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지명된 장차관급 인사 11명의 면면을 보면 문재인 정부에선 어떤 위기의식도, 국정쇄신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격화되는 미중 전략경쟁과 최악의 한일 갈등, 북한의 잇단 도발 등 대내외 악재가 겹겹이 덮친 상황에서도 문 대통령의 용인(用人) 스타일에는 전혀 변함이 없었다. 누가 뭐라 해도 내 뜻대로 가겠다는 고집이 느껴진다.
이번 인사로 현직 국회의원과 내년 총선 출마 예정자가 빠지면서 내각의 정치색은 옅어졌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는 기업지배구조 전문가로 공정위 첫 여성 위원장 발탁이다. 반도체 분야 전문가인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지명은 일본의 경제보복에 맞선 소재·부품산업 육성 의지로 읽힌다. 위기 국면에서 전문가들을 등용한 것은 긍정적이지만 리더십과 행정능력이 검증된 바 없는 이들에게 위기상황의 현장사령관을 맡긴다는 점은 염려스럽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논란의 인물을 법무부 장관에 지명함으로써 국정쇄신과 분위기 전환을 바라던 국민들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검찰을 지휘하며 내년 총선의 공정성 확보에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자리에 불과 2주 전 청와대 참모를 그만둔 심복을 내리꽂았다. 조 후보자는 여느 청와대 수석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대통령의 최측근 역할을 한, ‘문재인의 남자’로 불리던 인사다. 적폐청산과 검찰개혁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라지만, 과연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청와대가 조 후보자의 ‘국민과의 원활한 소통능력’을 꼽은 것도 상식을 크게 벗어났다. “애국이냐 매국이냐”며 편 가르기에 앞장선 인물에게 던지는 빈정거림이라면 모를까 이해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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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시급한 외교안보라인 교체는 없었다. 취임 이래 사과만 10여 차례, 두 번씩이나 국회 해임건의안 대상이 됐던 정경두 국방부 장관, 존재감도 없이 외교 무능의 대명사가 되어 버린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유임됐다. 청와대가 외교안보 정책을 직접 끌고 가는 데 편한 인사들이어서 바꿀 의지가 없는 것일 수도, 현안이 걸려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유임시킨다면 번번이 실기(失機)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2년 3개월, 이제 집권 후반기로 접어드는 시점이다. 청와대는 어제 인사로 ‘문재인 정부 2기 내각’을 사실상 완성했다고 했지만, 이번 내각 체제로 더욱 거세게 몰려들 위기의 파고를 슬기롭게 넘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국회는 철저하고 객관적이며 실효적인 검증을 통해 부적격 인사들을 걸러내야 한다. 청문보고서가 채택 되지 않아도 임명을 강행해 인사청문회가 통과의례가 되는 일은 더 이상 있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