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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뿐 아니다…탐나지만 먹으면 탈나는 ‘강대국의 무덤들’

鶴山 徐 仁 2021. 8. 28. 09:00

아! 아프간

 

아프간뿐 아니다…탐나지만 먹으면 탈나는 ‘강대국의 무덤들’

 

중앙일보  입력 2021.08.28 05:00


정영교 기자

 

탐나지만 먹었다간 체하는 전략 요충지 <하>

- 쿠바·베트남·크림반도·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철수와 탈레반의 정권 장악으로 국제정세가 긴박한 가운데, 열강이 발을 들였던 전략적 요충지가 조명받고 있다. 특히 탈냉전 이후 'G2'를 형성한 미·중의 경쟁이 군사·안보 전략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분야로 확장하면서 지정학적 거점 확보는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세계 주요 전략 요충지인 아프간, 쿠바, 베트남, 크림반도, 시리아 등 5곳을 상,하편으로 나누어 되짚어 본다.

 

국제정치에서 지리는 항상 제일의 상수다. 정권과 지배층은 바뀌어도 지정학은 그대로 유지된다. 지정학적 요충지는 그 자체로 강대국을 끌어모은다. 지도를 보는 순간 패권 대결의 요충지 임을 알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쿠바, 베트남, 크림반도, 시리아의 사례를 살펴본다.

 

 

①미국 턱밑의 저격수 쿠바

쿠바 미사일 위기.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쿠바는 모히토 칵테일과 살사댄스의 본고장, 아마 야구 강국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이 첨예하게 대립했던 대표적인 전략 거점이다. 미국을 턱밑에서 겨냥할 수 있는 곳이 쿠바다. 반세기 넘는 미국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난 쿠바에 1959년 혁명정부가 들어섰다. 1961년 4월 혁명정부가 사회주의를 선택하면서 미·소 대결은 심화됐다.

1962년 10월 22일부터 11월 2일. 전 세계가 핵전쟁에 가장 근접했던 기간이다. 11일간 세계의 이목은 쿠바로 쏠렸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핵전쟁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것을 체감시켰던 사건이다.

사건은 미국 첩보기가 쿠바에 건설 중이던 미사일 기지를 발견하며 시작됐다. 이를 보고받은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제3차 세계대전도 불사하겠다”며 단호히 대응했다. 10월 22일 대국민 연설을 통해 소련의 쿠바 미사일 배치 사실을 공개하며 쿠바 해상을 봉쇄했다.

1962년 10월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해상봉쇄 명령에 서명하는 존 F. 케네디 대통령. [JFK도서관]

 

 

미사일을 실은 소련 화물선이 미군의 해상 봉쇄를 돌파하려 든다면 핵전쟁으로 번질 수 있는 위기 상황이 이어졌다. 결국 힘과 힘의 충돌에서 소련 화물선이 경로를 돌리면서 위기를 겨우 넘겼다. 미국 역시 터키·이탈리아에 배치한 미사일을 철수하고 쿠바 불가침을 약속하는 조건으로 소련은 쿠바 미사일 기지를 철거하는 데 합의했다.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면 소련은 미전역을 사정권에 둘 수 있었다. 미국보다 열세를 보였던 핵전력에도 소련이 단숨에 형세를 역전시킬 기회였다. 미국에게 쿠바는 본토 바로 앞에 위치한 사회주의 세력의 위협이었고, 소련에게도 쿠바는 미국을 견제하기 유리한 환경을 가진 거점이었다.

 

 

②인도차이나 반도의 키 베트남

베트남 전쟁.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베트남 전쟁은 미국이 유일하게 패배한 전쟁으로 불렸다. 16년간 지속한 전쟁으로 양국은 오랜 기간 후유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베트남이 위치한 인도차이나 반도는 인도와 중국 문명이 교차하는 땅이다. 풍부한 자원과 비옥한 토지를 가지고 있어 끊임없이 외세의 침략을 당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독립을 선언한 베트남은 1945년 호찌민을 대통령으로 하는 베트남민주공화국을 세웠다. 하지만 프랑스는 베트남을 다시 식민지로 삼고자 1946년 전쟁을 일으켰다. 8년간의 전쟁 끝에 1954년 휴전 조약인 제네바 협정을 체결했다.

 

협정 결과 북위 17도 선을 기준으로 베트남공화국과 베트남민주공화국이 수립됐다. 이 시기 아시아 지역의 공산화를 우려한 미국은 프랑스 대신 남베트남에 강하게 개입했다. 1960년 남베트남 정권에 반대하는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이 조직되면서 내전은 시작됐다.

 

남베트남 정권이 약화하자 미국은 1965년 북베트남에 대한 공습을 시작했다. 북베트남은 중국과 소련의 지원을 받으며 게릴라전을 펼쳤다. 미군은 게릴라전에 고전했고, 베트남 전쟁은 수렁에 빠졌다.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을 포위한 8월 15일(현지시간) 미 대사관 직원 탈출을 위해 출동한 미군 치누크 헬기가 카불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1975년 4월 북베트남의 침공으로 남베트남 사이공이 함락되자 대사관에서 헬기로 탈출하는 미국인들의 모습. [AP=연합뉴스]

 

 

국내외적으로 반전 여론이 들끓으면서 미국은 출구전략 마련을 위한 고민에 빠졌다. 그러던 중 국경 분쟁으로 중국과 소련의 연대에 균열이 발생한 틈을 노려 1968년 평화 교섭을 시작했다. 1973년 파리회담에서 평화 협정을 체결하며 휴전이 성립됐고 미국은 베트남에서 철수했다.

 

이후 1975년 4월 30일 사이공(베트남 호찌민)이 함락되면서 베트남 내전은 종결됐다. 이듬해 남북을 통일한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이 수립됐으며 캄보디아와 라오스도 각각 사회주의 국가로 독립했다. 미국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인도차이나 반도의 절반이 공산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도이모이(doimoi). 1986년에 시작한 개혁개방을 상징하는 용어다. 1995년 미국과 수교한 베트남의 경제는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다. 지난해에도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2.9%)을 기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유를 찾아 고국을 탈출한 보트피플이 퍼트린 쌀국수도 이제는 미국에서 자리를 잡은 뒤 세계인의 음식이 됐다.

 

 

③흑해 지배 부동항 크림 반도

크림반도 영토분쟁.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크림반도 병합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처음으로 영토 변경이 이루어진 사례다. 냉전체제 종식 후 러시아의 영향력은 크게 후퇴했다. 소비에트 연방 일원이었던 동구권 국가들은 서구식 민주주의 체제로 급속히 편입됐다.

2014년 크림반도 위기에는 서유럽 진영에 대한 러시아의 위기감이 기저에 깔려있었다. 러시아에게 우크라이나는 서유럽의 영향력 차단에 필요한 지정학적 완충국이다. 이 때문에 친러시아 세력을 지원해왔다. 우크라이나도 경제적·지리적 영향력 때문에 러시아를 단호하게 뿌리칠 수 없었다.

이런 가운데 2014년 초 우크라이나에 친서방 성향 임시 정권이 수립됐다. 러시아는 무력으로 대응했다. 서유럽의 영향력을 저지하는 완충 지대가 없어질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정부를 붕괴시킬 수는 없었다. 그래서 러시아가 선택한 차선책이 크림자치공화국 병합이다.

2018년 3월 크림반도 세바스토폴에서 열린 크림반도 합병 4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지지자들.[EPA=연합뉴스]

 

 

크림반도의 200만 주민은 러시아인이 58%, 우크라이나인 24%, 크림 타타르인 12%로 이뤄졌다. 1954년 우크라이나에 편입되기 전까지 러시아에 귀속된 땅이었다. 마침 크림반도에서 우크라이나로부터 분리 독립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러시아는 이 기회를 틈타 러시아인 보호를 명분으로 군을 파견했다.

 

크림자치공화국 의회는 2014년 3월 11일 크림공화국(Republic of Crimea) 성립을 선포한다. 이후 닷새 만인 16일에는 주민투표를 통해 크림반도와 러시아의 병합을 결정했다. 열흘 뒤 푸틴 대통령이 합병 문서에 서명하면서 크림공화국은 러시아에 귀속됐다. 이렇게 해서 러시아는 과거 흑해 함대가 기항하는 부동항이 있던 크림 반도를 다시 장악했다. 크림 반도는 향후 러시아의 지중해 진출을 위한 베이스 캠프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와 서방은 투표에 러시아의 압력이 작용했다는 이유로 이들의 합병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러시아와 크림반도에 대한 서방의 제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④지중해·메소포타미아 패권의 복합 충돌 시리아

시리아 내전.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시리아는 토질이 비옥한 데다 서쪽으로 지중해와 접해있고 동쪽으로 중동 국가들과 이어진 요충지에 위치해 외세의 끊임없는 침략을 받았던 국가다. 지중해 패권을 가지려는 강대국들은 시리아를 세력권에 넣으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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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내전은 2011년 1월 '아랍의 봄'의 여파로 발생한 반정부 시위가 3월 들어 급속히 확대되면서 발생했다. 초기에는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 체제를 수호하려는 정부군과 민주화를 주장하는 반군 사이에서 벌어진 내전이었다. 이후 역내 갈등을 넘어 국제적인 분쟁으로 이어졌다.

이 지역에서는 분리독립을 원하는 쿠르드족과 이를 막으려는 터키의 군사적 대응, 러시아의 중동 영향력 강화, 유럽의 중동 난민 유입 문제, 신정국가 건설을 추구하는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 등 다양한 세력의 지정학적 경쟁과 협력이 다층적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2015년 3월 25일 내전으로 폐허가 된 시리아 북부 코바네의 거리를 한 여성이 아기를 데리고 걷고 있다. [AFP=연합뉴스]

정부군은 이란과 레바논 등 이슬람 시아파 세력과 러시아의 지원을 받았고 반군은 사우디·카타르·터키 등 수니파 국가의 지원을 받았다. 사실상 이슬람의 시아파와 수니파, 러시아와 서방의 대리전 양상으로 확대됐다.

 

미국 주도의 연합군은 2014년부터 IS 격퇴 작전을 벌이며 시리아에 발을 들였고, 2017~2018년 시리아군에 대해 간헐적이고 제한적인 작전을 펼치기도 했다. 러시아도 2015년 아사드 정부의 요청에 따라 시리아에서 군사작전을 개시했다.

2018년 9월 러시아와 터키는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 경계에 완충지대 설치를 합의하면서 휴전에 합의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같은 해 12월 시리아 철군을 결정했는데, 미군이 떠나면서 러시아와 터키가 시리아 내전의 향방을 규정하는 핵심 세력으로 떠올랐다.

 

시리아 내전은 반군의 마지막 거점인 북동부 이들리브(Idlib) 지역에서 공방이 계속되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지난해 3월 러시아와 터키의 중재로 두 번째 휴전이 성립됐으나, 이들의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상충하고 있어 군사적 긴장을 이어가고 있다.

 

전략적 요충지들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역사적 사건의 배경으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미·중 경쟁시대 전략 거점을 둘러싼 갈등의 향배는 어떻게 흐를까. 지정학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금 최대 전략 요충지 남중국해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지역.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전통의 지정학적 요충지 외에 지금 새롭게 떠오르는 화약고도 있다. 남중국해다. 중국은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사이에 위치한 남중국해 주변을 따라 알파벳 U자 형태로 그은 이른바 '9단선(nine-dash line)'을 따라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2013년에 대만을 추가해 10단선이 되었고 이를 두고 베트남·인도네시아·필리핀 등 동남아국과 분쟁을 이어가고 있다. 남중국해는 세계 해상 물동량의 3분의 1이 거쳐 가고 매년 4만여척의 선박이 통과하는 중요한 해상루트다.

 

막대한 부존자원과 함께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구상의 해상 거점이다. 중국의 팽창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입장에서도 남중국해는 전략 요충지다.

 

국제상설재판소(PCA)는 2016년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에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지만, 중국은 이 일대 작은 섬과 암초를 점령해 군사시설을 건설하는 등 여전히 관할권을 주장하고 있다.

 

각국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미국은 쿼드(Quad: 미국·일본·호주·인도로 구성된 안보협의체) 국가들과 4월 인도 벵골만 일대서 해상 훈련을 했다. 영국은 5월에 인도 태평양으로 퀸 엘리자베스 항공모함 전단을 보냈고, 독일도 이달 2일 남중국해로 군함을 보냈다.

 

중국은 러시아와 군사적으로 밀착하고 있다. 양국은 지난 10~13일 중국에서 '자파트-인터랙션(서부연합) 2021' 합동군사훈련을 했다. 남중국해에선 지금 '신냉전 구도'가 점점 구체화하고 있다.

 

센카쿠열도(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와 대만해협도 충돌의 우려가 높은 지역이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문제가 발생할 경우 모든 갈등을 한꺼번에 폭발시키는 화약고의 불씨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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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