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하나님의 뉘우치심 삼하 24:14-17

鶴山 徐 仁 2021. 8. 3. 11:59

하나님의 뉘우치심 삼하 24:14-17

 

 

08월 03일 (화)

   
하나님의 뉘우치심 삼하 24:14-17


14. 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고통 중에 있도다 청하건대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15. 이에 여호와께서 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전염병을 이스라엘에게 내리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백성의 죽은 자가 칠만 명이라
16. 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의 손을 들어 멸하려 하더니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리심을 뉘우치사 백성을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여호와의 사자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 곁에 있는지라
17. 다윗이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곧 여호와께 아뢰어 이르되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소서 하니라



<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의 손을 들어 멸하려 하더니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리심을 뉘우치사 백성을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15절).
하나님이 선견자 갓을 통해 제시하신 세 가지 재앙 중 다윗이 택한 <사흘 동안의 전염병>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임해 백성 중 죽은 자가 <칠만 명>(15절)이나 됐다고 합니다. 
그 짧은 시간에 그토록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것은 당시 하나님의 진노로 인한 전염병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무시무시한 재앙이었음을 말해 줍니다. 


다윗의 인구조사로 촉발된 하나님의 진노가 전염병이라는 맹렬하고도 급속한 재앙이 되어 이스라엘 전역을 내리 덮은 것입니다. 이로써 다윗과 이스라엘은 군 병력에 큰 타격을 입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힘에 의지하려는 자의 능력을 철저히 약화시키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기서 똑똑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재앙 내리심을 <뉘우치셨다>는 뜻의 히브리말 <나함>은 <뜻을 돌이키셨다>는 의미입니다(창 6:6, 출 32:14, 삿 2:18, 시 106:45). 이것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이 다윗의 회개와 진실한 기도를 들으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다윗과 그 백성을 사랑하시는 여호와의 긍휼과 자비의 성품 때문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다윗의 회개도 보십시오. <...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거니와 이 양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소서 하니라>(17절). 히브리어 문법에서 인칭은 흔히 동사 속에 포함되어 있는데 여기서 다윗은 인칭대명사 <아노키>를 두 번이나 반복하여 사용함으로써 그 모든 것이 백성이 아니라 자신의 범죄임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백성들보다는 자신과 자기의 아버지집이 형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일체 다른 이에게는 죄를 전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 번 다윗의 진정한 회개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즉 참된 회개란 자신의 죄악을 인정하고 고백할 뿐 아니라 그 범죄로 말미암은 결과까지도 기꺼이 책임지려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다른 사람의 허물과 죄악까지도 자신의 책임으로 느끼며 통회하고 또 긍휼과 자비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병행구절인 대상 21:16에서 이 대목을 보면 다윗은 이때 <굵은 베옷을 입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기도했다고 합니다.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15절)란 무슨 뜻입니까/
-<백성을 치는 천사>(16, 17절)에 관해 아는 대로 적어 보십시오.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소서>(17절)라고 한 다윗의 기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님, 다윗의 기도는 정직하고 비장했습니다. 백성들이 아니라 자신이 범죄했다고 했고, 따라서 저와 제 아버지의 집을 징계해 달라고 탄원했습니다. 주님, 툭하면 남에게 죄를 전가하고,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며 변명하는 저희의 모습을 생각하며 다윗의 이런 회개와 기도의 자세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또 깨닫는 저희들 되게 해주시옵소서. 
 
   
아인슈타인에 대한 다른 해석


“아인슈타인이 과학자로서 얻은 전무후무한 명성은 그의 과학적 업적
과는 전혀 상관없는 우발적인 사건 덕분이었다. 그는 우연히 적시에 적
소에 있었을 뿐이었다(중략) 우리가 정의한 성공,즉 성공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함께 해내는 것이라는 말을 기억하는가?”


앨버트 라슬로 바라바시 저(著) 홍지수 역(譯) 《성공의 공식 포뮬러》
(한국경제신문, 328-329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네트워크 연구의 대가이자 세계적 물리학자인 앨버트 라슬로 바라바시는
최첨단 과학적 데이터 분석 체계를 이용해 과학, 스포츠, 예술, 비즈
니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인물들을 분석하여 이
들이 성공 법칙을 5가지로 제시합니다. 그러면서 아인슈타인 같은 경우,
그의 성공이 우발적인 사건의 영향이 컸다고 합니다. 이런 사실을 통해
성공이란 ‘우리가 속한 공동체로부터 얻는 보상’이라고 정의합니다.
즉, 성공은 개인 혼자만의 성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집단이 그 성
과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의 문제에 달려 있음을 말한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능력이 있어도 공동체에 인정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성공이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영웅들의 개인적 탁월함을 인정합니다. 그
러나 성공은 개인적인 현상이 아니라 집단적인 현상이며, 나 혼자서만이
아니라, ‘함께 해내는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른바 성
공한 사람들은 늘 겸손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그토록 아름답게 사역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개인적인
헌신 뿐 아니라, 그 주변에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섬김을 다했던 동역
자들 때문입니다.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잠22:4)
   
이사야 55장 1절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이사야 55장 1절)


Come, all you who are thirsty, come to the waters; and you who have no money, come, buy and eat! Come, buy wine and milk without money and without cost. (Isaiah 55:1)
   
먼저 형제와 화해할 것
사탄은 우리 마음에 자꾸 원한을 품게 한다. 
빌립보서 4장 2절에 
사도 바울은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같은 마음을 품을 수 있도록
 내가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말씀한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빌립보 교회에서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불편한 관계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둘이
 한 마음이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예수님도 마태복음 5장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가기 전에 
먼저 형제와 화해할 것을 말씀하신다. 
형제와 화해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드리는 기도는 의미가 있을까?
-강용규 목사의 ‘축복의 통로’에서-


형제와 마음을 풀고 화평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그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십니다.
 아무쪼록 우리 마음속에 주님이 주시는 
편안한 마음, 화평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십시오.
에배를 드림으로 주님 주시는 하늘의 평강이 
충만하시기를 원하신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