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다 외 2

鶴山 徐 仁 2016. 12. 1. 19:44
12월 1일 (목)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다 (호세아 5:1-4)
  
 

1. 제사장들아 이를 들으라 이스라엘 족속들아 깨달으라 왕족들아 귀를 기울이라 너희에게 심판이 있나니 너희가 미스바에 대하여 올무가 되며 다볼 위에 친 그물이 됨이라
2. 패역자가 살육죄에 깊이 빠졌으매 내가 그들을 다 벌하노라
3. 에브라임은 내가 알고 이스라엘은 내게 숨기지 못하나니 에브라임아 이제 네가 음행하였고 이스라엘이 더러워졌느니라
4. 그들의 행위가 그들로 자기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하나니 이는 음란한 마음이 그 속에 있어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라

 
  
  
 

<패역자가 살육죄에 깊이 빠졌으매...>(2절).
<... 에브라임아 네가 음행하였고 이스라엘이 더러워졌느니라>(3절).
그런데 이게 다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라>(4절)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살육의 죄를 저지르고, 또 영적 음행, 즉 우상숭배에 빠집니다. 2014년 세상을 떠난 독일 신학자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는 누구보다도 하나님에 관한 참된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한 사람인데, 그는 <하나님에 관한 올바른 지식이 없을 경우 기독교 신앙은 필연적으로 맹신이나 미신 혹은 이단들의 속임수에 빠지게 된다>고 경고하며 믿는 자들의 <윤리적 붕괴도 다 하나님에 관한 오해와 참된 지식의 부재>에서 온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도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6:3)며 호소한 것입니다.

우리의 한계와 약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늘 성경을 가까이 하고 성경공부에도 열심을 내지만 우리는 아직도 하나님에 관해 너무도 무지한 게 사실입니다. 실은 호세아 시대 이스라엘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굳이 호세아 선지자로 하여금 음란한 여인 고멜과 결혼하게 하시고 가출한 고멜을 다시 값을 지불하고 사오게 하시고, 밖에서 낳은 남의 자식을 제 자식으로 받아들여 키우게 하신 이유가 뭘까요? 하나님에 관해 무지하고 깨달음이 더딘 이스라엘로 하여금 호세아의 삶과 구체적인 결혼생활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체험적으로 입체적으로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하나님에 관한 실천적인 학습효과를 기대하신 조처였던 겁니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단순히 머리로 습득하는 게 아닙니다. 삶으로, 결단으로, 행함으로, 온몸으로 익히고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쉐마>에 해당되는 신명기 6장 4절 이하의 말씀에서 <너는 이 말씀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8-9절)고 하신 것도 다 말씀의 생활화를 통해 좀 더 하나님을 바르게 깨달으라는 당부셨습니다. 모든 악과 죄의 원인이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라>하신 하나님의 이 아픈 지적을 마음 깊이 새겨들읍시다.

 
  
  
 

-<살육죄>도, <음행>도, <우상숭배>도 다 여호와를 알지 못한 데서 비롯된 죄악이라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신의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어떻습니까?
-지금 당신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주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까닭에 사람들이 살육하고 음행하고 우상을 숭배한다고 하신 말씀에 무한 공감을 느끼며 하나님을 아는 일에 더욱 힘써야 함을 깨닫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머리로서가 아니라 온몸으로, 삶으로, 생활로 체험함으로써 알아야 그게 바른 지식이 된다는 사실도 깊이 공감합니다. 부디 성령으로 저희를 충만케 하사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 망하는 불행한 성도가 되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자족에 대한 감사

감사는 자족할 줄 아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자족이란 스스로 넉넉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자족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인간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환경이 아니라 욕망을 다스리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욕망을 채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다스리는 데 있습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탐욕은 죄의 뿌리입니다. 죄는 모든 것을 무너뜨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욕망을 다스려야 합니다.
-강준민의 [감사는 숲을 담은 씨앗입니다] 중에서-

 
   
 
  
 


감사는 감사하면 더 큰 감사를 고백하게 됩니다. 감사는 스스로 은혜임을 기억하며 자족할 때 풍성해집니다.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감사함으로 살게 됩니다. 감사를 잃어버린 세대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지 못합니다. 감사가 나를 이끌어가는 삶은 형통합니다. 탐욕으로 물든 인간의 이기심을 감사로 덮을 수 있는 사람은 승리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우리에게 소망이 있음은 우리에게 주신 약속
때문입니다.
믿음의 선배들이 그 길을 걸어갔기 때문입니다.

-변정희 작가

 
    
 
  
 주신장로교회 황요한 목사
 인간은 번영때문에 부패한다는 사실을 알고계십니까
  
  



11월 30일 (수)
예수 믿기 vs. 예수 닮기 (누가복음 6:43-49)
  
 

43.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44.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45.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46.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47.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48.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하였거니와
49.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듣는 말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예수 믿고 구원받으십시오!”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예수님 믿으라는 말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한국 교회를 보십시오. 우리나라에 이단의 숫자가 무려 200만이 훨씬 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의 인구가 800만이라면, 4명 가운데 1명은 이단이라는 말입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이단의 숫자와 기독교인의 숫자가 비슷해 질 것이라는 보고도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잘 믿는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은 이후에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할 때가 많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자신에게 오는 많은 사람들에게 “나를 따라 오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공관복음에 무려 12번이 사용되었습니다. 물론, 단락에서 중복된 경우가 있지만, 예수님의 말씀의 초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향해서 “주님! 주님”이라고 부르고, 소위 종교적인 예언, 귀신을 쫓아내는 일, 기적을 행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셨고, 심지어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사람은 ‘좋은 나무’가 아니며, ‘주여! 주여!’라고 외치는 것이 결코 좋은 나무의 조건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은 나무이며, 그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려고 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나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을 시작하게 되고, 세상과의 싸움도 함께 시작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라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 예수님을 닮아가는 길에는 처절한 싸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것과 똑같이 닮아가는 길을 걸어갈 때,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그 길을 걸어갈 수 없는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꼭 붙잡고 걸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매 순간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유혹이나 정욕이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할 때,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부터 우리가 예수님 닮는 삶을 걸어갔으면 좋겠습니다. 나를 이 지으시고 이 세상에 보내시고, 나를 통해서 세상을 바꾸시기 원하시는 그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면서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의 열매가 없다면 회개합시다.
- “하나님, 오늘 나의 삶의 작은 부분에서부터 주님을 닮기 원합니다.”라고 기도하며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는 작은 일을 찾고 그 길을 따라가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 주님을 머리로만 믿는 자가 아니라 나의 삶에서 그 길을 따라오라고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님! 주님을 닮아가는 길을 걸어갈 때, 두려움을 이기게 하시고,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시옵소서.

 
  
   
 

소망

기독교에는 소망이라는 멋진 말이 있다. 성경은 불확실한 야망을 위한 꿈이 아니라 확실한 진리를 향한 소망을 가지라고 교훈하며 믿음의 지표로 삼으라고 충고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기복적이며 자기중심적인 꿈을 버리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언약과 무한히 베풀어주시는 사랑을 소망하며 진리로 나아가야 한다. 지도자는 믿음으로 온전한 하나님 나라에 갈 때까지 하나님이 예정하신 뜻과 예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빛으로 누리게 될 온전한 축복을 소망해야 한다.
-박정원의 [역사를 이끄는 지도자] 중에서-

 
   
 
  
 


우리 기독교는 소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소망이시기에 소망을 가진 백성들이 주님을 따라 갑니다. 하나님의 소망을 바라본 자들은 묵묵히 자기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갑니다. 하나님은 우리안에 소망을 주십니다. 현실이 아니라 소망을 바라보도록 하셨습니다. 세상적인 정욕을 위한 소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소망을 주셨습니다. 세상도 우리안에 있는 소망을 빼앗지 못합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다시 소망이신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복이 있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시편 128:1)
우리의 다음세대가 하나님을 아는 복을 풍성히
누리길 기도합니다.

-변정희 작가

 
    
 
  
 비젼교회 윤여재 목사
 광야가 주는 교훈
  
  




11월 29일 (화)
성령충만과 지혜의 삶 (에베소서 5:15-21)
  
 

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크리스천에게는 주 안에서 평안을 누리는 기쁨이 있습니다. 부활 후 주님이 제자들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말씀하셨습니다. 돈이 많으면 값비싼 침대와 안락한 의자는 살 수 있어도, 그것들 때문에 평강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평강의 선물은 주님께서 하늘로부터 내려 주시는 것이고, 그 평강이 여러분의 삶에 넘치길 소망합니다.
크리스천으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위에서 부르신 소명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지혜이고, 이것은 세상을 향한 나의 야망과는 구별됩니다. 주님 다시 오실 그날 승리의 찬가를 부르게 되는 것은 소명을 따라 살아갈 때 가능합니다. 아무리 세상적인 명예와 권력과 지식과 돈이 있더라도 지혜가 없으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모든 것에 주인이신 하나님을 모르고 돈과 세상의 노예가 되어 수전노처럼 살다가 심판 받고 멸망 받게 됩니다. 하나님 주신 좋은 선물이 지혜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며 주시리라”했습니다(약1:5). 솔로몬 왕은 일천번제 드린 후에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서 이스라엘 역사상 전무후무한 지혜로운 왕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기도할 때마다 지혜를 간구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귀하게 쓰임 받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부르심 따라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지혜일까요? 세월을 아끼며 살아가야 합니다(16). 다시 말해서 시간 관리를 잘하고 선용하며 사는 것입니다. 구원 받은 후 새사람이 되었고, 새로운 삶으로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때가 악할수록 유혹이 많아 유흥과 오락으로 시간낭비하고, 허송세월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시간을 적극적으로 선용해서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찾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과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것이 지혜입니다.
주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입니다(17). 하나님의 뜻을 분별한다는 것은 자신에게 벌어지는 큰일이라도 주의 뜻이 아니라면 내려놓을 수 있고, 작은 일이라도 거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면 순종할 수 있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18). 사명의 삶은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불가능한 것이라도 성령이 임하면 가능하게 됩니다(슥4:6). 세상의 가치와 유행에 취해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는 방탕한 삶이 아닌 지혜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거룩한 영이신 성령을 사모하고 환영하며, 기도함으로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 결과 바르게 예배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서로 복종하고 섬기며 사랑하게 됩니다(19-21). 가만히 있는데 성령 충만은 임하지 않습니다. 성령은 사모하고 부르짖고 간절히 기도할 때 성령 충만함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 지금 크리스천에게 주어지는 평안과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지 점검해 봅시다.
- 부르신 소명을 따라 살아가는 삶인지 살펴보고, 하나님의 지혜를 간구하십니다.
- 세월을 아끼며 주님 뜻을 분별하기 위해 성령님을 사모하고 충만함을 위해 기도합시다.

 
  
  
 

참 좋으신 하나님, 위로의 성령님을 보내셔서 저의 완악하고 상한 마음을 고쳐주옵소서. 마땅히 기도해야 하는데 알면서도 게을렀던 점을 용서하시옵소서. 소명을 따라 지혜로운 삶으로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도록 충만한 은혜 주시옵소서.

 
  
   
 

들으시는 하나님

‘이스마엘’이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광야에서 하갈의 통곡을 들으셨고, 또한 이스마엘의 신음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하갈은 하나님을 만난 후 그분을 ‘보시는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하갈은 하나님은 보시는 하나님이요 들으시는 하나님입니다. 때로는 모르시는 것 같고 때로는 무심한 것 같고 또 때로는 편애하시는 것 같지만, 다 보고 계시고 다 듣고 계십니다. 사라의 불의를 묵인하시는 것 같지만, 다 알고 계셨습니다. 다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깊은 생각으로 그때는 잠시 묵인하신 것입니다.
-김영봉의 [팔레스타인을 걷다] 중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신음소리를 들으십니다. 우리 인생이 광야에 있을 때, 우리를 보시고 들으시는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이 광야로 쫓겨났을 때, 그들의 눈물을 하나님은 들으셨습니다. 그들을 다시 아브라함의 집으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몸 전체는 우리의 신음하는 소리를 들으시는 귀입니다.

 
   
    
 

하늘의 보고를 열으사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신명기 28:12)

-변정희 작가

 
    
 
  
 명성엘림교회 김성환 목사
 내 얼굴을 보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