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설‘
법원 가처분 정국’ 자초한 무능한 정치권
중앙일보 입력 2022.01.27 00:10
국민의당 당원들과 안철수 대선 후보 지지자들이 20일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기득권 야합 불공정 TV토론 규탄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양자 TV토론 법원이 제동, 다른 가처분도 쇄도
대선 룰도 못 정하는 건 타협·조율 사라진 때문
서울서부지법이 오는 30일이나 31일로 예정됐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간 양자 TV토론에 제동을 걸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 측이 낸 방송 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방송 일자가 대선까지 40일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고, 최대 명절인 설 연휴여서 양자 토론회가 미치는 영향이 지대할 것”이라며 참여하지 못하는 후보는 군소 후보라는 이미지를 안아 불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두 후보만의 TV토론은 애초에 무리한 설정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번 양자 TV토론이 위법은 아니었다. 공직선거법은 법정 토론회 초청 대상을 5인 이상 국회 의석을 가진 정당, 직전 선거에서 전국 3% 이상 득표한 정당, 여론조사에서 평균 5% 이상 지지율을 보인 후보로 정하고 있다. 언론사 주관 토론회는 이 규정을 지킬 의무가 없고, 다수가 참여하는 토론은 자칫 겉핥기로 흐를 가능성도 있다. 그렇지만 법원의 판단이 나온 만큼 각 정당은 다수 후보가 참여하는 토론을 서둘러 조율해 국민에게 판단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정치권은 이번에 무슨 일만 있으면 사법부로 달려가는 양상을 또 노출했다. 대선을 앞둔 후보 TV토론은 그야말로 각 정당이 대화와 협상을 통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후보별 지지율이 변화를 보이는 만큼 방송사와 각 후보 측이 법정토론회 기준을 참고로 상식선에서 조율했으면 된다. 그런데도 이해타산에 따라 계산기만 두드리다 결국 자율로 정해도 되는 TV토론 방식마저 판사가 가르마를 타주는 상황이 됐다.
사설 다른 기사 |
‘가처분 정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치권이 사법부의 결정에 의존하는 경향은 심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 후보와 친형 사이의 갈등을 다룬 책의 판매·배포를 금지해 달라며 낸 가처분 신청은 법원에서 기각됐다. 국민의힘이 윤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씨의 ‘7시간 녹취록’ 보도를 금지해 달라며 MBC를 상대로 낸 가처분에 대해 서울서부지법은 일부를 인용했다. 이와 달리 국민의힘이 온라인 매체들을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에서 서울중앙지법과 서울남부지법은 MBC보다 더 넓게 방영하도록 허용했다. 정치권이 워낙 자주 법원 문을 두드리니 법원마다 다른 결정을 내리고, 이를 지켜보는 국민은 의아할 지경이다.
1987년 헌법재판 제도가 도입되면서 정치에 사법의 영향이 미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정치의 사법화는 극심한 대립으로 이견을 해소하지 못하고 정책 타협도 불가능해진 정치권의 현주소를 드러내고 있다. 국민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고 타협점을 찾는 게 정치권의 존재 이유다. 특히 이번 대선에선 후보 관련 의혹이 많아 고소·고발전이 빈발하고 네거티브 전쟁이 법원으로 옮겨가고 있다. 정치권은 삼권분립을 위협하는 후진적 행태를 그만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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