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스쿨’ 한국선 못 열고, 결국 美에 세웠다
한류 팬 1억명 시대의 코미디
박세미 기자
입력 2021.01.16 03:20
지난해 9월 우리나라 대형 연예기획사인 SM엔터테인먼트와 대형 입시 업체인 종로학원하늘교육은 글로벌 K팝 교육기관인 ‘SM인스티튜트’를 서울에 세우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런데 이 소식이 전해지자, 전 세계에서 “어떻게 하면 들어갈 수 있느냐”는 문의 이메일이 1000통 넘게 쏟아졌다. 영어·중국어·일본어는 물론 인도어, 베트남어, 포르투갈어 등으로 쓰여 직원들이 밤새 구글 번역기까지 동원해야 했다고 한다. 상당수는 “해당 인스티튜트를 우리나라에도 유치하고 싶다”는 사업 제의였다. SM 담당자는 “단지 계획만 전했을뿐인데 너무 큰 관심이 쏟아져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전 세계 한류(韓流) 팬 숫자가 지난해 처음으로 1억명을 넘어선 상황에서 전해진 낭보였다.
코로나19로 지친 국내외 한류 팬을 위로하고 한류 콘텐츠와 연관 산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박양우), 한국콘텐츠진흥원(원장 김영준)과 네이버(대표 한성숙)가 개최한 종합 한류행사 '온:한류축제'가 막을 내렸다./한국콘텐츠진흥원
그런데 사실 여기엔 말 못 할 사정이 숨어 있다. SM엔터테인먼트와 종로학원은 2016년부터 정식 학교 형태인 ‘K팝 스쿨’을 추진했다. 4년 넘게 애를 썼지만 학교 설립과 교육과정 운영에 각종 제한을 두고 있는 우리나라 법규제 때문에 여의치 않자 ‘학원'인 인스티튜트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대신 SM은 K팝 등을 가르치는 온라인 고등학교인 ‘디지털스쿨’(가칭)을 미국 캘리포니아에 설립하고 이달 중 학교 설립 허가가 나면 개교할 방침이다. K팝을 알리고 퍼뜨릴 전진 기지가 규제 탓에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먼저 선보이는 셈이다.
◇'5중고'에 부딪힌 한류 전진기지
‘K팝 스쿨’은 ‘똑똑한 아이돌 스타’를 일찍부터 기르겠다는 취지로 추진됐다. 10대 외국인·한국인 200여명을 뽑아 국어와 영어·수학·사회·과학 등 정규 교과를 온라인으로 가르치고, 교실에서는 보컬 트레이너, 안무가, 작곡가 등이 노래와 춤, 작곡을 가르친다는 게 핵심 커리큘럼이다. 청소년들이 아이돌 활동을 위해 학업을 중도에 그만두는 일을 막고, 체계적인 외국어·예술 교육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활약할 수 있는 스타로 만들기 위해서 구상했다.
이를 위해 SM은 학생 개개인 학업 성취도를 측정하고, 수준에 맞춰 교과 수업을 이수하도록 하는 인공지능(AI) 온라인 프로그램도 도입했다. 한 교실에 아이들을 몰아넣고 똑같은 지식을 주입하는 기존 교육 방식 대신,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결합한 이른바 ‘블렌디드 스쿨(Blended School)’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모든 수업은 영어와 중국어로 진행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전세계 한류 팬 현황
그러나 이런 청사진은 국내법 앞에서 무력화됐다. 먼저 민간은 우리나라에서 ‘온라인 학교’를 설립할 수 없다. 초중등교육법상 ‘방송통신중·고교’가 운영되고 있지만, 오직 국공립만 가능하다. 외국어·예술 중점 교육도 불가능하다. 현행법상 고교생은 국·영·수 등 주요 교과를 180시간 중 절반 이상 반드시 이수해야 졸업장이 나온다. 영어 몰입 교육은 규제 대상이다. 정식 ‘고등학교’를 세우려면 학교 부지나 체육시설 확보, 일정 규모 교사에 외국인 학생 입학은 정원 외 최대 2% 등 ‘K팝 스쿨'로선 난감한 규제가 널려 있다.
‘외국인·국제학교’ 또는 ‘대안학교’ 설립도 검토했지만, 이 역시 사실상 불가능했다. 현행법상 외국인학교나 국제학교는 국내 법인이나 한국인은 설립할 수 없다. ‘대안학교’ 역시 외국어를 주된 언어로 교육하는 걸 금지하고 있다. 결국 SM은 K팝 스쿨을 ‘학원’으로 등록하고 문을 여는 방향으로 검토할 수밖에 없었다. 외국 청소년에게 유학생 비자가 발급되지 않고, 고교 학력을 인정받을 수 없다는 단점이 고민이다. 중·고교생 대상이기 때문에 ‘심야 교습 금지’ 대상으로 밤 10시 이후엔 반드시 문도 닫아야 한다.
◇”미래형 실험 학교 장려해야”
교육계에서는 “20세기 규제로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 교육을 옭아매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아이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갖추긴 해야 하지만 새로운 실험적 학교도 숨을 쉴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주는 결단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방송통신중·고는 저학력 소외 계층을 위한 기관이라는 이유로 지금까지도 교육비가 저렴한 국공립 부설만 설립을 허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교육부 담당자는 “1970년대 무학자들에게 제공하던 교육 복지 서비스를 바탕으로 조항이 마련된 것”이라며 “온라인 교육이 확장되는 시대에는 새로운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에는 다양한 교육과정과 교재를 인정하는 실험적인 학교 설립이 자유롭고, 정부의 간섭도 적은 편이다. 미국에 널리 알려진 ‘차터스쿨’은 공립학교이면서 교육과정이 자유롭고, 과학이나 컴퓨터 등 특정 과목 몰입 교육도 가능하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가 투자한 ‘서밋스쿨’도 오전에는 AI 맞춤형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고, 오후에는 토론 수업 등을 진행하는 새로운 교육 방식으로 운영한다. 주정부는 학교 설립에 있어 최소한의 교육과정 등만 심사하고 예산을 지원해준다.
이주호 전 교육부 장관(KDI 교수)은 “우리나라는 대안학교 이상의 자율성을 허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며 “미래에 새로운 형태의 학교가 나올 수 있도록 혁신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할 학교를 장려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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