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여호와를 위하라(삿 7:15-18)

鶴山 徐 仁 2020. 1. 18.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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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월 18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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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여호와를 위하라(삿 7:15-18)

15. 기드온이 그 꿈과 해몽하는 말을 듣고 경배하며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와 이르되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고

16. 삼백 명을 세 대로 나누어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고

17.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만 보고 내가 하는 대로 하되 내가 그 진영 근처에 이르러서 내가 하는 대로 너희도 그리하여

18. 나와 나를 따르는 자가 다 나팔을 불거든 너희도 모든 진영 주위에서 나팔을 불며 이르기를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하라 하니라

본문 해석

기드온이 드디어 삼백 명 용사를 세 대로 나누고 횃불 작전을 수립했습니다. 은밀히 적진 가까이 접근해서 그들이 미처 방어할 채비를 갖추기 전에 기습하자는 것인데 그러나 기드온 군대의 무기는 기껏해야 나팔과 항아리 그리고 횃불이 전부였습니다. 

사실 이것은 전쟁 무기로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듯 보이지만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았습니다.

① 한꺼번에 나팔을 붊으로써 마치 큰 군대의 공격 신호인 듯한 위협을 줄 수 있었고, ② 항아리를 깨뜨릴 때의 요란한 소리가 큰 군대의 무자비한 파괴행위처럼 느끼게 할 수도 있었고, ③ 칠흑같은 밤에 횃불을 한꺼번에 밝힘으로써 군대의 규모가 몹시 큰 것으로 착각하게 하는 효과도 노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드온은 군사들에게 <여호와를 위하라!>는 군호로 큰 함성을 지르게 했습니다. 

 

바울은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고 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명령으로 수행하는 전쟁이겠습니까? 오늘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어둠의 세력들과 싸울 때 복음의 횃불을 높이 들고 <하나님의 영광>을 함성처럼 외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를 기치로 싸워야 적들이 혼란에 빠지고 마침내 궤멸됩니다. 

또한 이 말씀은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싸우면 그 어떤 일도 모두 바벨탑의 운명에 처하게 된다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내가 쌓아올린 그 으리으리한 돌탑들이 모두 탐욕에 절은 우리의 죄악을 드러낼 뿐이라는 것입니다. 

 

기억합시다. 우리의 삶과 모든 행위, 싸움은 오직 하나님을 위해서입니다. 사업도 공부도, 사회생활, 가정생활, 교회생활도 다 주님을 위해섭니다.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마저 없다고 주장하는 이 시대에 우리는 더욱 큰 함성으로 <여호와를 위하여!>를 외치며 악한 현실과 대결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도 기드온의 3백 명 용사들처럼 아름다운 승리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결단과 적용

-당시 미디안 군대는 연합군이었습니다. 어떤 민족들이 서로 뭉쳤을까요(12절, 6:33)?

-기드온이 적의 진영에서 꿈과 그 해몽을 듣고 돌아와 자신의 군사들에게 한 말을 옮겨 적어 보십시오(15절).

-기드온이 <나만 보고 내가 하는 대로 하라>(17절)고 한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오늘의 기도

주님, 그렇습니다. 저희는 오직 하나님의 뜻,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게 무엇이든 오직 <여호와를 위해> 결단하고 결행해야 합니다. 인생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부디 미디안과 싸웠던 기드온처럼 여호와를 위해 싸우는 저희들 되게 해주시옵소서. 그러면 비록 3백 명의 소수 군대일지라도 반드시 적을 물리치고 승리의 영광을 누리게 될 줄 믿사오니 옛 기드온 군대의 함성에서 오늘 저희도 큰 깨달음을 얻게 해주시옵소서. 

도서 큐티더 보기
절망감

절망감을 제재하지 않고 방치하면 

그것이 우리의 눈과 귀가 되어 

우리가 보고 듣는 모든 것과 모든 상항을 

보고 듣는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절망감을 그대로 방치하면 우리의 감정을 지배하고, 

우리의 선택과 행위를 규정하며, 

우리의 희망과 동기를 앗아가고, 

선한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보지 못하게 만들며, 

신뢰할 수 있는 능력을 빼앗는다. 

절망감은 우리를 자기 방어적이고, 

폐쇄적이며, 쉽게 당황하게 만든다.

-폴 트립의 [고난] 중에서-

 

절망감은 누구에게나 경험되어집니다. 

하지만 그 절망감에 빠져서 평생을 잃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그 절망감을 예수의 보혈로 밟아 누르고 다시는 내 인생 가운데 

힘을 쓰지 못하도록 하늘과 땅의 권세로 내어쫒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남은 때는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시간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냐의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