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김동호의 시시각각
대통령의 자격
중앙일보 입력 2021.11.18 00:42
김동호 기자중앙일보 논설위원
대통령은 탁월한 리더십이 특별히 요구되는 자리다.
차기 대선이 111일 앞으로 다가왔다. 사석에서 민감한 이슈는 피하는 게 상책이지만 최근 분위기가 과열되면서 주변 여론을 들어볼 수 있다. 여기서 두 가지를 소개한다. 60대 후반의 개인사업자. “뉴스를 보면 더 헷갈린다. 정책은 뭐가 맞는지, 누구 말이 진실인지 모르겠다.” MZ세대로 불리는 30대 청년 창업가. “결국 차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보수 성향의 60대와 이념보다 실용을 중시하는 30대가 드러낸 속내는 우리 정치에 대한 절망감의 표현이다. 한마디로 대통령감이 안 보인다는 얘기다. 공식 여론조사 결과와 다를 게 없다.
국민은 어떤 대통령을 바랄까. 요컨대 대통령의 자격은 무엇인가를 묻게 한다. 세상이 혼돈스러울 때는 역사 속에 길이 있다는 생각에 미국 최고의 대통령학 권위자로 꼽히는 제임스 번스의 『리더십』(1978)을 다시 들춰봤다. 미국에는 대통령학에 대한 연구자가 많고 관련 저술도 넘친다. 번스는 그중에서도 최고로 꼽힌다. 초대 대통령이던 조지 워싱턴부터 시작된 『미국의 대통령 시리즈』를 통해 대공황 극복을 지휘한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비롯해 대통령전을 써내려갔다.
번스가 대통령에 천착한 배경은 의외다. 미국 역시 대통령 역할이 쉬운 적이 없었다. 공화당과 민주당이 매사 대립하는 일이 많았고, 국민도 양쪽으로 나뉘어 분열하고 반목하는 시절이 거듭됐다. 자유시장 경제를 근간으로 세계 최강국으로 발돋움했지만, 인종 갈등과 빈부 격차를 비롯해 사회·경제·정치 갈등도 끊이지 않았던 게 미국의 자화상이자 살아 있는 역사다. 당연히 대통령 노릇이 어렵고 리더십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었다. 번스의 리더십 첫 장이 ‘리더십의 위기’로 출발하는 까닭이다. 그는 요컨대 대통령의 리더십은 그 시대 누구나 공감하는 꿈과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과 함께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는 변혁적 리더십이 바람직하다고 봤다.
우리는 어떤가. 대선에서 선두 경쟁을 벌이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국민이 공감하고 따를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루스벨트는 “대통령은 특별히 도덕적 리더십이 요구되는 자리”라면서 “미국의 역대 대통령은 시대정신이 투철했다. 그렇지 않으면 길을 잃고 만다”고 했다. 두 후보 모두 검찰 수사 대상이라는 점에서 도덕적 기준은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은 이보다 더 중요한 게 시대정신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지금 현안이 되는 부동산, 재정과 복지, 청년고용 관련 공약에서 시대정신은 잘 보이지 않는다. 집값 폭등은 국민을 벼락거지 아니면 세금폭탄의 대상자로 만들어 놓았다. 문재인 정부의 반(反)시장 정책이 빚은 참사였다. 이 문제를 푸는 게 시대정신이다. 이 후보의 국토보유세와 부동산감독원 공약은 더 강력한 반시장적 정책이다. 결국 시장 왜곡을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윤 후보의 250만 채 공급 공약은 시장 원리에 부합하긴 하지만, 정교한 계획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희망 고문이 된다.
재난지원금은 포퓰리즘과 무책임의 경연장이다. 이 후보는 초과 세수를 곳간에 쌓아두고 있다고 했으나 사실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세수가 부족해 지난해와 올해 연이어 100조원이 넘는 적자 국채를 찍어낸 처지다. 논란이 되자 국민 방역지원금으로 명칭을 바꿔서 추진한다는 건데, 시대정신을 역행하는 금권선거가 될 수 있다. 윤 후보는 50조원을 들여 자영업자의 실제 피해를 모두 보상한다고 했다. 취지는 좋지만 어디서 그런 재원을 조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나랏빚 증가 속도 1위의 처지로 전락했는데, 이 주머니 저 주머니 뒤진다고 나올 돈이 아니다. 제대로 된 청년 대책도 안 보인다.
제발 국민이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선거는 보고 싶지 않다. 국민이 믿고 따를 수 있는 꿈과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역대 대통령이 20대에 이르는 이번엔 그럴 때도 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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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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