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에서 북한 김원봉을 우리 국군 창설의 뿌리로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지금 온 나라가 들끓고 있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맞는가", 하는 소리마저 들린다. 문재인 정권이 총선을 앞두고 이념대립과 남남갈등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전략을 택한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슨 의도로 그런 발언을 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말이 필요 없다. 몇 장의 사진을 함께 보자. 김일성과 김원봉이다. 김원봉은 해방 전 의열단 활동을 하고 광복군에 참여하기는 했으나, 1948년부터 북한에 올라가서 국가검열상, 노동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김원봉은 1952년3월 "미제 약탈자들과 그 주구들에 반대하는 조국 해방전쟁(즉 6.25 전쟁)에서 공훈을 세웠다"며 김일성에게 최고 상훈에 해당하는 노력훈장을 받았다. 1954년1월26일자 경향신문을 보면 ‘어마어마한 간첩단 체포, 김원봉이 직접 지휘’라는 기사도 볼 수 있다. 김원봉이 평양에서 남파 간첩을 총 지휘했다는 뜻이다. 김원봉은 명백하게 6·25 남침의 핵심 주범이요 대한민국의 적이었다. 그가 1958년 숙청됐다고는 하나 북한 내부의 권력투쟁 과정에서 연안파와 함께 사라진 것이지 그가 자유민주주의자로 전향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문 대통령은 현충일 추념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광복군에는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되어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 역량을 집결했다." "통합된 광복군은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됐고, 한미 동맹의 토대가 됐다." 6·25 때 나라를 지키다 영면에 드신 순국선열들이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설 발언이다. 문 대통령은 김원봉이 나오는 영화를 본 뒤에 "마음속으로 최고 훈장을 달아드리고 술 한 잔 바치고 싶다"고 했다는데, 6·25 때 적군이었던 김원봉이 우리 국군의 뿌리라는 말을 현충일의 대통령 기념사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문재인 정부의 보훈처는 언젠가 김일성도 항일 투사로 인정하고 한반도 독립 영웅으로 칭송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문 대통령 추념사 때문에 충격에 빠졌던 같은 날 좌파 시민단체가 대전현충원에 오물을 투척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또 천안함·연평해전 유족을 모셔놓고 청와대는 김정은이 등장하는 사진을 나눠줬다는 게 밝혀졌다. 이런 것들이 한꺼번에 일어났는데, 정말 우연이라고 믿기 힘들다.
프랑스나 일본에는 공산당이 있지만, 우리에겐 안 된다. 우리는 자유민주 체제이면서 동시에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반공 체제다. 지난 70년 동안 3대 세습의 공산 독재 체제와 수백만 희생을 치르며 전쟁을 했고, 그 뒤 KAL기 폭파, 아웅산 테러 같은 각종 도발에 시달렸고, 지금은 핵무기 대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이런 현실을 부정하고, 김원봉을 우리 국군의 뿌리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런 말도 했다. "애국 앞에 보수, 진보가 없다." "이제 사회를 보수와 진보,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그러나 그것은 말 뿐이다. 문재인 정권은 지난 2년 ‘적폐 청산’, ‘일제 잔재 청산’이라는 미명 하에 매우 저열한 좌우 편 가르기를 일삼았다. 이제 문재인 정권은 총선을 앞두고 노골적인 국민 분할통치를 선택한 것 같다. 초보 수준의 ‘디바이드 앤 룰’ 전략, 쪼개서 다스리기, 이념대립 전략이다.
21세기 대한민국 대통령이 이념적 사상 투쟁을 앞장서서 이끌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제 아이들의 외가는 양조장을 했었는데, 집안 어른들이 6·25 때 몰살을 당하셨다. 문 대통령은 그 후손들을 포함하는 전체 국민의 대통령이기를 포기한 것인가. 어차피 내 편이 될 수 없다면, 포기하겠다는 것인가. 그래서 일부 보수 진영에서는 "오늘부터 당신은 우리의 대통령이 아닙니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댓글들이 분노의 함성으로 넘쳐난다. ‘김원봉 추념사’는 60만 장병들에게 총을 내려놓게 하는 맥 빠지게 하는 발언이다, 한마디로 ‘국민 모독’이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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