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미국발 긴축 본격화할 것
아마추어식 대응 땐 나라 흔들
평창 겨울올림픽 이후를 걱정해야 하는 건 안보뿐만이 아니다. 헌법상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과 복리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 북핵 해결이 생명을 지키는 것이라면 지구촌 주가 쇼크에 대응하는 것이야말로 ‘복리’를 수호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청와대가 그럴 의지와 실력을 갖췄는지 의문이다.
지난 주말 미국 증시가 급락하자 백악관은 즉각 성명을 냈다. “경제 펀더멘털을 확신하고 있다”며 안심시켰다. “시장이 가치를 잃을 때 우리는 늘 우려해왔다”며 주가 급락을 나 몰라라 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우리는 어땠나. 미국보다 더한 공포가 시장을 흔들었다. 5일 코스닥 폭락은 11년 만에 최대였다. 나흘 급락한 증시는 약 140조원을 토해냈다. 올 한 해 상승분의 두 배가 넘는다. 외국인들은 일주일 새 3조원 넘게 한국 주식을 팔아치웠다. 원화 가치도 급락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아무 관심이 없는 듯하다. 짐작할 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이번 미국발 주가 쇼크의 의미를 제대로 못 읽었을 가능성이다. 조재민 KB자산운용 사장은 “9년을 이어 온 상승장이 끝나고 긴축의 시절이 왔다는 의미”라며 “국제 금융 시장이 새 질서에 적응하라는 신호탄”이라고 말했다. 그는 “(청와대가) 이런 사실을 읽고 정책을 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예고된 시나리오였지만 시작은 갑작스러웠다. 스위치를 누른 건 2일 발표된 미 고용지표였다. 임금상승률이 10년 만에 최대(2.9%)였다. 임금 상승=인플레 우려→미 금리 인상→기업실적 둔화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퍼졌다.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도 새로 교체됐다. ‘호황 끝, 긴축 시작’의 필요충분조건이 갖춰진 것이다.
미국발 긴축 발작은 이제 시작이다. 미 금리 인상이 예고된 3월부터 본격화해 올해 내내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충격은 고스란히 한국 시장에 복제될 것이다. 임금 상승=인플레 우려→한국 금리 인상→기업실적 둔화다. 여기에 최저임금 인상 후유증까지 얹어질 판이다. 가계 빚·나랏빚으로 옮겨붙으면 설상가상이다. 환율 요동, 핫머니 극성과 맞물려 금융은 물론 실물까지 뒤흔들 수 있다. 최악의 경우 북핵 위기와 겹치면 국난 수준의 위기를 또 겪을 수 있다. 원화 가치 급락, 외국 자본 이탈은 덤이다. 단순히 주식 시장이 하루 이틀 급락하고 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시장은 숫자로 말한다. 시장의 언어를 이해하려면 오래 들여다보고 깊이 고민한 경험과 내공이 필수다. 그래야 작은 신호도 놓치지 않는다. 물론 그게 다가 아니다. 제대로 처방을 쓰려면 고도의 정무적 판단이 어우러져야 한다. 지금 청와대는 어떤가. 경제를 다루는 세 축, 정책실장·경제보좌관·경제수석이 모두 교수 출신, 책상물림이다. 숫자의 이면을 읽어내는 훈련이 돼 있을 리 없다. 한 뉴욕타임스 기자는 최근 칼럼에서 “10년째 고용지표를 들여다보지만 매달 (발표되는) 숫자의 의미가 다르다”며 “제대로 읽어야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온다”고 했다. 흑인에 대한 지원을 늘릴지, 청년 고용에 돈을 더 넣어야 하는지, 기업 규제를 더 풀어야 하는지 숫자가 말해준다는 것이다.
그러잖아도 지금 한국 경제의 앞날엔 안개가 자욱하다. 최저임금·청년 실업·일자리 문제는 해결 기미조차 없는데 미·중의 통상 압력은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바둑으로 치면 반상에선 나라의 운명을 가를 전투가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데 한국의 돌은 곳곳이 곤마(困馬)인 형국이다. 한 수만 삐끗해도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더 걱정되는 건 이 어려운 시기에 청와대의 백면서생들이 계속 지휘봉을 잡는 것이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지난 주말 미국 증시가 급락하자 백악관은 즉각 성명을 냈다. “경제 펀더멘털을 확신하고 있다”며 안심시켰다. “시장이 가치를 잃을 때 우리는 늘 우려해왔다”며 주가 급락을 나 몰라라 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우리는 어땠나. 미국보다 더한 공포가 시장을 흔들었다. 5일 코스닥 폭락은 11년 만에 최대였다. 나흘 급락한 증시는 약 140조원을 토해냈다. 올 한 해 상승분의 두 배가 넘는다. 외국인들은 일주일 새 3조원 넘게 한국 주식을 팔아치웠다. 원화 가치도 급락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아무 관심이 없는 듯하다. 짐작할 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이번 미국발 주가 쇼크의 의미를 제대로 못 읽었을 가능성이다. 조재민 KB자산운용 사장은 “9년을 이어 온 상승장이 끝나고 긴축의 시절이 왔다는 의미”라며 “국제 금융 시장이 새 질서에 적응하라는 신호탄”이라고 말했다. 그는 “(청와대가) 이런 사실을 읽고 정책을 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예고된 시나리오였지만 시작은 갑작스러웠다. 스위치를 누른 건 2일 발표된 미 고용지표였다. 임금상승률이 10년 만에 최대(2.9%)였다. 임금 상승=인플레 우려→미 금리 인상→기업실적 둔화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퍼졌다.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도 새로 교체됐다. ‘호황 끝, 긴축 시작’의 필요충분조건이 갖춰진 것이다.
미국발 긴축 발작은 이제 시작이다. 미 금리 인상이 예고된 3월부터 본격화해 올해 내내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충격은 고스란히 한국 시장에 복제될 것이다. 임금 상승=인플레 우려→한국 금리 인상→기업실적 둔화다. 여기에 최저임금 인상 후유증까지 얹어질 판이다. 가계 빚·나랏빚으로 옮겨붙으면 설상가상이다. 환율 요동, 핫머니 극성과 맞물려 금융은 물론 실물까지 뒤흔들 수 있다. 최악의 경우 북핵 위기와 겹치면 국난 수준의 위기를 또 겪을 수 있다. 원화 가치 급락, 외국 자본 이탈은 덤이다. 단순히 주식 시장이 하루 이틀 급락하고 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시장은 숫자로 말한다. 시장의 언어를 이해하려면 오래 들여다보고 깊이 고민한 경험과 내공이 필수다. 그래야 작은 신호도 놓치지 않는다. 물론 그게 다가 아니다. 제대로 처방을 쓰려면 고도의 정무적 판단이 어우러져야 한다. 지금 청와대는 어떤가. 경제를 다루는 세 축, 정책실장·경제보좌관·경제수석이 모두 교수 출신, 책상물림이다. 숫자의 이면을 읽어내는 훈련이 돼 있을 리 없다. 한 뉴욕타임스 기자는 최근 칼럼에서 “10년째 고용지표를 들여다보지만 매달 (발표되는) 숫자의 의미가 다르다”며 “제대로 읽어야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온다”고 했다. 흑인에 대한 지원을 늘릴지, 청년 고용에 돈을 더 넣어야 하는지, 기업 규제를 더 풀어야 하는지 숫자가 말해준다는 것이다.
그러잖아도 지금 한국 경제의 앞날엔 안개가 자욱하다. 최저임금·청년 실업·일자리 문제는 해결 기미조차 없는데 미·중의 통상 압력은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바둑으로 치면 반상에선 나라의 운명을 가를 전투가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데 한국의 돌은 곳곳이 곤마(困馬)인 형국이다. 한 수만 삐끗해도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더 걱정되는 건 이 어려운 시기에 청와대의 백면서생들이 계속 지휘봉을 잡는 것이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