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들, 그들의 모임인 정당들, 물론 순기능도 있겠고, 인류가 고안한 정치체제 중에 ‘의회 민주주의’, 즉 ‘대의 민주주의’가 가장 훌륭한 발명품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러나 나쁜 쪽으로 보면 그들은 한낱 ‘선거 도둑’일 뿐이라는 생각도 든다. ‘선거 도둑’, 선거를 빼앗고 훔치는 자들이다. 정정당당한 득표 겨루기는 나중 문제고, 우선 당장 선거룰과 선거판을 새로 고치고 짜면서 야바위 노름꾼과 도둑들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
특히 지난주와 이번 주에 진행되고 있는 이른바 ‘4+1 협의체’라는 것의 협상 진행을 보면 ‘천일야화’에 실려 있는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들이 떠오른다. 저들은 ‘선거법 개정’과 ‘의석 나눠먹기’가 무슨, 국민들 호주머니에서 훔쳐낼 수 있는 보물이라도 되는 듯 협잡을 하고 있고, 그것들을 훔쳐내기만 하면 자기 당의 동굴 속에 숨겨두고 공천 장사를 하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40인의 도둑들이 "열려라 참깨", 하고 주문을 외면 보물을 숨겨둔 동굴 문이 열렸듯이, 4+1 협의체도 "열려라 선거법", 하고 주문을 외면 자기 당에 유리한 선거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오늘 12월17일은 예비후보 등록일이다. 우선 4+1 협의체는 17일까지 선거법 개정안을 확정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다들 그럴 줄 알았을 것이다. 애초에 ‘비례대표’라는 말도 쉽지 않은 말인데, 여기에 ‘연동형’이란 말을 덧붙여 ‘연동형 비례대표’라고 했다가, 아쉽게 패배한 사람을 부활시키자면서 ‘석패율’이란 조항이 보태지고, 이제는 연동형 의석수에 상한을 두자는 뜻으로, 즉 뚜껑을 씌운다는 뜻의 ‘연동형 캡’이라는 말까지 꺼냈다. 그러더니 오늘은 석패율을 없애고 대신 ‘중복입후보제’라는 말까지 나왔다. 당대표급 특정 중진 의원에게 이중으로 안전판을 마련해서 지역구에서 떨어지면 비례대표로 당선되게 하자는 것이다. 야바위꾼들이 탁자 위에 작은 컵 3개를 현란한 솜씨로 이리저리 돌리다가 그것들을 딱 멈춰 놓고, 구슬이 들어 있는 컵을 국민들에게 찾아내 보라고 하는 것이나 비슷하다.
그러나 야바위꾼과 도둑들이 한 사람이 아니고, 4+1, 즉 다섯이나 되다보니까 자기들끼리 자중지란에 빠졌다. 이들은 국민들이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있어도 충분히 속여 먹을 수 있다고 자신하는 야바위꾼들처럼, 밀실 협상도 아니고 공개 협상 과정에서 낯 뜨거운 밥그릇 싸움을 벌이다가 드디어 드잡이 막장 드라마까지 연출하게 된 것이다. 체면이고 염치고 다 팽개치고 머리끄덩이를 잡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유권자의 투표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는 죽은 표, 즉 사표(死票)를 방지하고, 고질적인 지역주의 정당을 극복해보자는 거창한 명분은 온데간데없다.
선거법을 어떻게 손보든 가장 큰 혜택을 보는 정당은 정의당으로 나와 있다. 지난 16대에서 20대까지 다섯 번의 국회의원 선거를 갖고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정의당과 정의당의 전신(前身)인 정당들이 크게 약진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이번에도 선거법 개정으로 대박을 노렸던 정의당은 협상이 틀어지자 민주당을 향해 "대기업의 중소기업 단가 후려치기다" "공천 장사를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하고 비난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정의당을 향해 "개혁 알박기를 한다"고 맞받아쳤다. 공수처 설치 같은 사법 개혁을 하자는 ‘재개발 현장’에 선거법이라고 하는 ‘단독 주택 한 채’를 끝내 팔지 않고 ‘알박기’를 해서 사법 개혁이란 재개발을 가로막고 있다는 비난이다.
세상 이치가 다 그렇다. 민주당과 정의당, 서로 초록(草綠)은 동색(同色)이라며 손발이 맞는 것 같지만, 오월동주(吳越同舟)도 배에서 내릴 때가 되면 서로 등에 칼을 꽂기도 한다. 민주당을 대기업, 정의당을 중소기업에 빗대 ‘대기업이 중소기업 단가를 후려친다’고 하고, 다시 ‘개혁 알박기’란 말로 되받아 치는 일이 벌어질 줄을 우리 독자들은 다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의석을 한 석이라도 더 차지하려는 ‘선거 도둑’들의 싸움일 뿐이다.
급기야 민주당은 여권 군소 정당들과 합의가 어려워지자 ‘지역구 225석에 비례대표 75석’이라는 패스트트랙 원안을 상정하겠다는 카드를 꺼냈다. 그러나 이 원안은 지역구 의원이 크게 줄어들게 돼 있고, 따라서 관련 의원들이 소속 정당에 상관없이 반대표를 던지면 본회의 표결에서 부결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자 원래 이 원안을 발의했던 정의당의 심상정 대표는 "국민들에 대한 협박"이라고 반발했다.
이 대목에서 두 가지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말을 똑바로 하자. 이것은 국민들에 대한 협박이 아니라, 정의당에 대한 협박이다. 민주당이 정의당의 ‘대박 꿈’을 아예 없던 일로 만들겠다고 협박하는 중이다. 국민들은 아무 상관없다. 두 번째. 심상정 대표는 자신이 발의했던 원안을 스스로 반대하게 되는 아이러니에 대해 해명해야 한다. 심상정 의원은 자신이 애당초 발의했던 ‘지역구225석 + 비례75석’ 원안이나 ‘의석수 10% 확대’ 제안 같은 것이 그저 얄팍한 흥정용이요 국민 눈속임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인가.
눈 뜨고 당한다, 눈뜨고 코 베어 간다는 말이 있다. 국민들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 보고 있는데도 저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공개리에 야바위 협잡을 벌인다. 어떻게 하든 공수처법 통과시키면 청와대 민정실 3대 의혹을 무마할 수 있고, 어떻게든 선거법을 바꿔 총선에서 범여권 군소정당을 키워내면 여권이 국회 과반을 차지하여 지금 정권의 후반기를 전반기처럼 이어갈 수 있다는 계산인 것 같다. ‘선거 도둑’들에게서 개·돼지 취급당하지 않으려면 국민들이 정신 바짝 차리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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