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을 덮어도 왕상 1:1-4
08월 09일 (월)
이불을 덮어도 왕상 1:1-4 1.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2. 그의 시종들이 왕께 아뢰되 우리 주 왕을 위하여 젊은 처녀 하나를 구하여 그로 왕을 받들어 모시게 하고 왕의 품에 누워 우리 주 왕으로 따뜻하시게 하리이다 하고 3. 이스라엘 사방 영토 내에 아리따운 처녀를 구하던 중 수넴 여자 아비삭을 얻어 왕께 데려왔으니 4. 이 처녀는 심히 아름다워 그가 왕을 받들어 시중들었으나 왕이 잠자리는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1절). 다윗은 30세에 왕이 되어(삼하 5:4-5) 헤브론에서 7년, 예루살렘에서 33년 도합 40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했으므로(2:11, 대상 29:27) 이때의 나이는 약 70세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 인간을 평가한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 사람의 삶과 내면에 얽혀 있는 복잡다단한 면모에서 어느 것 하나를 뽑아 이게 그 사람의 진정한 모습이었다고 결론을 내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인간 평가의 방식이나 기준, 또는 그 평가의 내용이 아닙니다. 언제나 자신의 평가를 결정적인 것,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확실한 것, 최후의 결론인 것처럼 믿는 그 완고함 자체가 틀렸다는 것입니다. 즉 모세는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신 34:7)고 했는데, 다윗은 어째서 70세쯤에 벌써 제 앞가림도 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느냐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한 때 혈기충천하고 영력까지도 드높았던 인물이 이제는 어느덧 노쇠의 운명을 피할 길이 없어 생명의 촛불이 흔들리는 시각을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다윗의 이런 쇠약한 말년은 단순히 생물학적인 원인을 넘어 더 복잡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사울에게 쫓겨 다닌 오랜 망명생활, 숱한 전쟁으로 온갖 풍상을 겪었고, 말년에는 집안의 불화, 반란, 살인, 음모 등 갖은 시련으로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을 것입니다. <... 우리 주 왕을 위하여 젊은 처녀 하나를 구하여 그로 왕을 받들어 모시게 하고 왕의 품에 누워 우리 주 왕으로 따뜻하시게 하리이다>(2절). 한때는 이스라엘의 영토를 크게 확장하며 성군으로서의 온갖 역량을 다 발휘하던 그가 이제는 노쇠한 인생이 되어 몸의 온기마저 잃고 젊은 처녀의 몸에서 따뜻한 체온을 공급받아야 하는 실로 가련한 처지가 됐습니다. <이 처녀는 심히 아름다워 그가 왕을 받들어 시중 들었으나 왕이 잠자리는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4절). -노쇠한 다윗에 대한 신하들의 처사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2절)? -생각보다 빠른 다윗의 노화에 대한 당신의 소견은? -옛 이스라엘 지도에서 헬몬산 남동쪽 기슭에 위치한 <수넴>(3절)을 확인해 보십시오. 주님, 저희로 하여금 세월의 속절없음을 안타까워하기보다 육신의 나이를 이기는 속사람의 강건함을 누리게 해주시옵소서. 바울의 고백처럼 <겉 사람은 날로 낡아가나 우리의 속사람은 도리어 날로 새롭도다>하며 사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베들레헴의 이름 없는 한 목동이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 되어 수많은 업적을 남겼으나 이제 극도로 노쇠하여 인생의 황혼기를 맞은 다윗의 파란만장한 생애가 오늘 저희에게도 많은 깨달음과 지혜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
|
막연한 희망의 무서움 “‘그래,꿈 속의 목소리가 뭐라고 대답합디까?’(중략) ‘3월 30일 이래요’ F는 희망에 차 있었고 꿈속의 목소리가 하는 말이 맞다고 확 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약속의 날이 임박했을 때 우리 수용소로 들어온 전쟁 뉴스를 들어 보면 그 약속한 날에 우리가 자유의 몸이 될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였다(중략). 3월 29일,F는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고 열이 아주 높게 올랐다(중략). 3월 31일에 그는 죽었다.” 빅터 프랭클 저(著) 이시형 역(譯)「죽음의 수용소에서」(청아출판사, 190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들은 나치의 포로수용소에서 수용되면서 심한 고초와 대학살을 당했습니다. 끝을 모르겠는 전쟁과 수용소 생활, 늘 죽음을 옆에 두고 살았던 수감자들 중 어떤 사람들은 막연한 희망을 품 었습니다. F라는 음악가는 독일이 패망하는 꿈을 꾸고는 희망에 부풀었 습니다. ‘3월 30일이 되면 독일이 항복한 데!’ 하지만 독일은 항복 하지 않았고,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내 친구의 죽음을 초래했던 결정적인 요인은 기대했던 해방의 날이 오지 않았다는 데에 있었다. 그래서 그는 몹시 절망했으며,잠재해 있던 발진티푸스 균에 대항하던 그의 저항력이 갑자기 떨어진 것이다.” (136쪽) 대책 없는 낙관주의를 나타내는 ‘스톡데일 패러독스’ 라는 말이 있 습니다. 월남전 때, 8년간 포로 생활을 하다가 풀려난 스톡데일 장군의 이야기에서 나온 말입니다. 포로 생활을 하면서 크리스마스에는 풀려 나겠지, 새해 첫날에는 풀려나겠지 하면서 막연한 기대를 하는 사람은 기대가 무너지면서 죽어 가더라는 겁니다. ‘쓸데없는 염려’는 분명 나쁘지만 ‘막연한 기대’ 또한 사람을 힘들게 합니다. 성경은 거짓 평안과 희망을 전하는 거짓 선지자들을 경계합니다. 막연한 희망을 품기보다, 언제 문제가 풀릴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선 하신 인도를 믿고 하루하루를 신실하게 채워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6:9) |
|
이사야 58장 11절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이사야 58장 11절) The LORD will guide you always; he will satisfy your needs in a sun-scorched land and will strengthen your frame. You will be like a well-watered garden, like a spring whose waters never fail. (Isaiah 58:11) |
|
기다림 인간은 하나님의 시간을, 하나님의 방식을 기다리지 못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죄입니다. 아브라함은 실수를 했습니다.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너희는 잠잠히 여호와를 기다리라”(시 37:7)는 시편 기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것이 겸손한 태도입니다. 성경은 전부 기다림의 역사입니다.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또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기다림이 바로 겸손입니다. -송태근의 [모든 끝은 시작이다] 중에서- 신앙은 처음부터 끝까지 기다림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와 방법으로 일하시도록 기다리는 일이 믿음입니다. 기다림이 없이는 열매가 없습니다. 기다림이 없이는 구원을 이루지 못합니다. 오늘도 기다리게 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습니다. 기다리는 자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신 후에 열매를 얻게 됩니다. |
'Faith - Hymn'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밧세바의 호소 왕상 1:11-21 (0) | 2021.08.11 |
---|---|
아도니야의 반역 왕상 1:5-10 (0) | 2021.08.10 |
[MR] 나 같은 죄인 살리신 / Amazing grace / 찬송가반주 (0) | 2021.08.08 |
[늘찬송하면서 Hymns] 내 진정 사모하는 "I Have Found a Friend in Jesus" (0) | 2021.08.08 |
풍성한 삶의 조건 예레미야 17:5~8 (0) | 2021.08.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