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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 코리아] 우리는 왜 1990년대를 그리워하나

鶴山 徐 仁 2019. 5. 4. 11:02

[터치! 코리아] 우리는 왜 1990년대를 그리워하나

조선일보

김신영 경제부 차장   


입력 2019.05.04 03:05  


'풍요의 1990년대'에는 내일이 오늘보다 낫다는 확신
요즘 미래 얘기는 일기예보뿐… 엉뚱한 말만 하니 '사오정' 같아

김신영 경제부 차장
김신영 경제부 차장
한 심야 라디오방송에 이런 청취자 메시지가 소개돼 웃었다. '나 2000년생. 하루라도 살아보고 싶다 1990년대!' 그 시절을 겪은 사람으로 뒤돌아보면 느려 터진 PC통신이 답답하고 주 6일 근무에 레몬 소주나 먹던 시절이 뭐 좋은 게 있나 싶기도 하다. 다만 이거 하나는 있었다. 내일이 오늘보다는, 내년이 올해보다는 나을 거라는 확신이었다. 외환 위기 전까지 일자리는 거의 매년 50만개 넘게 늘었고, 6~7%씩은 너끈히 경제가 성장했으니 기운이 날 법도 했다.

청년들만 1990년대가 부러운 건 아니다. 한창 일할 나이인 40대 중에도 1990년대로 돌아가고 싶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재산 불려 잘살아보잔 기대라도 할 수 있었던 때였기 때문이다. 경제 활기가 떨어진 지금 월급쟁이가 부자 되기는 정말 어려워졌다. 중산층 재산 증식의 대표 수단인 분양 시장에서 요즘 유행하는 신조어 '줍줍족'이 그 답답함을 드러낸다. '줍줍족'은 금융 규제로 대출이 막힌 실수요자가 엄두를 못 내는 새집을 주워가는 현금 부자를 뜻한다. 40대 초반인 친구 A는 분한 목소리로 전화했다. "20년 된 청약통장으로 분양을 받아볼까 했다. 그런데 정부가 투기 막겠다고 9억원 넘는 아파트는 중도금 대출을 금지했다. 9억원 안 되는 집에 몽땅 몰려 경쟁률이 치솟는다. 서민층 내 집 마련 도와준다고 하지 않았나?"

1990년대 '세계 일류'란 구호를 외치던 기업들은 정부·노조 장단 맞추다 진이 빠져 있다. B보험사 임원 이야기다. "공채는 웬만하면 안 합니다. 눈치 보여 비정규직 늘리긴 그렇고, 60세까지 어떻게 책임집니까. 빨리 로봇 만들어 쓰는 게 나아요." 한 정보기술(IT) 계열 대기업 간부는 뉴스 보기가 우울하다고 했다. "과거 얘기뿐이잖아요. 미래 소식이라곤 일기예보밖에 안 보여요. 세계 기업들 미친 듯이 달리는데, 그놈의 과거 청산이 지금 그렇게나 중요합니까?"

'혁신 전도사'로 불리는 하버드대 클레이턴 크리스텐슨 교수는 책 '번영의 역설'에 한국을 주요 성공 사례로 소개한다. 삼성·포스코 같은 우리 기업이 좋은 예로 나오면 우쭐하다. 하지만 씁쓸하게도 한국의 '기적' 이야기는 (K팝 정도를 빼면) 1990년대에 맴돈다. 그는 번영을 '점점 더 많은 이들이 경제·사회·정치적 행복을 증진시키는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멀게만 느껴진다.

지난달 휴가 때 일본 도쿄 공항에 내리자 전엔 드물던 영어가 쏟아졌다. "디스 웨이 플리즈(여기로요)" "해브 어 나이스 데이(좋은 하루)!"…. 올림픽을 앞두고 영어 연습하는 어르신들 얼굴에 활기가 돌았다. 미국은 연일 기업 가치 수십조원에 달하는 IT 기업 상장 소식으로 왁자하다. 한국은 제대로 도입도 못 한 승차 공유 회사 리프트·우버도 포함됐다. 지난해 미국서 같이 연수한 중국인 친구는 며칠 전 이런 이메일을 보냈다. "우리가 개발한 모니터가 10분 만에 10만달러를 투자받았어. 한국에도 수출하기로 했어." 그는 중국서 4일마다 한 개씩 탄생한다는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스타트업을 꿈꾼다. 정부는 대외 여건이 우리 경제를 망친 주범이라는데, 저마다 나름의 성장 동력에 매진하는 모습이다. 우리에겐 무엇이 있나.

'2000년 힘 있는 우리 경제를 위하여! 다시 뛰자, 코리아!' 1997년 공익광고 문구다. 이런 파이팅 정신이 그립다. 성장률이 곤두박질치고 나서 대통령은 "경제 기초체력은 튼튼하다"고 했다. 청와대는 좋은 경제 지표 알리기 홍보 특별팀을 만든다고 한다. 1990년대 유행하던 썰렁 개그 사오정 시리즈가 생각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5/03/201905030316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