 처리의 주역이자 상임위원장 독식론을 주장해 관철한 장본인이다. 잇따른 강행 처리로 입법 독주 이미지를 가중시켰다. 대선 패배의 책임이 큰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런 그가 당 대표 역할을 하며 지방선거를 총괄한다는 건 무슨 경우인가. 책임지고 물러난 송영길 전 대표의 서울시장 차출론도 차마 웃지 못할 일이다. 오죽하면 선대위 총괄선대본부장이었던 우상호 의원이 나서 "물러난 지도부가 출마하는 경우는 없다”고 잘랐을까. 그랬는데도 정성호 의원 등 이재명계 핵심 인사들이 찾아가 '선당후사'를 요청하는 일이 지금 민주당에서 벌어지고 있다. 급기야 선거 패배 한 달도 안 돼 친명·반명이 계파 갈등이라도 벌일 태세다.
대선 패배의 또 다른 원인으로 꼽히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주장도 끊이질 않고 있다. 윤호중 위원장과 강경파 초선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조국의 강'을 건넜다는 주장이 무색한 일도 벌어졌다. 열린민주당 출신의 최강욱 의원이 원내대표 경선에서 재적의원 10% 이상의 표를 얻어 2차 투표에 진출했다. 한 의원은 "조국 수호대의 선봉장이 2차 투표에 진출했으니 국민이 '조국의 강을 건넜다'는 말을 안 믿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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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민주당에 0.73%포인트의 패배는 오히려 독이 될 모양새다. 그게 책임과 혁신을 피해갈 안식처가 된 듯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표 차이가 적다고 해서 '대충' '질서 있게' 넘어갈 일은 결코 아니다. 국민이 단 5년 만에 민주당 정권을 심판했다는 사실이 핵심이라서다. 선거에 진 정당이 환골탈태를 위해 몸부림치는 건 국민과 지지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민주당을 떠난 사람들이 왜 그랬을까 하는 것도 곱씹어보길 바란다. 172석의 거대 야당이 건강해져야 윤석열 정부를 건전하게 견제할 수 있기에 하는 말이다.
신용호 Chief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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