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사한 서른한살 청년의 원룸에는 이력서 150개가 있었다
생활고 속 고독사하는 청년 늘어
“사회적 연결고리 만들어야”
입력 2021.07.22 15:33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6평 남짓한 오피스텔에서 A씨가 지난 4월 외롭게 세상을 떠났다. 31세 청년인 A씨가 발견된 것은 죽은 지 사흘이 지난 뒤였다. 그의 방 구석에는 대형 여행가방 2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고, 한 중소기업에서 영업직으로 활동하던 명함도 발견됐다. 회사생활을 위해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자취생활을 하던 청년이었다.
A씨는 오피스텔 관리비를 3개월이나 내지 못할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렸다. 방안에는 각종 쓰레기와 소주병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그렇다고 A씨가 희망을 모두 버린 건 아니었다. 다른 한켠에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가 5장씩 들어있는 파일이 30개나 나왔다. 생활고를 겪으며 힘들어 하면서도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새 직장을 구하려 노력했을 A씨의 생전 모습이 눈에 아른거리는 듯했다. 그의 곁을 지켜준 건 소주병뿐이었다.
유족들은 무너지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유품정리 작업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고독사 현장을 청소하는 특수청소업체가 “취업하기가 힘들었나봐요”라고 위로의 말을 건넸으나, 부모들은 아무 말 없이 눈물만 흘렸다. A씨 어머니는 “우리가 잘 살았으면 아들이 이렇게 떠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스스로를 자책했다.
지난 4월 서울 강남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숨진 채 발견된 A씨의 집 내부. /김새별씨 제공
1인 가구 증가와 취업난이 겹치면서 ‘2030′ 청년들이 고독사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고독사는 가족이나 사회 등 주변과 단절된 채 홀로 아무도 모르게 생을 마감한 후 일정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발견되는 죽음을 의미한다.
지난 3월에는 헬스장을 운영하던 34세 남성 B씨가 서울 마포구의 한 원룸에서 죽은 지 열흘 만에 발견됐다. 유족들에 따르면 막내였던 B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헬스장 운영이 어려워지자 막노동을 하며 생계를 해결했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자 주변에 돈을 빌려가며 임대료를 충당했지만 결국 버티지 못했다.
B씨의 형은 고인이 살던 방을 바라보며 연신 한숨만 내쉬었다. B씨의 형은 “코로나에 걸려도 죽고, 안 걸려도 죽으니 결국 똑같은 거 아닌가”하며 중얼거렸다.
청년들의 고독사 증가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전국 17개 광역지자체가 집계한 10~30대 무연고 사망 사례는 2017년 63건에서 지난해 100건으로 늘었다. 무연고 사망으로 처리되지 않는 고독사도 많기 때문에 실제 고독사하는 청년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고독사 통계가 정확하지 않다”며 “그동안 고독사에 대해 경찰과 자치구 사이 소통이 없어 집계가 원활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고독사 현장을 청소하는 특수청소업체들도 생활고에 따른 청년 고독사는 계속 증가 추세라고 강조한다. 이들에 따르면 청년들이 극단적 선택을 한 장소에서는 ‘힘들다’는 내용의 메모장, 다량의 복권, 취업 준비 관련 서적들이 자주 발견된다.
지난 3월 서울 마포구의 한 원룸에서 숨진 채 발견된 B씨의 집 내부. /김새별씨 제공
청년 A씨와 B씨의 유품정리를 진행한 김새별 바이오해저드 대표는 “청년들의 고독사는 언제나 늘 우리 사회에 있었다”며 “고독사는 중장년층이 가장 많은데, 그 다음으로 많은 연령대가 청년층”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청년들은 취업이나 수험 등 현실적인 문제로 극단적인 선택에 이른다”며 “짧게는 3일, 길게는 한 달이 지난 뒤 숨진 채로 발견된다”고 했다.
이지혜 비움특수청소 대표도 “고독사 현장을 가면 전체의 20~30%는 청년”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특히 지난 6월에는 청년 고독사 현장이 늘었다”며 “실족사는 아예 없고 전부 극단적 선택을 한 사례들”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청년들은 건강하다’라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근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청년들의 이상과 현실의 간극이 커져 사회로부터 고립감과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일자리 부족과 부의 불균형이 심각해질수록 청년 고독사 문제는 악화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익중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최근 청년 일자리가 부족해지면서 청년들의 절망감이 커지고 있다”며 “100번이고 200번이고 취업을 시도해보지 않았겠냐”고 했다. 그는 “청년에게 ‘육체 노동이라도 해서 돈을 벌면 되지 않느냐’는 식의 비판을 하는 건 청년들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청년들의 고독사를 막기 위해선 사회적 관심이 끊기면 안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 교수는 “금전적 지원보다는 청년들을 위한 사회적 연결고리를 만들어야 한다”며 “봉사나 스터디 등 이른바 ‘스펙’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관계의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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