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유럽 아프리카

[스크랩] 고흐의 자취가 남아있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

鶴山 徐 仁 2017. 5. 12. 20:56



2017426일 수요일 맑음

 

  파리 일정 마지막 날 아침, 우리는 파리 교외에 위치한 마을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 Sur Oise)를 찾았다. 이곳은 네덜란드의 화가 반 고흐가 마지막 생을 불태운 마을이라 한다.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화가로서 이름을 날리지 못했기 때문에 동생 태오의 영향 밑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었는데, 말년에 이곳에 살면서 두 달여 동안 많은 그림을 그리다 최후를 맞은 곳이다.

 


  가는 도중 평평한 들판을 장식한 초록빛 밀밭과 목장 사이, 가끔씩 드넓은 대지에 피어 있는 유채꽃에서 고흐의 그림 중 유난히 눈에 띄는 노랑 색감을 탐할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은 봄꽃이 피는 시기라 차로 움직이는 동안에 그렇게 많은 유채꽃을 보았는데, 유난히 넓은 농토를 갖고 있는 이곳의 농민들은 밭을 놀리고 싶을 때 이걸 파종하여 한창 물이 올랐을 시기에 갈아엎어 비료로 쓴다고 했다. 더러는 남겨놓았다가 수확하여 각종 농기계를 움직이는 기름으로 활용한다. 이에 비해 얼마 안 되는 길섶과 밭에 유채를 심어놓고, 그걸 가지고 축제를 하는 우리 실정이 너무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도착한 오베르시는 작고 조용하고 아담한 마을이었다. 다양하고 오래된 건물과 그 사이에서 빛나는 나무와 꽃들은 장면마다 한 폭의 그림처럼 느껴졌다. 그가 머물었던 2층의 노란 집이 아직도 그대로 서있고, 창문 너머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시청사도 한결같다.

 

 

   우리는 고흐가 70여 일 동안 머물면서 80여 편의 그림을 그렸다는 그의 집을 돌아보고 나서, 그가 이젤을 지고 걸었던 길을 따라 골목길로 들어가 교회에 들르고 숲길을 걸어 탁 트인 밀밭으로 나아갔다. 가는 곳마다 그가 배경으로 그렸던 장소의 그림을 사진으로 만들어 걸었다. 그림 속의 계절은 다르지만, 그 분위기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는 게 지극히 당연해 보였다.

 

 

   밀밭 한쪽 귀퉁이에 마을공동묘지가 있었다. 여러 형태의 묘지들이 그런 대로 어울려 묘한 풍경을 연출한다. 그 한쪽 벽면에 1년 차이로 숨진 고흐와 테오 두 형제가 나란히 묻혀 있었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그렇게 유명한 화가가 자기 나라 네덜란드에 가서 묻혀있지 않고 이곳에 쓸쓸히 묻혀 있을까 의구심이 가지만, 그가 좋아했던 마을이고 마지막 작품 활동을 하던 곳이어서 그냥 자연스레 묻혀 있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 아닌가 싶다.

 

 

   그곳을 나온 우리는 천천히 다시 걸으며 그의 작품 속에 나온 거리를 거닐다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돌아왔다. 이번 여행에서 모네와 고흐 두 거장의 자취를 더듬어 본 것은 그림을 잘 모는 나에게 그림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들이 조성하는 분위기,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과 넉넉한 인심이 명작과 대가를 배출할 수 있는 좋은 토양이 되지 않았을까.

   

 

 

고흐에게 - 권달웅

 

나무들의 귀가

밀밭으로 굽어 있다.

 

생 레미 요양원에서는

밀밭을 흔들고 가는

바람이 보였다.

 

바람이 지나갈 때면

밀밭이 불길처럼 타올랐다.

검은 측백나무가

연기처럼 치솟았다.

 

생 레미 요양원에는

밑동이 잘린 나무들이

석양에 불타고 있었다.

   

 

   

벵쌍과 테오에게 - 최범영

      - 밀밭에 서서


사람들은 빈센트 반 고흐라 하지만

내겐 벵쌍이란 이름이 더 친근하지

 

주중이면 날마다 오를레앙에서 파리

파리에서 오를레앙을 오가던 때

주말이면 파리 가고 싶어하는 아내와

쉬고 싶어 하는 나 사이 긴장감은

이레 동안 마실 물 사러

슈퍼마켓 가는 걸로 식히곤 하였지

 

공부를 다 마치고 두 이레 동안

우리 가족은 파리 16구 아는 집에 터 잡아

자동차 없이 전철과 버스와 발걸음으로

파리지앙으로 살았던 때

우리 만큼 힘들게 살며 또 서로 아껴주던

벵쌍과 테오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밀을 벤 들판이

벵쌍의 그림 터치로 살아나는 날

오베르 성당 안 어느 여인의 기타 소리가

벵쌍과 테오를 기리는 미사였던 때

나는 내 기도문을 그녀의 방명록에 적었다

 

까마귀 나는 여름날

들판에 서면

웬지 밀려오는 그리움에

벵쌍과 테오가 그려진다

밀을 벤듯

나무단을 막 해온 듯 그려진 곳엔

꽃과 나무와 길이 있었다

 

눈물이 너무 나와

둘이 누워 있는 곳에서 차마 사진 찍는 것조차

죄스럽다는 생각에

멀리 밀밭에서

나는 내 딸 따나와 밀 이삭을 쥐고 멀리서

벵쌍과 테오, 둘의 그림자를 찍어두었지

 

언제나 사람 살이는 늘 혼자

그러나 곁에 있는 사람들의 손길로

사랑의 샘이 마르지 않음을 일깨워주는

벵쌍과 테오에게 이 편지를 쓴다

 

---

* 오베르: 오베르 쉬르 우와즈(Aubert-sur-Oise). 파리 북쪽에 있음

 

 

 

그림 속의 나무 - 지인

 

마침내 돌은 부서지고

한 장의 파란 잎이 무덤 속으로 뿌리를 내린다

나는 몸을 일으켜

공기와 물과 빛을 빨아들이고

흰 뿌리는 대지의 유방에서

흰 젖을 빨아 올린다

나의 가지와 잎이

하늘을 향해 오르려 하면 할수록

나의 뿌리는 그만큼 땅 속으로 내려간다

내가 바람으로 부는 날

나는 소리친다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든지

차라리 땅 속으로 내려가

썩어 흙이 되고 싶다고

 

빈센트 반 고흐의 사이프러스 나무

그림 속의 나무, 그 곡절을 들여다보노라면

나무는 내 안에 들어오고

나는 나무 안에 들어 가 하나가 된다

흙에서 타오르는 검은 불꽃!

     

 

씨 뿌리는 사람 - 송선애

 

서울시립미술관 고흐전에서

일백 년이 넘도록 한결같이

씨앗을 뿌리는 사람을 만났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넘실거리는 보리밭을 배경으로

진초록 짙은 꿈을 펼친다

 

링 위에서

쓰러졌다가 일어나기를 여러 차례

끝내, 그는 뇌사판정을 받았다

 

힘차게 날아오르지 못하고

버거운 이승의 끈을 내려놓았다

 

엄동을 딛고 틔운 보리싹 같이

생살 돋아 부식된 세상 걸러내라고,

눈부신 만상(萬象)을 다시 보라고,

그래도 세상은 살만하다고,

 

지금도 그는 씨를 뿌리고 있다   

 

 

오래된 과수원 - 고경숙

 

물 묻은 대지가 빛을 조절해 반짝이는 모습을

나뭇가지는 턱을 괴고 바라본다

사선의 구도로 엄숙한 교회탑 하나 들어와

원색의 애달픔 더할 때

한가로운 시간

자꾸 발을 헛디디고

보낼 사람 다 보내고 홀로 남은 과수원은

하루에도 몇 번씩 꿈을 꾼다

 

낡은 집은 배경이 부드러워

언덕을 흔쾌히 감싸고

치매 걸린 노인이 거니는

고흐의 산책길에 가끔 바람이 놀러올 때

김 오르는 퇴비더미 헤집어 분뇨 몇 방울 더해놓고

닭 몇 마리 구구구 달아나는,

부스스 꿈에서 깬 나무들

메마른 유두에도

하얗게 수줍은 꽃들이 터지는...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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