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네 사람의 나병환자 왕하 7:1-8

鶴山 徐 仁 2022. 3. 29. 11:00

네 사람의 나병환자 왕하 7:1-8

 
 
03월 29일 (화)
   
네 사람의 나병환자 왕하 7:1-8



1.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리라 하셨느니라
2. 그 때에 왕이 그의 손에 의지하는 자 곧 한 장관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하더라 엘리사가 이르되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니라
3. 성문 어귀에 나병환자 네 사람이 있더니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
4. 만일 우리가 성읍으로 가자고 말한다면 성읍에는 굶주림이 있으니 우리가 거기서 죽을 것이요 만일 우리가 여기서 머무르면 역시 우리가 죽을 것이라 그런즉 우리가 가서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자 그들이 우리를 살려 두면 살 것이요 우리를 죽이면 죽을 것이라 하고
5. 아람 진으로 가려 하여 해 질 무렵에 일어나 아람 진영 끝에 이르러서 본즉 그 곳에 한 사람도 없으니
6. 이는 주께서 아람 군대로 병거 소리와 말 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으므로 아람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 하여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그들을 우리에게 오게 하였다 하고
7. 해질 무렵에 일어나서 도망하되 그 장막과 말과 나귀를 버리고 진영을 그대로 두고 목숨을 위하여 도망하였음이라
8. 그 나병환자들이 진영 끝에 이르자 한 장막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거기서 은과 금과 의복을 가지고 가서 감추고 다시 와서 다른 장막에 들어가 거기서도 가지고 가서 감추니라
 
7장의 핵심적인 말씀은 1절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와 16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고>, 그리고 17절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죽었으니> 등을 들 수 있을 텐데 이것은 다 본 장의 주제인 하나님의 말씀의 신실함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이 주는 교훈은
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하신 구원의 약속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나 이성적인 판단으로 생각할 때 전혀 불가능한 일처럼 보일지라도 우리는 결코 그 말씀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② 하나님께서 취하시는 구원의 방법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입니다.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은 아람 군대가 도망치고 또 그들이 버리고 간 군량미가 굶주린 자신들의 양식이 될 줄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③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택하신 백성들에게 아무런 조건도 없이 긍휼과 자비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깨달을 수 있고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순종과 감사, 그리고 믿음뿐이라는 것입니다. 


<성문 어귀에 나병환자 네 사람이 있더니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 만일 우리가 성읍으로 가자고 말한다면 성읍에는 굶주림이 있으니 우리가 거기서 죽을 것이요 만일 우리가 여기서 머무르면 역시 우리가 죽을 것이라 그런즉 우리가 가서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자 그들이 우리를 살려두면 살 것이요 우리를 죽이면 죽을 것이라>(3-4절).
평소 이스라엘 백성으로부터 냉대와 천대를 받아 온 네 명의 나병환자는 가만히 앉아 굶어 죽기보다 적진에 들어가 생사를 결판내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하고 죽을 각오로 아람의 진영으로 들어가는데 결국은 그런 그들의 결단이 자기 자신들의 문제뿐 아니라 사마리아 성읍의 온 백성들에게까지 살 길을 찾게 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해방과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신 것입니다. 


<그 나병환자들이 진영 끝에 이르자 한 장막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거기서 은과 금과 의복을 가지고 가서 감추고 다시 와서 다른 장막에 들어가 거기서도 가지고 가서 감추니라>(8절).
 
- 엘리사의 예언을 비웃던 장관(2절)은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20절)?
- 아람 군대가 모든 것을 버려두고 도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6절)?
- 엘리사의 양식에 대한 예언이 결국 적의 군량미를 통해 성취된 이적에 대해 당신의 느낌과 소감을 적어보십시오.
 
주님, 아람 군대가 왜 좋은 말이며 나귀, 은과 금, 양식 등을 다 그대로 버려두고 달아났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하나님의 역사에 공포를 느끼고 미처 군장을 꾸릴 여유도 없이 도망쳤던 것 같습니다. 
그 옛날 기드온의 300용사들의 외침에 놀란 미디안 군사들이 자기들끼리 서로 치고 찌르며 패했던 상황과도 비슷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전능은  믿지 않는 이방인들에게는 두려움으로 작용하지만 믿는 자들에게는 무한하신 은혜와ㅊ 피난처가 되심을 믿습니다.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우크라이나 전쟁2
 
“하라리 교수는 푸틴 대통령을 나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에 비유하
기도 했다. 그는 ‘어렸을 때 푸틴은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의 만행, 특히
레닌그라드 봉쇄에서 용맹하게 싸웠던 러시아군의 이야기를 듣고 자
랐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지금 당시와 비슷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려 하고 있지만, 지금 푸틴의 역할은 당시 러시아군이 아닌 히틀러’
라고 일갈했다.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정부를 ‘신나치’로 규정
하고 ‘비(非) 나치화’를 명분으로 침략했지만, 정작 푸틴 대통령이
히틀러와 같은 침략자라는 얘기다.”


박지영 기자, 「한국일보」 2022년 3월 1일자 기사 중에 나오는 구절
입니다.
러시아인들은 2차 세계대전을 ‘대 애국전쟁’이라고 부릅니다. 러시아
에서 공산주의가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2차대전
‘독소전쟁’의 눈물겨운 스토리 때문입니다. 당시 소련인들은 극악한
조건 속에서 레닌그라드 전투,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나치들을 물리쳤
습니다. 이 애국전쟁의 승리는 공산당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선전하며 공산체제를 정당화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푸틴이 우크라이
나인들 앞에 히틀러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러시아 독재자라면, 이것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어렸을 때 그는 레
닌그라드 전투 때 독일인의 잔혹함, 그리고 러시아인들의 용기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듣고 자랐을 것이다. 그는 지금 비슷한 스토리를 만들고
있다. 이번 스토리에서는 자신이 히틀러 역할일 뿐.”
스토리가 있는 공동체는 강합니다. 그리고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스토
리는 대부분 고난의 시기에 만들어집니다. 고난 속에 진실을 만나고,
성도들은 고난 속에 하나님이신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무엇보다 깊은
고난 속에 영원한 것과 헛된 것을 구별하게 됩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119:71)
   
호세아 14장 2절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
Take words with you and return to the LORD.
Say to him: "Forgive all our sins and receive us graciously,
that we may offer the fruit of our lips.
Hosea 14:2 [NIV]
   
욕심을 버리면 행복해 진다


욕심을 채우면 행복해 지는 것이 아니라 
욕심을 버리면 행복해진다. 
세상과 利에 대한 욕심과 야망을 버리고
 세상과 利에 대한 소명을 가지시기를 바란다. 
바울은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던 당시의 특권층이었지만 
그는 그것에 대한 개인적인 야망과 욕심이 없었다.
 때문에 그 특권을 자신을 위하여 사용하지 않고
 로마에 복음을 전하는 귀한 일에 사용하였다.
 욥은 당대의 부자였지만 그 부함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께 부자로 불리우지 않고
 의로운 자로 불리웠다.
나는 어떤 자라고 불리어질 것인가?
-김동호 목사의 ‘천국의 열쇠’에서-


 욕심을 버리는 것이 꼭 가난해지고 초야에 묻혀 
나물 먹고 물 마시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기독교적인 철학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자기만 생각하는
 매우 이기적인 것입니다. 
자기만 행복하면 세상이야 어떻게 돌아가든,
 자신은 상관없다는 무책임한 자세로 
절대로 옳은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가난하게 살든 부하게 살든, 
높은 사람으로 살든 낮은 사람으로 살든 
 利와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대하여 
주리고 목마른 심정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03월 29일 (화)
   
네 사람의 나병환자 왕하 7:1-8



1.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리라 하셨느니라
2. 그 때에 왕이 그의 손에 의지하는 자 곧 한 장관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하더라 엘리사가 이르되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니라
3. 성문 어귀에 나병환자 네 사람이 있더니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
4. 만일 우리가 성읍으로 가자고 말한다면 성읍에는 굶주림이 있으니 우리가 거기서 죽을 것이요 만일 우리가 여기서 머무르면 역시 우리가 죽을 것이라 그런즉 우리가 가서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자 그들이 우리를 살려 두면 살 것이요 우리를 죽이면 죽을 것이라 하고
5. 아람 진으로 가려 하여 해 질 무렵에 일어나 아람 진영 끝에 이르러서 본즉 그 곳에 한 사람도 없으니
6. 이는 주께서 아람 군대로 병거 소리와 말 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으므로 아람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 하여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그들을 우리에게 오게 하였다 하고
7. 해질 무렵에 일어나서 도망하되 그 장막과 말과 나귀를 버리고 진영을 그대로 두고 목숨을 위하여 도망하였음이라
8. 그 나병환자들이 진영 끝에 이르자 한 장막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거기서 은과 금과 의복을 가지고 가서 감추고 다시 와서 다른 장막에 들어가 거기서도 가지고 가서 감추니라
 
7장의 핵심적인 말씀은 1절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와 16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고>, 그리고 17절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죽었으니> 등을 들 수 있을 텐데 이것은 다 본 장의 주제인 하나님의 말씀의 신실함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이 주는 교훈은
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하신 구원의 약속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나 이성적인 판단으로 생각할 때 전혀 불가능한 일처럼 보일지라도 우리는 결코 그 말씀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② 하나님께서 취하시는 구원의 방법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입니다.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은 아람 군대가 도망치고 또 그들이 버리고 간 군량미가 굶주린 자신들의 양식이 될 줄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③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택하신 백성들에게 아무런 조건도 없이 긍휼과 자비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깨달을 수 있고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순종과 감사, 그리고 믿음뿐이라는 것입니다. 


<성문 어귀에 나병환자 네 사람이 있더니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 만일 우리가 성읍으로 가자고 말한다면 성읍에는 굶주림이 있으니 우리가 거기서 죽을 것이요 만일 우리가 여기서 머무르면 역시 우리가 죽을 것이라 그런즉 우리가 가서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자 그들이 우리를 살려두면 살 것이요 우리를 죽이면 죽을 것이라>(3-4절).
평소 이스라엘 백성으로부터 냉대와 천대를 받아 온 네 명의 나병환자는 가만히 앉아 굶어 죽기보다 적진에 들어가 생사를 결판내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하고 죽을 각오로 아람의 진영으로 들어가는데 결국은 그런 그들의 결단이 자기 자신들의 문제뿐 아니라 사마리아 성읍의 온 백성들에게까지 살 길을 찾게 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해방과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신 것입니다. 


<그 나병환자들이 진영 끝에 이르자 한 장막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거기서 은과 금과 의복을 가지고 가서 감추고 다시 와서 다른 장막에 들어가 거기서도 가지고 가서 감추니라>(8절).
 
- 엘리사의 예언을 비웃던 장관(2절)은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20절)?
- 아람 군대가 모든 것을 버려두고 도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6절)?
- 엘리사의 양식에 대한 예언이 결국 적의 군량미를 통해 성취된 이적에 대해 당신의 느낌과 소감을 적어보십시오.
 
주님, 아람 군대가 왜 좋은 말이며 나귀, 은과 금, 양식 등을 다 그대로 버려두고 달아났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하나님의 역사에 공포를 느끼고 미처 군장을 꾸릴 여유도 없이 도망쳤던 것 같습니다. 
그 옛날 기드온의 300용사들의 외침에 놀란 미디안 군사들이 자기들끼리 서로 치고 찌르며 패했던 상황과도 비슷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전능은  믿지 않는 이방인들에게는 두려움으로 작용하지만 믿는 자들에게는 무한하신 은혜와ㅊ 피난처가 되심을 믿습니다.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우크라이나 전쟁2
 
“하라리 교수는 푸틴 대통령을 나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에 비유하
기도 했다. 그는 ‘어렸을 때 푸틴은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의 만행, 특히
레닌그라드 봉쇄에서 용맹하게 싸웠던 러시아군의 이야기를 듣고 자
랐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지금 당시와 비슷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려 하고 있지만, 지금 푸틴의 역할은 당시 러시아군이 아닌 히틀러’
라고 일갈했다.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정부를 ‘신나치’로 규정
하고 ‘비(非) 나치화’를 명분으로 침략했지만, 정작 푸틴 대통령이
히틀러와 같은 침략자라는 얘기다.”


박지영 기자, 「한국일보」 2022년 3월 1일자 기사 중에 나오는 구절
입니다.
러시아인들은 2차 세계대전을 ‘대 애국전쟁’이라고 부릅니다. 러시아
에서 공산주의가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2차대전
‘독소전쟁’의 눈물겨운 스토리 때문입니다. 당시 소련인들은 극악한
조건 속에서 레닌그라드 전투,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나치들을 물리쳤
습니다. 이 애국전쟁의 승리는 공산당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선전하며 공산체제를 정당화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푸틴이 우크라이
나인들 앞에 히틀러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러시아 독재자라면, 이것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어렸을 때 그는 레
닌그라드 전투 때 독일인의 잔혹함, 그리고 러시아인들의 용기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듣고 자랐을 것이다. 그는 지금 비슷한 스토리를 만들고
있다. 이번 스토리에서는 자신이 히틀러 역할일 뿐.”
스토리가 있는 공동체는 강합니다. 그리고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스토
리는 대부분 고난의 시기에 만들어집니다. 고난 속에 진실을 만나고,
성도들은 고난 속에 하나님이신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무엇보다 깊은
고난 속에 영원한 것과 헛된 것을 구별하게 됩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119:71)
   
호세아 14장 2절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
Take words with you and return to the LORD.
Say to him: "Forgive all our sins and receive us graciously,
that we may offer the fruit of our lips.
Hosea 14:2 [NIV]
   
욕심을 버리면 행복해 진다


욕심을 채우면 행복해 지는 것이 아니라 
욕심을 버리면 행복해진다. 
세상과 利에 대한 욕심과 야망을 버리고
 세상과 利에 대한 소명을 가지시기를 바란다. 
바울은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던 당시의 특권층이었지만 
그는 그것에 대한 개인적인 야망과 욕심이 없었다.
 때문에 그 특권을 자신을 위하여 사용하지 않고
 로마에 복음을 전하는 귀한 일에 사용하였다.
 욥은 당대의 부자였지만 그 부함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께 부자로 불리우지 않고
 의로운 자로 불리웠다.
나는 어떤 자라고 불리어질 것인가?
-김동호 목사의 ‘천국의 열쇠’에서-


 욕심을 버리는 것이 꼭 가난해지고 초야에 묻혀 
나물 먹고 물 마시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기독교적인 철학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자기만 생각하는
 매우 이기적인 것입니다. 
자기만 행복하면 세상이야 어떻게 돌아가든,
 자신은 상관없다는 무책임한 자세로 
절대로 옳은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가난하게 살든 부하게 살든, 
높은 사람으로 살든 낮은 사람으로 살든 
 利와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대하여 
주리고 목마른 심정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