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석 칼럼] 나라 바닥에서 꿈틀대는 ‘不安이라는 이름의 病’
대통령의 人事 실패에서 慰勞받아야 하는 국민
終末의 씨앗은 권력의 독선과 傲慢을 먹고 자란다
입력 2020.10.24 03:20
대통령 입장에서 최재형 감사원장과 윤석열 검찰총장 인사는 실패작(失敗作)이다. 최고 권력자는 ‘입안의 혀 같은 사람’ ‘생각하는 기능이 없는 팔다리 같은 인물’을 주변에 두고 싶어 한다. 최 원장과 윤 총장은 대통령의 혀가 아니고 수족(手足)도 아니다. 대통령은 의수(義手) 의족(義足)을 낀 것처럼 답답하고 불편할 것이다. 이 답답함과 불편함이 바로 합법성의 족쇄(足鎖)다. 법치 국가의 대통령이 권력을 행사하는 대가(代價)로 감당해야 하는 비용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이 감사원장과 검찰총장 인사에 실패하지 않았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원전 조기(早期) 폐쇄를 위해 청와대·산자부·한수원이 공모(共謀)해 경제성 평가를 조작한 사실은 얼렁뚱땅 뭉개버렸을 것이다. 전 청와대가 동원된 울산 시장 선거 불법 개입 사건이나 뇌물 받고 승승장구한 유재수 사건·조국 전 장관 가족 비리도 무성한 소문만 남기고 땅에 묻혔을 것이다. 대통령이 인사에 실패했기에 국민은 한 줌의 진실일망정 손에 쥐게 됐다. 우리는 대통령의 실패에서 위로(慰勞)받는 그런 나라에서 살고 있다.
대통령에겐 인사의 딜레마가 있다. 일의 경중(輕重)에 따라 그에 맞는 최적임자(最適任者)를 고를 것인가 아니면 충성심으로 뭉친 인물을 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정답은 능력 있고 충성스러운 인물이지만 흔치가 않다. 능력 있는 인물은 자리가 주어지면 감사해 해도 황공(惶恐)하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노력에 대한 보답이라고 당연스레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런 반응은 공직 임명을 아랫사람에게 내리는 하사품(下賜品)으로 오해하는 최고 권력자의 마음에 차지 않는다.
그 반대가 능력이 달리는 인간에게 과분(過分)한 자리를 던져주는 것이다. 과분한 자리가 맹종(盲從)과 과잉 충성을 이끌어 낸다. 이렇게 임명된 인간은 자기가 임명권을 행사하는 자리에 다시 과잉 충성으로 보답할 무능(無能)한 인물을 앉힌다. 이런 무능과 아첨의 구조화(構造化)가 조직과 나라를 거덜 낸다. 대통령 인사의 요체(要諦)는 ‘능력’과 ‘충성’의 배합(配合)이다. 중요한 자리는 능력을 보고 덜 중요한 자리는 충성심을 기준으로 나눠주는 것이다.
장관의 검찰총장 지휘권은 외국에선 백 년에 한 번 뽑을까 말까 하는 칼이다. 추 장관은 그 칼을 몇 달 사이 세 번이나 빼들고 검찰총장을 특정 사건 수사에서 배제(排除)했다. 일종의 직무 정지(停止) 처분이다. 검찰청법 37조(신분보장)는 ‘검사는 징계 처분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직 처분을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휘권으로 검찰총장을 업무에서 배제한 것은 위법의 가능성이 커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받아 봐야 할 사안이다.
무엇보다 조직의 지휘자는 섣부르게 칼을 뽑고 설쳐서는 안 된다. 일본에 추 장관 교육에 딱 맞는 학습 교재가 있다. 일본 근대 해군의 건설자 가쓰 가이슈(勝海舟)와 관련된 이야기다. 젊은 시절부터 검객(劍客)으로 이름을 날린 가쓰가 죽고 나서 유품을 정리하던 제자들은 깜짝 놀랐다. 평생 차고 다녔던 칼통이 칼을 뽑을 수 없도록 손잡이에 납땜이 돼 있었기 때문이다. 칼을 뽑아야 할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 그것이 검술(劍術)의 기초다. 장관의 리더십도 기본은 다를 게 없다.
추 장관은 ‘노무현-문재인 사단’에 충성을 바쳐 온 사람이 아니다. 노무현 탄핵에 가담하기도 했다. 그에게서 ‘성분(性分) 불량(不良)’을 과잉 충성으로 포장하는 부자연스러운 냄새가 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 나라의 법무부장관이 교도소에 수감 중인 전과자(前科者), 사기 피의자와 손잡는 모습은 정상이 아니다.
문 대통령 어록(語錄)에 이런 말이 있다. “(반대·비판 세력의) 정치적 공격이 나를 승복(承服)하고 반성하게 만든 경우는 없었다. 나를 돌아보게 하는 것은 문재인이 만들고자 하는 세상이 무엇인지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지자들의 반대 의견이다.” 외부의 비판은 귀에 담지 않겠다는 말이다. 기름진 비곗덩어리를 문 내부의 수족들이 입을 열 리도 없다. 대통령은 바뀌지 않을 것이고 나라도 이대로 간다는 뜻이다.
모든 권력에는 종말(終末)의 씨앗이 들어 있다. 권력이 오만과 독선(獨善)으로 흐를수록 종말의 나무가 자라는 속도도 빨라진다. 권력을 쥐고 있는 눈에는 나무의 성장이 보이지 않는다. 거리의 사람들만 ‘뭔가 심상치 않다’ ‘뭔가 벌어질 것 같다’는 병(病)을 앓는다. ‘불안(不安)이라는 이름의 병’이다.
鶴山 ;
"뻔뻔한 패거리가 활개치는 나라
가짜가 진짜들을 엿먹이는 나라"
이런 나라에서 온전한 정신으로 살수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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