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솔로몬의 일천번제 왕상 3:1-5

鶴山 徐 仁 2021. 8. 25. 10:45

솔로몬의 일천번제 왕상 3:1-5

 

 

08월 25일 (수)

   
솔로몬의 일천번제 왕상 3:1-5


1. 솔로몬이 애굽의 왕 바로와 더불어 혼인 관계를 맺어 그의 딸을 맞이하고 다윗 성에 데려다가 두고 자기의 왕궁과 여호와의 성전과 예루살렘 주위의 성의 공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니라
2. 그 때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아직 건축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며
3.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으나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
4.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5.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솔로몬이 애굽의 왕 바로와 더불어 혼인관계를 맺어 그의 딸을 맞이하고 다윗 성에 데려다가 두고 자기의 왕국과 여호와의 성전과 예루살렘 주위의 성의 공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니라>(1절).
솔로몬이 애굽의 공주와 정략결혼을 했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솔로몬은 내부의 적들을 모두 제거한 후 외국과의 동맹을 통해 왕국을 더욱 강화하려 했습니다. 당시 대국인 애굽이 왜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으려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는 곧 다윗과 솔로몬 치하의 이스라엘이 이미 상당한 수준의 국제적 위상을 확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일 것입니다. 


<솔로몬이 자기의 왕궁과 여호와의 성전 공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솔로몬은 즉위 제4년 즉 주전 966년경 성전 건축을 시작하여 즉위 11년 주전 959년경 완공했고(6:1, 38), 7년에 걸친 그 성전 건축 다음에는 궁전 건축에 착수하여 주전 946년, 즉 착공 13년만에 그 공사를 완공하였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아직 성전이 완공되기 전이었으므로 백성들은 물론 솔로몬 역시도 산당에서 하나님께 제사했는데 솔로몬이 당시 가장 큰 산당인 기브온에서 하나님께 <일천번제>(4절)를 드렸다고 합니다. <산당>이란 가나안 족속들의 우상숭배 장소와는 다른 곳으로 아직 성소인 성전이 없던 시절 백성들이 임시로 하나님을 예배했던 장소였습니다. 그곳에서 솔로몬이 신하들과 백성들의 지도자들을 모두 이끌고 자신과 백성들의 신앙을 고백하고 헌신을 다짐하는 <일천번제>를 드린 것입니다. 백성들을 통치하기 시작하면서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정립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것은 즉위 초 솔로몬의 강렬한 순종의 열의가 반영된 결단이었다고 볼 수 있는데, 아닌 게 아니라 하나님의 즉각적인 응답과 계시가 나타났습니다.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5절).
이것은 하나님이 당시 솔로몬의 그 <일천번제>의 희생제물을 기쁘게 받으셨음을 뜻합니다. 뿐만 아니라 솔로몬을 통해 뭔가 큰일을 하시고자 작정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전폭적인 기도, 집중하는 기도, 중심을 바치는 간절한 기도는 어느 시대, 그 누구의 기도든 반드시 이렇게 응답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일입니다.


-솔로몬 왕의 애굽 여인과의 혼인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솔로몬이 드린 <일천번제>에 대해 당신이 이해하는 바를 적어 보십시오.
-최근 당신이 체험한 기도 응답의 사례를 간략히 소개해보십시오.


주님,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잘 행했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기브온에서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리고 밤에 여호와의 나타나심을 체험했다고 했습니다. 나라를 다스리기에 앞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도한 솔로몬에게서 저희도 그 믿음을 배우고 헌신을 배우고 기도를 배우게 해주시옵소서. 솔로몬이 가장 영화로운 왕이 된 비결을 저희도 놓치지 않고 깨닫게 해주시옵소서.
 
   
관계의 온도


“응. 응. 겨우 한 획 차이이지만, 온도의 차이가 확연히 느껴지는 대
답입니다.  응 옆에는 왠지 모르게 “~ ~” 정도의 따뜻한 말이 붙어
있을 것 같습니다. “응 밥 먹었지 당신은?” 같은.
그에 반해 응 옆에는 여지없이 마침표가 붙을 것 같습니다.
응. 정도의 차가운.”


정영욱 저(著) 《나를 사랑하는 연습》 (부크럼, 62쪽) 중에 나오는 구
절입니다.
관계의 온도는 작은 차이에서 나옵니다. 커다란 차이가 아니라 딱 한
뼘만큼의 조그만 차이가 우리의 온도를 은은하게 데워주기도 하고, 식
어 버리도록 만들기도 합니다.
“응” 하고 끝내 버리면 차가와 지고,
“응, 나도 보고 싶어” 하면 따뜻해 집니다.
아주 작은 차이지만 분명 ‘아’ 다르고 ‘어’ 다릅니다. ‘님’이라고
쓰려 하다가 점 하나를 잘못 찍으면 ‘남’이 됩니다. ‘빛’이 ‘빚’
이 되고, ‘감성’이 ‘감정’이 되기도 하고, ‘마침표’가 ‘미침표’
가 되기도 합니다.
관계의 온도는 아주 작은 말 한 뼘에 온기를 실을 때 높아집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라는 주님 말씀은 ‘작은 말’하나에도 사랑과
은혜를 넣으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잠16:24)
   
시편 119편 116절


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시편 119편 116절)


Sustain me according to your promise, and I will live; do not let my hopes be dashed. (Psalms 119:116)
   
약점을 인정하기
자신의 약점을 훤히 드러내야 성령의 능력 안에서 살 수 있다. 하지만 팬들은 좀처럼 약점을 인정하지 못한다. 팬들은 약점은 철저히 숨기고 강점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떠벌린다. 바울은 성령의 능력에서 벗어나 자기 힘으로 살아가려는 갈라디아교회의 성도들에게 어리석은 짓을 그만두고 성령의 품으로 돌아오라고 촉구한다.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갈 5:25)
-카일 아이들먼의 [팬인가, 제자인가] 중에서-


세상을 우리 힘으로 살려고 하면 힘듭니다. 이것은 우리는 노력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육체적으로 사는 자연인이 있고, 거듭나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영적인 존재가 있습니다. 영적인 존재, 신앙인으로 사는 것은 우리 힘이 아닌 성령을 의지하여 사는 것입니다. 삶은 살면 살수록 육체의 힘은 쇠약해집니다. 그러나 성령을 의지하여 사는 사람들은 썩지도 쇠하지도 않는 능력을 힘입어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