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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治.社會 關係

[태평로] 大衆은 진보와 야만 사이에 있다

鶴山 徐 仁 2020. 4. 6. 11:51

[태평로] 大衆은 진보와 야만 사이에 있다

조선일보

입력 2020.04.06 03:18 | 수정 2020.04.06 05:20

'n번방'에 분출된 대중의 분노, 性범죄 단죄 의지 결집시켰지만
사법·입법에도 수시로 대중 동원… 대세 逆流하는 것도 公論의 과제

조중식 부국장 겸 사회부장
조중식 부국장 겸 사회부장

경찰은 여성을 협박해 성적(性的), 신체적으로 유린하는 동영상을 찍게 하고 텔레그램 채팅방에서 그 영상을 공유해온 조주빈의 얼굴과 신상을 공개했다. '신상을 공개하라'는 청와대 청원에 역대 가장 많은 200만명 이상이 참여한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2010년 이후 경찰이 신상을 공개한 범죄자는 21명밖에 안 된다. 형벌뿐 아니라 신상 공개라는 명예형(刑)을 가하는 것이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시각도 있어, 그만큼 엄격하게 적용해왔다고 볼 수 있다. 신상이 공개된 사람들은 모두 잔혹한 수법으로 살인을 저지른 강력 범죄 피의자였다. 조주빈은 성범죄 피의자로서 신상이 공개된 첫 사례다. 물론 조주빈의 범죄 내용을 보면 그 잔혹함이 살인 못지않다. 동영상 중에는 너무 참혹해 묘사하기가 힘든 것도 있다고 한다. 이 사건에서 분출한 대중의 분노는 성 착취물 제작·유통 범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단죄(斷罪) 의지를 결집하는 역할을 분명히 했다.

대중의 분노는 종종 사회를 변화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대중의 분노가 촉발한 변화가 항상 세상을 더 진보시키는 방향이라고 보장할 수는 없다. 조주빈 신상 공개 청원과 같은 맥락에서 오모 부장판사 교체 청원도 있었다. 조주빈과 함께 성 착취물을 유포해온 이모(16)군 재판을 담당하기로 한 판사다. 그가 과거 가수 구하라씨와 성관계한 영상을 촬영해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전 남자 친구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등 성범죄자들에게 관대한 판결을 내렸다고 지목돼, 그를 교체하라는 청와대 청원이 올라왔다. 여기에 40만명 이상이 참여했다. 부담을 느낀 오 판사는 스스로 재배당을 요청했다. 국민 청원과 여론의 압박으로 재판부가 교체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새 재판부는 이런 여론의 압박에 아랑곳하지 않고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했다는 신뢰를 확립할 수 있을까. 사법이 대중의 분노와 의견을 추종하면 야만(野蠻)과 다른 게 무엇인가.

이 정권 들어 이런 일이 잦다. 어린이집 아동 학대 사건도, 폭행·강간 사건도 걸핏하면 청와대 청원으로 달려간다. 사법뿐 아니라 입법 과정에서도 청와대 청원이라는 이름의 대중 동원, 포퓰리즘 방식이 자주 활용된다. 이른바 '민식이법'이 대표적이다. 스쿨존에서 어린이 사망·상해 사고를 낸 교통사고 가해자를 가중 처벌하는 법이다. 고의성이 없는 과실 사고에도 형량이 지나치게 무겁다는 지적이 있었으나, 청와대 청원이 20만명을 넘기고 문재인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에 민식군 부모가 사망한 아이 사진을 들고 나와 법 개정을 촉구한 뒤론 토론이 아예 봉쇄됐다. 반대 의견에는 "어린이 살인자를 옹호하겠다는 거냐"는 말로 입도 뻥긋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개정된 법이 지난달 25일 시행됐다. 열흘 남짓 지났을 뿐인데 이번에는 거꾸로 그 민식이법을 다시 개정하자는 청원에 참여한 사람이 입법 청원 때보다 더 많은 31만명을 넘어섰다.

이런 여론을 어떻게 봐야 하나. 청와대의 청원 답변 기준인 20만명이 넘으면 여론이고, 19만이면 아닌가. 여론은 항상 옳은가. '조국 수호' 서초동 집회 참여 인원이 '조국 퇴진' 광화문 집회 참여 인원보다 많았더라면 조국 전 장관은 그 숱한 파렴치한 행적에도 불구하고 법무장관직을 유지해야 했나. 우리 사회가 오랜 논란과 시행착오 속에 쌓아 올린 공적(公的) 윤리와 합리주의, 민주적 시스템이 종교적 맹신 행태를 보이는 정파적 대중에게 쉽게 휘둘리는 것은 민주주의의 적(敵), 대중 독재로 가는 길이다. 대중의 분노, 대세를 거스르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공적 영역에서 큰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4/05/202004050143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