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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치하의 유럽을 보라… 우리의 식민·분단만 비극인가

鶴山 徐 仁 2021. 1. 16. 07:33

히틀러 치하의 유럽을 보라… 우리의 식민·분단만 비극인가

 

英 역사학자가 쓴 2000쪽 벽돌책
유럽, 세계대전·혁명·대공황에도 70년 넘게 번영과 평화 구가해와

 

김기철 학술전문기자


입력 2021.01.16 03:00

유럽 1914-1949: 죽다 겨우 살아나다

이언 커쇼 지음|류한수 옮김|이데아|928쪽|5만2000원

유럽 1950-2017: 롤러코스터를 타다

이언 커쇼 지음|김남섭 옮김|이데아|1128쪽|5만5000원

 

‘20세기는 예사롭지 않게 인상적이고 비극적이고 한없이 매혹적인 세기다.’

영국 역사학자 이언 커쇼(78)가 그린 유럽의 20세기는 지옥과 천당을 롤러코스터처럼 미친 듯 오간 격동의 역사다. 세계대전만 두 차례 겪었고, 그 사이엔 혁명과 대공황이 끼어있었다. 지옥 같은 살육으로 점철된 2차 대전 후엔 되살아나 70년 넘게 번영과 평화를 구가했으니, 매혹적인 세기라 할 만하다. 커쇼는 유럽의 문제적 20세기를 2000쪽 넘는 2권짜리 벽돌 두께 책으로 풀어낸다. 이 거작(巨作)을 읽어야 할 이유는 뭘까.

우선 요령 있는 글쓰기다. 커쇼는 20세기 전반 유럽을 지옥으로 끌고간 요인으로 네 가지를 꼽는다. ①인종주의적 민족주의의 폭발 ②거세고도 조정 불가능한 영토 개정 요구 ③격심한 계급 갈등 ④자본주의의 장기 위기다. 이 네 가지가 맞물리면서 전쟁으로 치닫는 과정을 논증한다.

 

1940년 5월 연합군이 됭케르크에서 철수한 뒤 버려진 영국군 전쟁물자를 촬영하는 독일군 선전부대원들.

 

 

디테일이 풍성하다. 이런 식이다. 영국 소설가 D. H. 로런스는 1908년 악단이 잔잔하게 연주하는 가운데 ‘모든 병자, 절름발이, 불구자’가 얌전히 인도되어 들어갈 대형 ‘무통처리실’ 설치를 긍정적으로 고려하는 편지를 썼다. 문명과 진보의 상징이던 유럽이 과학의 이름을 걸친 ‘우생학’의 포로가 됐다. 전통적 반(反)유태주의와 결합한 우생학은 30년 뒤 본격적으로 벌어질 유태인 대량 학살의 예고편이었다. 특정 인종이 선천적으로 더 우월하고, 열등한 인자는 박멸해야 한다는 우생학이 제국주의와 만나면 더 치명적 결과를 낳았다. 1000만에 달하는 벨기에의 콩고 원주민 학살, 영국의 보어인 아녀자 학살, 독일의 아프리카 헤레로족·나마족 학살 등이 대표적이다.

영 연방 군대 5만7470명이 하루(1916년 7월 1일 솜전투) 만에 죽거나 부상당한 것을 비롯, 유럽은 1차 대전을 통틀어 군인 900만명이 죽고, 600만명에 가까운 민간인이 죽었다. 이런 비극을 겪고도 배운 게 없었다. 민족적·인종적·계급적 증오는 정치 폭력으로 치달아 정치는 양극화됐다. 히틀러는 이런 분위기를 틈타 등장했고 유럽을 다시 전쟁으로 몰아넣었다. 소련에서만 사망자가 2500만명을 웃돌았고, 독일 700만명, 폴란드는 600만명이 죽는 등 유럽에서만 4000만명 이상이 죽었다.

 

1940년 10월 7일 독일군의 런던 공습을 피하기 위해 지하철역에 대피한 시민들이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

 

 

“지옥은 틀림없이 이 같을 것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혔던 이탈리아의 유태인 화학자 프리모 레비의 증언대로 유태인 600만이 학살당했다. 이뿐만 아니다. 독일과 동유럽, 소련의 민간인은 독일군과 소련군이 번갈아 밀고 들어오면서 학살과 강간 희생자가 됐다. 종전 이후엔 ‘숙청’이 뒤따랐다. 유고슬라비아, 폴란드,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등 동유럽과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같은 소련 권역에선 파시즘 부역과 반공(反共) 혐의로 처형되거나 수용소로 끌려갔다. 서유럽도 덴마크(4만명) 노르웨이(9만3000명) 네덜란드(12만명) 벨기에(40만5000명)에서 수십만 명이 체포돼 재판을 받았지만 비교적 가벼운 형을 받았다. 조기 석방되거나 사면된 이도 많았다. 많은 사람에게 그 숙청은 관대했고 어떤 이에겐 가혹했다. 커쇼는 “합의에 바탕을 두고 사회를 재건하려면 질질 끄는 맞비난과 앙갚음이라는 분열이 아니라 통합이 요구됐다”고 썼다.

20세기 후반 이후를 다룬 두 번째 권은 냉전과 탈(脫)냉전, 68혁명으로 대표되는 청년층의 저항과 테러에 직면해서 민주주의를 지키고 통합을 이뤄낸 유럽의 번영을 기록한다. 두 차례의 참혹한 세계대전을 통과한 학습 효과일까, 유럽은 지난 70년간 그 어느 때보다 평화를 누리면서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삶을 누리고 있다. 유고 내전에 이어 일부 유럽 국가들이 이라크 침공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가세했지만, 평범한 유럽인들의 삶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이런 유럽의 평화와 번영은 나토 군사동맹을 통해 미국이 유럽의 안보를 사실상 책임져온 덕분이라는 점도 빠뜨리지 않는다.

20세기 지옥을 통과하고 롤러코스터 같은 험로를 헤쳐온 유럽의 경험은 한국 현대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데도 유용하다. 식민지와 전쟁, 분단을 거친 한국 현대사가 세계 어느 나라도 경험하지 않은 비극의 역사라고 믿는 ‘우물 안 개구리’ 사관(史觀)에서 벗어나는 데 기여하지 않을까 싶다. 영국 셰필드대에서 가르친 이언 커쇼는 나치 독일과 히틀러 연구로 이름난 역사학자다. 영국 언론인 출신 폴 존슨의 ‘모던 타임스’, 하버드대 역사학과 교수를 거쳐 스탠퍼드대 연구원으로 있는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의 ‘증오의 세기’와 함께 읽을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