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선 LIVE] 메르켈 총리는 왜 사생활 노출을 꺼렸을까
메르켈, 합의를 만드는 힘 뛰어나
정치인 아닌 국민 중심에 둔 정치
말보다 행동으로 승부하는
지루하지만 실용적인 리더십
입력 2021.10.15 03:00
지난해 연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국민들에게 협조를 요청하는 연설을 보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감정을 잘 안 드러내기로 유명한 메르켈 총리가 이날은 달랐다. 주먹을 흔들고 기도하듯 손을 모으며 간절하게 호소했다. 화려한 수사는 없었지만 독일이 얼마나 다급한 상황인지는 절절히 와 닿았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지난 9월 24일 독일 뮌헨에서 총선을 앞둔 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메르켈이 지난달 16년 만에 총리직을 내려놨다. 최연소이자 첫 여성 총리로 시작해 최장수 총리가 됐고 퇴임 직전까지 지지율이 고공 행진을 하던 중이었다.
메르켈을 당대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인으로 만든 능력은 ‘합의를 이끌어내는 힘’이었다. 과묵하고 참을성 있는 메르켈은 이견을 듣고 조율하고 합의를 만들어 낼 줄 알았다. 이런 힘은 메르켈이 독일은 물론 사실상 유럽을 이끄는 자유 세계의 지도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리더십의 핵심이기도 했다.
메르켈의 정치 근육은 자유세계 저 너머에 있던 동독에서 단련됐다. 메르켈은 서독에서 태어났지만 목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동독으로 이주해 통일될 때까지 35년을 살았다. 메르켈이 과묵하고 인내심이 강한 건 비밀경찰이 감시하던 동독에서의 경험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의 의견이 당과 정부의 입장과 달라도 입 밖에 낼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메르켈은 ‘이견을 견디는 근육’을 키웠다는 것이다.
메르켈은 정확했다. 물리학을 공부한 과학자란 배경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11년간 영국 총리였던 마거릿 대처도 화학을 전공했다. 언론인이자 작가인 케이티 마튼은 자신의 책 ‘메르켈 리더십’에서 메르켈과 대처는 “둘 다 지적 능력이 뛰어났으며, 엄청나게 많은 데이터를 통달했고, 고압적인 남성들 앞에서도 주눅 드는 법이 없었다”고 썼다. 메르켈과 함께 일해본 정치인들은 소수점 이하까지 챙기는 그의 기억력에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메르켈은 그러나 ‘말’의 힘을 믿지 않았다. “한 사람이 빼어난 말솜씨로 다른 사람의 심금을 울려 마음을 바꾸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공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연설에서 감동이나 거창한 구호를 담지 않았다. 연설에 타고난 재능이 있는 오바마 전 대통령을 쉽사리 신뢰하지 않았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메르켈은 자신의 매력을 발휘해 다른 사람을 사로잡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사생활 노출도 극도로 꺼렸다. 총리실에서 나가는 정보도 엄격하게 통제했다. 메르켈 자신이 화제가 되는 일은 어떻게든 피하려 했다.
한 독일 정치인은 ‘메르켈 리더십’에서 “독일인들은 거울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들의 문제를 살펴보는 사람을 원했다. 메르켈은 자신에게 초점이 집중되지 않는 정치 스타일을 완벽하게 가다듬었다”고 했다. 메르켈은 정치의 초점을 자신이 아니라 국민에게 맞춤으로써 ‘메르켈 스타일’을 완성했던 것이다. 훗날 역사가 자신에 대해 “그는 노력했다”고 평가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지루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이 메르켈 스타일이 21세기 가장 성공한 리더십 유형이다. 메르켈이 선동가와 포퓰리스트, 독재자들이 판치는 국제 무대에서 자유세계의 지도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의 후보 선정 과정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경기지사를 대선 후보로 뽑았고, 국민의힘은 4명의 후보가 막바지 경쟁을 하고 있다. 주요 후보들 중 일부는 자신과 관련된 논란 때문에 국민의 문제를 들여다볼 여력조차 없는 것 같다. 선거는 후보자의 과거가 아니라 유권자와 나라의 미래를 논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그런 날이 오기나 할지. 이런 좌절감이 대선판에서 자꾸 눈을 떼고 싶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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