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사태의 본질, 진영이나 이념이 아닌 정직함·염치 등
보편적 가치와 지극히 상식적인 인간성 문제
무대 안 떠나려는 그의 서커스… 부정직한 세력의 敗色 보여
로마 시대 황제들은 검투사나 마차 경기 같은 '볼거리'를 주요 통치 수단으로 삼았다. '서커스'의 어원인 '키르쿠스'는 이런 볼거리가 펼쳐지던 원형경기장을 뜻한다. 관중석을 가득 메운 로마 시민들은 검투사와 맹수가 나오는 유혈극에 흥분하며 패권 국가의 강인함과 용맹함을 확인했다고 한다. 소심하거나 비겁하게 싸운 패자에게는 냉혹한 죽음을 명하는 '폴리체 베르소(Pollice Verso·내려진 엄지)'를 외쳤다. 영화에서 종종 보았듯이, 이때 최종 결정은 황제가 내린다. 볼거리가 통치 수단이 되는 마술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사실상 패자에 대한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는 황제는 관중의 함성을 듣고 그에 따라 엄지를 올릴지 내릴지 결정한다. 관중은 황제의 결정을 받아들이고, 권력자를 중심으로 다시 하나가 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말처럼 "진지한 정책을 등한시하면 큰 손해가 발생하고 유희(서커스)를 소홀히 하면 엄청난 불화가 생기"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기원전 패권 국가 황제들도 민심을 청취했다.
추석 연휴라는 긴 강을 건넜는데도 조국이라는 '볼거리'는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그가 던진 매끈한 말들과 그가 보여준 거친 이력의 부조화에 국민의 분노와 흥분이 이미 임계점을 넘었는데, 대통령이 그에게 '엄지 척' 결정을 내림으로써 성난 민심은 분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조국도 이상하지만, 대통령은 더 이상하다. 그렇게 아니라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그의 머리에 휘황한 관(冠)을 씌워주는 일이 대명천지 민주국가에서 벌어져 아연실색할 뿐이다. 갈 곳을 잃은 여론은 3000명이 넘는 대학교수의 성명서로, 법조인들의 연대 서명으로, 화난 대학생들의 촛불 시위와 대자보로, 정치인의 삭발 시위로 모양을 달리해 나타나고 있다. 형태와 방식만 바뀌었을 뿐 민심의 질량은 불변이다.
조국 사태의 본질은 이념이나 진영이 아니다. 정의나 공정함 같은 어려운 단어를 동원할 필요조차 없다. 그보다는 정직함이나 염치 같은 보편적 가치 문제이며, 지극히 상식적인 인간성 문제다. 보통 사람들은 자녀 교육에 힘쓰지만 그걸 위해 자녀의 출생일을 바꾸지는 않는다. 표창장을 위조하는 건 꿈도 꾸지 못한다. 그런 혐의를 피의 사실 공표나 방어권 같은 법률 용어 뒤에 숨길 줄도 모르며, 안면 몰수하고 자기를 지지해줄 사람들을 주변에 거느리고 있지도 못한다. 보통 사람들은 USB로 파일을 옮겨 갖고 다니지 컴퓨터를 통째 들고 다니지 않는다. 사모펀드는 뭔지도 모른다. 갓 쓴 선비들은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 고쳐 매는 것도 삼갔다. 보통 가장이라면 온 가족을 험지에서 떨게 놔두지 않는다.
아마도 기본적 윤리를 습득하지 못한 그들은 사문서 위조 정도는 해도 되는 일 정도로 여겼을지 모른다. 개명한 선진국에서는 입학 서류가 진실성을 상실하면 그 자체로 입학이 취소된다. 입학 서류가 입학 점수에 얼마나 반영되었는지는 논외이다. 명문대일수록 이런 경향은 더 강하다. '부정직한 엘리트'만큼 국가와 공동체에 큰 해악이 없기 때문이다. 정직함조차 배우지 못한 이들이 그보다 복잡한 개념인 정의와 공정을 장신구처럼 매달고 뽐내니, 뭔가 어긋나도 한참 어긋났다고 사람들은 느끼고 있다. 다행히도, 그 어긋남을 인지할 만큼 우리 사회에는 아직 이성(理性)이 남아 있다.
조국 장관이 스스로 '소명'이라고 느끼는 검찰 개혁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본다. 여러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절반이 넘는 사람들의 신뢰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논리와 증거로 세상을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기라는 변수를 잊어버리기 쉽다. 이런 이들은 각종 법리와 지식을 상대방 눈앞에 흔들어대며 우월함을 과시한다. 그러나 실상 사람들은 '로고스'보다 신뢰나 권위 같은 '에토스'에 설득되는 경향이 더 크다. 아무리 논리가 이치에 맞아도 그걸 말하는 사람이 그만한 믿음을 주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계절이 바뀌어도 무대를 떠나지 않는 조국의 서커스에서 정직함도 공정함도 배우지 못한 어떤 세력, 혹은
세대의 짙어지는 패색(敗色)을 본다. 최순실이라는 희대 인물이 나타나 현직 대통령을 감옥으로 보냈다면, 조국이라는 검투사의 등장으로 그와 함께 그가 속한 시대의 현란한 개인기가 마침내 한계를 드러내고 '키르쿠스' 밖으로 밀려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라도 대한민국이 도둑맞은 민주주의를 되찾고 다시 새로운 가치를 정립할 수 있다면, 그 검투사에게 감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