밧세바의 호소 왕상 1:11-21
08월 11일 (수)
밧세바의 호소 왕상 1:11-21 11. 나단이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에게 말하여 이르되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왕이 되었음을 듣지 못하였나이까 우리 주 다윗은 알지 못하시나이다 12. 이제 내게 당신의 생명과 당신의 아들 솔로몬의 생명을 구할 계책을 말하도록 허락하소서 13. 당신은 다윗 왕 앞에 들어가서 아뢰기를 내 주 왕이여 전에 왕이 여종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네 아들 솔로몬이 반드시 나를 이어 왕이 되어 내 왕위에 앉으리라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그런데 아도니야가 무슨 이유로 왕이 되었나이까 하소서 14. 당신이 거기서 왕과 말씀하실 때에 나도 뒤이어 들어가서 당신의 말씀을 확증하리이다 15. 밧세바가 이에 침실에 들어가 왕에게 이르니 왕이 심히 늙었으므로 수넴 여자 아비삭이 시중들었더라 16. 밧세바가 몸을 굽혀 왕께 절하니 왕이 이르되 어찌 됨이냐 17. 그가 왕께 대답하되 내 주여 왕이 전에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가리켜 여종에게 맹세하시기를 네 아들 솔로몬이 반드시 나를 이어 왕이 되어 내 왕위에 앉으리라 하셨거늘 18. 이제 아도니야가 왕이 되었어도 내 주 왕은 알지 못하시나이다 19. 그가 수소와 살찐 송아지와 양을 많이 잡고 왕의 모든 아들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군사령관 요압을 청하였으나 왕의 종 솔로몬은 청하지 아니하였나이다 20. 내 주 왕이여 온 이스라엘이 왕에게 다 주목하고 누가 내 주 왕을 이어 그 왕위에 앉을지를 공포하시기를 기다리나이다 21. 그렇지 아니하면 내 주 왕께서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나와 내 아들 솔로몬은 죄인이 되리이다 <나단이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에게 말하여 이르되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왕이 되었음을 듣지 못하였나이까 우리 주 다윗은 알지 못하시나이다>(11절). 선지자 나단이 아도니야의 반역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럼에도 곧장 다윗에게로 달려가기보다 밧세바를 찾아 먼저 그 사실을 알립니다. 아도니야의 반역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보고함에 있어 자신보다는 다윗의 총애를 받고 있을 뿐 아니라 이미 다윗의 후계자로 지목된 솔로몬의 어머니이기도 한 밧세바를 통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나단 선지자는 언제나 매우 지혜롭고 신중하게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런 나단 선지자가 보기에도 당시의 아도니야의 행위는 분명 왕위 계승자인 솔로몬을 제거하고 아버지의 왕위를 폭력으로 찬탈하려한 쿠데타였기 때문입니다. <이제 내게 당신의 생명과 당신의 아들 솔로몬의 생명을 구할 계책을 말하도록 허락하소서>(12절). 결국 밧세바는 나단 선지자의 계책대로 다윗의 침실로 들어가 아도니야의 반역을 고합니다. <그가 수소와 살찐 송아지와 양을 많이 잡고 왕의 모든 아들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군사령관 요압을 청해>(19절) 자신의 왕됨을 선포했다는 사실을 전하며 지금 빨리 온 이스라엘 앞에서 <누가 왕을 이어 그 왕위에 앉을지를 공포하시라>(20절)고 권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내 주 왕께서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나와 내 아들 솔로몬은 죄인이 되리이다>(21절)하며 절절히 호소합니다. 인간은 어리석어서 역사의 겉모습만 보고 그 내면에 담긴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읽어내는 능력이 언제나 부족합니다. 그래서 실수를 거듭하며 똑같은 잘못이라는 어리석은 덫에 걸리고 맙니다. 아도니야는 다윗의 넷째 아들로 셋째 아들이었던 압살롬의 반역과 그 최후를 누구보다도 가까이에서 봤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역시 압살롬과 결코 다르지 않은 경거망동으로 화를 자초하고 있습니다. 나단 선지자의 지혜와 아도니야의 미련함이 오늘 우리에게도 큰 깨달음이 되길 빕니다. -다윗 시대 나단 선지자의 신분에 대해 아는 대로 적어보십시오(14절). -본문 13절과 역대상 22:9 말씀을 비교해 보십시오. -왕의 침실에서 시중들던 <수넴 여자 아비삭>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3절)? 주님, 나단 선지자의 지혜와 계책으로 밧세바가 다윗 왕 앞에 나가 아도니야의 반역을 고하고 솔로몬이 바로 왕위 계승자임을 만백성들 앞에 공표하도록 호소했습니다. 저희도 인생의 고비고비에 찾아오는 결단의 순간에 나단처럼 또 밧세바처럼 그렇게 용기를 내고, 진실을 얘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보다 담대하도록 늘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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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제주 해녀의 낭만 “바닷속에서 전복 따 파는 제주 해녀도 제일 좋은 건 님 오시는 날 따다 주려고 물 속 바위에 붙은 그대로 남겨 둔단다.” 미당 서정주님의 시 「시론(詩論)」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님을 위해 제일 좋은 전복을 따지 않고 남겨 둔 해녀는 참 훈훈하고 따 뜻한 여백이 있는 사람입니다. 재능은 사람들 머릿속에 기억되지만, 배 려와 여백은 사람들 가슴속에 기억됩니다. 서정주 시인은 시(詩)의 전복도 제일 좋은 것은 따지 말고 물 속 바위에 붙은 그대로 남겨 두라고 합니다. 말하고픈 것들을 모두 말하지 말고 남겨 두라는 것입니다.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쏟아내는 것은 설명이지 시가 아닙니다. 말이 절제된 흰 여백은 감상하는 사람이 들어갈 공간 입니다. 시를 읽는 사람은 그 빈 공간 속으로 들어가서 스스로 하늘이 되기도 하고, 물이 되기도, 산이 되기도 합니다. 쉼표가 있어야 음악이 되고, 여백이 있어야 깊은 그림도 되고 시도 되 듯이, 하나님 안에서의 안식은 쉼표이며 여백입니다. 침묵의 시간이 있 어야 깊은 말이 되듯이 절제와 안식은 정체가 아니라 가장 큰 역동적인 활동입니다. 노예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쉬지 못합니다. 오직 일 밖에 없습니다. 노 예에게 있어 삶은 잔인한 진행형입니다. 자유인은 안식합니다. 쉴 줄 압니다. 즐거워할 줄 압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할 줄 압니 다.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막2: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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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2장 16절(1)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갈라디아서 2장 16절) Know that a man is not justified by observing the law, but by faith in Jesus Christ. So we, too. (Galatians 2: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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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십자가 예수를 최우선 순위로 사랑하는 길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이다. 무리와 제자의 차이는 자기의 십자가를 지느냐의 차이다. 예수 당시 십자가는 가장 잔혹한 형벌로 인식이 되었고 죽음과 수치를 의미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십자가를 진다고 하면 힘이 들고 고생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또한 자기가 힘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예수를 믿고 말씀을 따라서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때, 예수를 거역하는 세상으로부터 받게 되는 오해와 박해를 의미한다. 거절과 손해 보는 삶을 의미한다. -배창돈 외 14인의 [제자의 길을 걷는 사람들] 중에서- 예수님은 무리와 제자를 구분하십니다. 누구든지 따라올 수 있지만 반드시 과정은 있습니다. 그것이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십자가가 없는 따름은 온전하지 않습니다. 소문을 따라 몰려 다닙니다. 십자가를 끝까지 지는 사람은 고통의 순간, 영광의 순간에 십자가를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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