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창업자에게 '배달의 민족'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를 물었다. "초창기엔 이렇게 큰 기업이 될지도 몰랐고, 단지 음식 배달이니, 브랜드로 '배달의 민족'이 떠올라 다소 즉흥적으로 정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김 대표는 "나중에 배달의 민족 무게를 깨닫고는 경영이나 브랜드 작업, 사회공헌 등에도 더욱 조심하고 신경 쓴다"고 했다. 그의 말마따나 네이버에 '배달의 민족'을 검색하면, 온통 음식 배달 앱 이야기가 나올 뿐이다. 그런 배민이다 보니, 지난 13일 독일 딜리버리히어로에 팔렸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네티즌 사이에선 "배달의 민족이 아니라, 이젠 게르만 민족인가요"라는 말이 돌았다.
배민의 매각 가격은 무려 40억달러(약 4조7000억원)다. 한 달 전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한 아시아나항공의 매각 가격이 2조5000억원 안팎이었으니, 엄청난 금액이다. 배민을 이만큼 키운 건, 우아한형제들 직원들의 노력뿐만 아니라, 매달 3~4회씩 배민 앱에서 치킨·짜장면 등을 주문한 1100만명의 소비자들이다. 올해 배민에선 주문 건수가 4억건을 넘고, 결제 금액은 8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3대 배달음식 시장이라니, 말 그대로 '배달의 민족'이다.
그런데 이번 딜로 브랜드만 독일에 넘어간 게 아니다. 벤처캐피털의 한 지인은 "그 돈(인수 대금)은 대부분 한국으로 안 올 것"이라고 했다. 2010년 창업한 우아한형제들(배민 운영사)은 그동안 벤처캐피털에서 총 5063억원의 투자를 받았고, 대신 지분 87%를 넘겼다. 김봉진 대표 등 경영진은 13%를 보유하고 있다. 투자 자금 가운데 본엔젤스와 같은 국내 자본은 기껏해야 500억원 정도다. 나머지는 힐하우스캐피털(중국)과 같은 외국 자본이다. 본래 최대 주주도 중국 힐하우스캐피털이었다. 독일에서 들어올 인수 금액의 상당 부분은 고스란히 중국·싱가포르·미국으로 흘러간다.
누구를 탓할 순 없다. 해외의 투자 자본 덕분에 배민은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해 이만큼 성장했고 엄청난 기업 가치를 거머쥐었다. 사실 한국의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 이상인 비상장기업)들은 대부분 비슷하다. 예컨대 쿠팡은 일본 소프트뱅크, L&P코스메틱은 중국 레전드캐피털, 야놀자는 싱가포르투자청이 주요 투자자다. '국부(國富) 유출'과 같은 단견으로 문을 닫아걸면, 외려 우리나라에선 더는 유니콘이 생겨나지 못할 것이다. 돈에는 국적이 없다.
다만 독일 기업의 자(子)회사가 됐다고, 네모반듯한 복고풍의 글씨체로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라는 배민식(式) 마케팅에 열광하던 국내 소비자를 잊지 말기 바란다. 벌써 배민의 독과점 횡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정주의 시(詩) '자화상'에 빗대자면, 열 해 동안 배민을 키운 건 팔할(八割)이 '우리 배달의 민족'이다.
관련기사를 더 보시려면,
- [태평로] 베트남을 부러워하게 될 줄은 몰랐다 김태훈 논설위원·출판전문기자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