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바른 영성 이해(2) (요한 15:1~8)

鶴山 徐 仁 2019. 11. 5.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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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05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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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바른 영성 이해(2) (요한 15:1~8)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본문 해석

성경은 분명히 영혼의 존재에 대해 말합니다. 영혼은 단순한 정신현상 그 이상의 것입니다. 예컨대 뇌사상태를 생각해 보면, 뇌가 죽었기에 어떤 정신 현상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심장과 맥박은 여전히 뛰고 있습니다. 정신은 없지만 그렇다고 영혼까지 죽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기독교는 뇌사를 반대합니다. 

주님은 밤에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십니다(요3:3). 거듭남 곧, 중생(重生, regeneration)이란“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입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입니다. 니고데모는 주님의 이 말씀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오직 영혼이 거듭난 사람만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성령 충만함으로 담대히 복음을 전하자 듣고 있는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낍니다. 이들에게 베드로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행2:38). 영혼의 거듭남은 말씀을 듣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성령이 하시는 사역입니다. 이처럼 영성의 시작은 영혼의 거듭남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영이 살아있는 사람만이 가능합니다. 즉 하나님의 영을 받아 영혼이 거듭난 사람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유익한 교제의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영혼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교제를 누릴 수 없습니다. 주님은 이 영적인 축복을 포도나무의 비유를 통해 말씀하시는데, 영성이란 기본적으로 거듭난 영혼이 주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과 교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포도나무 비유의 핵심은 무엇일까? 거듭남에 대해 주님은 우리가 이해하기 쉽도록 한 비유를 들어 설명하시는데 그것이 포도나무의 비유입니다. 요지는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을 때 열매를 많이 맺는다는 평범한 진리입니다. 그러나 이 평범함 속에 심오한 진리가 담겨져 있습니다. 7절에‘거하다’라는 동사가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말 그대로‘같이 산다’라는 의미입니다. 영혼이 거듭난 사람은 포도나무 가지가 줄기에 붙어 있듯이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 살며 주님의 말씀은 우리 안에 삽니다. 우리는 이것을‘주님과 결합’(unio cum Christo)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의 결과는 우리가 무엇을 구해도 다 이루시겠다는 주님의 신실하신 약속입니다. 주님과의 영적인 결합은 우리에게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을 줍니다(요15:11). 이 기쁨은 세상의 것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것은 감각적이고 일시적인 기쁨이지만 주님이 주시는 기쁨은 영적인 기쁨으로 오직 주님 안에서 영성의 생활을 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영혼이 거듭나서 주님과 함께하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다양한 영적인 체험이 따릅니다. 어떤 이는 환상을 볼 수도 있고 어떤 이는 질병이 낫는 체험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개인의 경험을 결코 절대적인 것으로 만들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바울은 세째 하늘에 가는 영적인 체험을 했다고 고백했습니다.(고후12:2) 다시 말해 천국을 보고 왔단 것입니다. 얼마나 황홀하고 대단했을까요? 그러나 이 체험을 자랑하거나 어떤 표준으로 삼지 않고 오히려 말하는데 대단히 조심해 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체험은 영성의 생활을 위해 매우 유익한 것들입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영의 생활을 추구하면 당연히 여러 효과와 결과들이 따르는데 성경은 이를‘은사’라고 말합니다. 은사는 다양합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받은 은사만을 절대화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바울은 영적인 것을 사모하되 개인의 자랑이 아닌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 하라고 말합니다(고전14:12. 딤전 4:5). 

결단과 적용

- 영성적 삶이란 어떤 삶을 말하는 것인지 정리해 봅시다.(딤전 4:7) 

- 앞으로 어떻게 영성훈련을 하며 살아갈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보세요.

오늘의 기도

복의 근원되신 하나님, 저에게 믿음 주셔서 주님 영접함으로 영이 거듭나고 주안에 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제 주님의 마음을 품고, 경건훈련 잘 받음으로 아름다운 열매 맺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설교 때 조는 사람
인문학 나눔

목사가 열심히 설교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청년 한 사람은 졸고 있는반면에 그 옆의 할머니는 눈을 반짝이며 

열심히 듣고 있는 것이었다.순간적으로 화가 난 목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할머니! 그 청년 좀 깨워 주세요!”그러자 그 할머니가 하는 말,

“재우긴 지가 재워 놓고 왜 나보고 깨우라고 신경질이야!”조관일 저(著) 

《깔깔깔 강의유머 기법》 (위즈덤하우스, 84쪽) 중에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예수님의 설교는 무언가 달랐습니다.  

졸 수가 없게 귀에 쏙쏙 들어왔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마7:28,29)

예수님은 그 말씀하시는 것이 당시 종교 지도자들인 서기관 같지 않았습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는 그 말씀의 뿌리가 하나님아버지로부터 나왔기 때문이고, 

둘째는 하늘의 음성을 유머와 해학이넘치는 ‘땅의 언어’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었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나는 너와 달라!” 하면서 

별나라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말을 썼습니다.  

반면 예수님은 위트와 공감이넘쳤습니다.  

한마디로 ‘하늘의 음성을 땅의 언어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말씀이 힘이 있었고 권위가 있었고 짙은 공감이 있었습니다.

가령 어떤 분이 남편을 전도하려 한다면,남편이 좋아하고 흥미롭게 

여기는 주제가 무엇인지,  남편이 두려워하는 것은,  남편을 화나게

 하는것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잘 알아야 할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땅을 잘 알아야 복음을 더 잘 전할 수 있고, 설교도 강연도 

이야기도 더공감있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림 큐티더 보기
요한일서 3장 16절
고린도전서 15:10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This is how we know what love is: Jesus Christ laid down his life for us. 

And we ought to lay down our lives  for our brothers.(NIV)

도서 큐티더 보기
인간 스스로는 의롭게 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이 실수로 강물로 빠졌다. 

허우적거리며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르자

 구조대원이 이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그런데 사람을 건질 생각은 않고 서서 구경만 하고 있어서

 빨리 들어가서 건지라고 야단을 해도 가만히 서 있었다. 

물에 빠진 사람은 허우적거리다가 지친 나머지 기진맥진했다.

그제야 구조대원이 물에 뛰어 들어가서 그를 건져내었다. 

"왜 사람을 빨리 건지지 않았소?" 구조대원은 말했다.

 "허우적거리며 살려달라고 발악할 때에 물에 들어가면 

나도 죽고 저도 죽습니다. 

완전히 기운이 빠져서 손을 들어야 구할 수 있습니다."  

-류영모 목사의 ‘즐거운 교환’에서-

 

  그렇습니다. 완전히 항복한 다음에야 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버둥버둥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스스로 의롭게 되어 보겠다며 자기 노력과 의지로

 백 번을 맹세하고 손을 자르고 해본들 되지 않으며

 혈서를 쓴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인간 스스로는 의롭게 되지 못한다.' 

그 노력까지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 길은 믿음의 길이요, 의의 길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이것은 자기 의를 완전히 포기하는 것입니다.

 오직 은혜, 오직 하나님의 의를,

 십자가의 은혜, 그 거룩한 능력을 수용합니다. 

그리고 의롭다 함을 얻습니다. 

그것이 바로 즐거운 교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