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찾는 사람은 누구나 주님을 찬양할 것이다 시편 22편 22-31절
07월 27일 (화)
주님을 찾는 사람은 누구나 주님을 찬양할 것이다 시편 22편 22-31절 22.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23.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지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지어다 24.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그가 울부짖을 때에 들으셨도다 25. 큰 회중 가운데에서 나의 찬송은 주께로부터 온 것이니 주를 경외하는 자 앞에서 나의 서원을 갚으리이다 26.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 27.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 28.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 29. 세상의 모든 풍성한 자가 먹고 경배할 것이요 진토 속으로 내려가는 자 곧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도 다 그 앞에 절하리로다 30. 후손이 그를 섬길 것이요 대대에 주를 전할 것이며 31. 와서 그의 공의를 태어날 백성에게 전함이여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 할 것이로다 여러분은 하루에 얼마나 주님을 찬양하십니까? 우리의 입술에 찬양이 없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 시편 22편을 읽어보면, 이 시편이 찬양이라는 생각을 절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특히 시편 22편 1절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모든 고통을 받으실 때 하나님께 했던 절규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고백을 다윗이 하고 있다는 것은 이 땅에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고백을 담아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편이 믿음의 찬양인 이유가 있습니다. 3절부터 다윗이 고백하는 것을 보면, 다윗은 그의 선조들의 삶을 돌아보며 절망의 상황에서 항상 구원해 주시고 인도해 주셨던 하나님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절망스로운 상황이지만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실 것을 믿음으로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찬양은 선포라고 합니다. 우리의 눈에는 절망뿐이지만,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선하신 분이심을 기억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윗도 선조들의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온전한 믿음이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22절부터의 고백을 보면, 다윗은 자신의 실제의 삶에서 역사하셨던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실제로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니, 하나님은 항상 신실하게 모든 곳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에 자신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인도해 주셨던 분이었음을 기억하게 됩니다. 찬양은 막연하거나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었던 시간들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며 나아갔을 때, 하나님의 구원해 주셨던 신앙의 간증들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이 경험들이 있습니다. 찬양은 삶에서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하나님 앞에서의 고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찬양은 단순한 노래가 아닙니다. 찬양은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선물입니다. 오늘 시편을 비롯하여 많은 시편은 고난 중에 하나님을 만난 간증입니다. 다 잘되고 성공한 다음에 찬양한 것이 아니라 고난 중에서 찬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절망 속에서도 절절하게 하나님을 찾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찬양은 고난 중에서 하나님을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고난의 상황에서 찬양을 시작하는 하루를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찾으며 찬양하기 시작할 때, 하나님은 다윗에게 그렇게 행하셨던 것처럼 그 믿음의 찬양대로 인도해 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의 삶속에서 절망스러운 상황에 닥쳤을 때,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을 찾아봅시다. 주님!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시작하기 원합니다. 오늘 삶에서 느끼는 절망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찬양을 시작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은 분명 모든 것을 회복해주시고 나를 구원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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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영혼을 실으라 “우리가 이웃을 축복할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 ‘일’을 통하여 이웃을 축복하는 것이다. 내가 만드는 것, 내가 서비스하는 것을 통해 이웃을 축복한다. 노래하는 사람은 최상의 노래를 불러서,빵을 만드는 사람은 최상의 빵을 만들어서 이웃을 축복한다.” 한재욱 저(著) 《인문학을 하나님께 3집》 (규장출판사, 91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영혼 없는 일은 이웃에 대한 조롱입니다. 영혼 없는 눈길이 모욕이듯 이,영혼 없는 일은 무례함을 넘어 무시입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저자 밀란 쿤데라는 영혼을 싣지 않는 일을 ‘부도덕’하다고 했고, 생태학자 김종철은 이러한 일을 ‘범죄 행위’라고까지 말했습니다. 영혼을 실은 농부의 쌀 한 톨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바라보면 천 근의 무게와 우주의 이야기를 느낍니다. 주님은 주어진 일을 주께 하듯,영 혼의 감동을 싣는 최상의 시인을 찾으십니다. 미켈란젤로가〈모세 상(像)〉을 조각할 때의 일화입니다. 미켈란젤로는 완성된 그의 작품을 한참 바라보더니, 갑자기 화가 나서 끌로〈모세 상〉 의 발등을 부수면서 울부짖었습니다. “왜 너는 말을 하지 않느냐?” 차가운 대리석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싶었던 그의 열정 때문이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골3: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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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4장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13) I can do everything through him who gives me strength.(Philippians4: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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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든지 감사의 조건, 행복의 조건이 미국의 한 신문사가 현대사회를 맹렬하게 비판한 후 현대인 중엔 아무도 행복한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신문기사 맨 끝에 이렇게 형편없는 사회에 살면서 정말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연락해 달라고 했다. 그런데 무려 5만여개의 행복의 사례가 들어왔다고 한다. 그 대부분은 평범한 일상에서 느끼는 작고 소박한 것들이었다. 그 가운데 "하루 일을 잘 끝낸 행복, 예쁜 꽃을 보는 행복, 아침에 새소리를 듣는 행복, 시원한 바람을 느끼는 행복… 등등"의 내용이었다. -고신일 목사의 ‘하나님의 뜻이니라’에서- 오늘 아침에 눈을 뜬 것에 대해 감사하셨습니까? 교회에 오면서 바람을 느낄 수 있었음에 감사하셨습니까? 꽃을 볼 수 있어서 감사하셨습니까? 우리는 너무 엄청난 조건에서의 감사에 매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 주변에는 얼마든지 감사의 조건, 행복의 조건들이 많이 있습니다. 보통 사람은 어떤 조건이 이루어져야만 감사합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은 보통의 삶에서도 감사하며 살아야하는 것입니다 |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습니다 전도서 4장 7-12절
07월 26일 (월)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습니다 전도서 4장 7-12절 7. 내가 또 다시 해 아래에서 헛된 것을 보았도다 8. 어떤 사람은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이 홀로 있으나 그의 모든 수고에는 끝이 없도다 또 비록 그의 눈은 부요를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면서 이르기를 내가 누구를 위하여는 이같이 수고하고 나를 위하여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가 하여도 이것도 헛되어 불행한 노고로다 9.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10.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11.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2016년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1인 가구’가 27.2%라고 합니다. 3명 중에 1명은 혼자 산다는 이야기압니다. 그래서 이제는 ‘독거’, ‘혼밥’이라는 말이 어색하기 않습니다. 이렇게 되고 있는 한 가지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혼자 있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하며 혼자이기를 소망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는 이유는 주의에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정말 홀로 존재한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기쁜 일이 있어도 같이 기뻐할 사람이 없고, 무언가를 이루었는데 함께 나눌 계획이 있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혼자이고 싶다.”는 말은 아마도 “잠시 혼자이고 싶다.”는 말일 것입니다. 오늘 전도서 말씀에 등장하는 사람도 그런 상황 가운데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혼자이면 힘들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사는 이유는 세상 속에서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상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습니다. 성경의 인물들을 보면, 이런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이삭은 주위 사람들이 계속 우물을 빼앗으며 분쟁하였고, 야곱은 삼촌에게 20년을 속았으며, 요셉은 형들의 손에 팔렸고, 다윗은 장인인 사울과 아들인 압살롬에게 죽을 뻔합니다. 이 세상은 사람이 사는 곳이기에 다툼과 아픔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관계에서도 이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그 가운데 우리는 상처를 받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사람들 때문에 상처받은 일보다 사람들 때문에 위로받고 기쁘고 행복했던 일이 훨씬 더 많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그것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가족 때문에 힘들다고 말하지만, 가족 때문에 얼마나 많이 기쁘고 얼마나 많은 행복한 경험을 했는지를 기억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기쁜 일은 당연히 여기며 잊어버리고 나쁜 기억만을 오래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기억 구조는 나쁜 일을 오랫동안 기억하는 구조라고 합니다. 그래서 나쁜 기억이 있으면, 그 동안의 좋은 기억들을 전혀 떠오르지 않고 오로지 그 기억이 모든 것을 좌우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트라우마’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만남을 통해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기쁨과 은혜가 훨씬 많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사람이 함께하면 ‘두 겹줄’이라고 해야 맞는데, 왜 ‘세 겹줄’이라고 했는지 궁금합니다. 이것에 대해서 한 주석서는 이것이 “사람과 사람관계 속에 하나님이 함께하셔야 온전한 관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세 겹줄”이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이 관계 속에 함께 하시면 우리의 관계는 온전한 관계를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그 속에 하나님이 주신 기쁨을 있음을 믿고, 힘든 관계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해 주셔서 ‘세 겹줄’의 관계를 맺어갈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내가 피하고 싶은 관계가 있다면, 그 관계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복을 기억해 보고 하나님이 그 관계가운데 함께 해 주시기를 기도하고 도전해 봅시다. 주님! 내가 받은 상처 때문에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힘들어 할 때 주님 함께 해 주시옵소서. 관계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복이 훨씬 큼을 보게 하시고, 주님이 ‘세 겹줄’이 되어 주심을 믿고 먼저 선을 행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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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에서 헤어 나오는 법 “오랫동안 예술가들은 작품의 깊이를 요구받았고, 또 깊이를 평가의 잣대로 삼았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깊이에의 강요’ 뿐만 아니라,‘성공에의 강요’, ‘아름다움에의 강요’ 등 수많은 강요가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이런 강요에서 헤어 나올 수 있는 길은 어디 있을까? 해답은 ‘기준’에 있다. 올바른 기준을 세우면 깊이에의 강 요를 이길 수 있다.” 한재욱 저(著) 《인문학을 하나님께 3집》 (규장출판사, 37-38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인생과 신앙은 ‘기준의 싸움’입니다.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어떤 사 람이 개와 달리기를 해서 졌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이 말했습니다. “개만도 못한 분” 열심히 노력해서 속도를 높여 개와 같이 들어왔습니다. 옆에 있는 사 람이 말했습니다. “개 같은 분” 더 노력해서 개보다 더 빨리 들어왔 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이 말했습니다. “개보다 더한 분!” 물론 극단적인 유머입니다.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해도 마찬가지 입니다. 인생과 신앙의 기준이 멋져 보이는 ‘어떤 사람’이라면 그 사 람과 나를 평생토록 비교하며 불행할 것입니다. 잘못된 기준을 세워 놓 으면 아무리 노력해서 승리한다고 해도 의미 없는 싸움이 된다. 우리 삶의 기준, 신앙의 기준,깊이의 기준은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구체 적으로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요1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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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 7장18절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미가7:18) Who is a God like you, who pardons sin and forgives the transgression of the remnant of his inheritance? You do not stay angry forever but delight to show mercy. (Micah7: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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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가나안 진입에 있어서의 여호수아와 갈렙,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장례를 위해 향유를 그의 몸에 부은 여인, 그리고 바울을 그리스도의 참 증인으로 끝까지 비호해 준 바나바, 이들의 하나의 공통점은 그들은 다수 편에 서지 않고 자신들의 신앙대로 행동했다는 사실이요, 위험에 직면하여 피해 가지 않고 정면으로 도전하였다는 사실이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글, 주님의 시선 ‘바울과 바나바’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이나 옥합을 깨뜨린 여인같은 사람들은 사람들의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의 길로 간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기독교 선교에 있어 바울이 없는 그리스도는 상상할 수조차 없습니다. 역사적 예수가 그리스도로 승화되고 인류의 길이 되고 진리가 되고 생명이 된 것은 바울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다메섹 사건과 바나바는 그리스도교 선교사로 기둥이라 해도 잘못되지 않는 견해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교훈을 주는 사람들의 행적을 살펴보십시오. 아무리 위험해도 자신의 믿음대로 행동한 사람들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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