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파산->중국 상하이에서 IT창업->3년만에 매출 380억->중국증시 상장 초읽기 들어간 29세 청년
입력 : 2016.10.10 09:17
화동미디어 강민구 대표
3년만에 매출 380억원으로 중국 증시 상장준비
중국 상하이에서 창업해 글로벌 기업 되겠다 포부
중국 상하이 쉬후이구(徐汇区)에 가면 시가총액 2635억달러(292조)의 세계적인 IT기업 텐센트가 있다. 그 바로 옆으로 텐센트를 넘어서겠다는 비전으로 창업한 한국 청년이 있다.
비전은 착착 실현되고 있다. 창업 3년만인 작년, 매출 200억원을 돌파했고 올해 380억원(순이익률 10%)의 매출이 예상된다. 직원 수는 150명을 넘어섰다.
투자자가 줄을 선다. 알리바바와 텐센트에 투자한 중국 유명 벤처캐피탈리스트들이 200억원을 투자했다. 기업공개 꿈을 곧 실현한다. 내년 3월 께 ‘중국판 코넥스’로 불리는 신삼판(新三板)에 상장한다. 신삼판 상장 기업의 시가총액은 3조 위안을 넘는다.
강민구(29) 화동미디어 대표. 스마트폰 잠금화면 플랫폼 ‘머니 락커’(Money locker)를 만들었다. 스마트폰 잠금화면에 쇼핑·택시예약·배달·쇼핑·뉴스를 띄우는 ‘올인원’ 슈퍼 앱이다.
“하나같이 스마트폰 메인화면에 뜰 앱을 만들려고 노력하잖아요? 저는 반대로 잠금화면을 노렸습니다.”
머니 락커를 깔면 잠금화면 상태에서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왼쪽으로 드래그하면 뉴스를 볼 수 있고, 오른쪽으로 드래그하면 택시예약·쇼핑·배달 앱을 이용할 수 있다. '귀차니즘'에 빠지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을 노렸다.
머니락커를 설치하면 자동으로 수십개의 다른 앱 서비스에 가입돼 잠금화면 상에 아이콘이 노출된다. 알리바바·텐센트·바이두·디디추싱 등 1000여개 기업과 제휴가 돼 있다.
현재 회원수는 5000만명. 하루 페이지뷰(PV)는 3억뷰에 달한다. 화동미디어는 사용자가 잠금화면에서 이용하는 거래대금에서 수수료(쇼핑 약 20%, 배달 5%)를 받는다. 프리미엄 서비스를 이용하는 유저 500만명으로부터 사용료도 받는다.
중국은 사업하기 쉽지 않다. 외국인 창업자에 대한 규제가 많고, 한국(22%)보다 법인세율(25%)이 높다. 화동미디어 입주 지역의 임대료는 서울 강남보다 비싸다. 강민구 대표는 이 모든 악조건을 뚫고 성공기를 쓰고 있다. 최근 한국을 찾은 강 대표를 만났다.
◇ 알리바바, 텐센트가 군침흘리는 스타트업
-머니락커 서비스를 어떻게 개발하게 됐나요.
“잠금화면 서비스는 기존에도 있었어요. 하지만 광고를 노출해 광고주와 플랫폼 운영자가 수익을 나눠갖는 방식이었죠. 저희도 시작은 같았어요. 100원짜리 광고를 수주하면 60~70원의 수익을 냈어요. 괜찮았죠. 하지만 광고에만 의존할 수 없었습니다. 곧 출혈경쟁이 벌어질 테니까요. 판도를 뒤집을 혁신이 필요했습니다. 중국인들이 스마트폰 페이를 많이 쓰는 데 착안했어요. 텐센트페이, 알리페이 같은거요. 그런데 이게 귀찮습니다. 잠금화면을 해지하고, 앱을 클릭해야 하거든요. 스마트폰 페이를 잠금화면에 옮겨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잠금화면 상태에서 각종 결제를 하고 뉴스도 볼 수 있게요.”
-이전에 없던 방식이 맞나요?
“세계 최초입니다. 서비스 출시한 지 2년 4개월이 지났는데 아직 경쟁자가 없어요.”
-중국 대기업이 금방 따라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중국 대기업에 대한 오해가 많아요. 스타트업 모델이 좋다고 무조건 사업부를 만들어 따라 하지 않습니다. 지분 투자하는 게 효율적인 부분은 지분 투자로 사업 확장 효과를 냅니다. 바이두가 투자한 스타트업만 100개가 넘습니다.”
◇ 집안 파산→중국에서 고등학교 다니며 사업
검소하다. 낡은 운동화에 구겨진 남방 차림. 실밥이 터져 나온 지갑은 너덜너덜했다. “15년째 쓰는 지갑”이라고 했다. 부모는 강화도에서 작은 사업체를 운영했다. 풍족하진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았다. 부모는 “인생은 답이 없다. 후회하지 않도록 살라”고 가르쳤다. 대화의 단골 주제는 중국.
“어릴 적 아버지 말씀을 모토로 삼고 있습니다. ‘수천억 들여 배를 만들어 수출하면 순익이 100억, 200억 난다. 부가가치가 높지 않은 거다. 보험상품도 잘 팔면 수백억의 순이익을 낼 수 있다. 부가가치 높은 일을 해야 한다’는 말씀이었죠.”
‘남들과 거꾸로 가는 행동’을 많이 했다. “버스를 반대로 타는 게 취미였습니다. ‘반대쪽 노선은 어떨까’란 생각에 버스를 타고 집 반대편 종점까지 가기도 했어요. 휴대폰을 6~7개월씩 안 들고 다닌 적도 있고요. 그게 내 삶을 어떻게 바꿀지 알고 싶었어요.”
큰 세상을 보고 싶어, 중1때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정부 한 재단에서 유학 장학금을 따냈고 선교사인 고모 집에 살았다. 2003년 중국으로 건너가 상하이 공립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이때 아버지 사업이 파산했다. “생활비와 등록금을 벌어야 했어요. 바로 사업을 시작했죠.”
-고등학교 때 사업을 했다고요?
“좋아하던 운동화를 아이템으로 삼았습니다. 살던 곳 근처의 한 신발 공장이 ‘나이키 조던 시리즈’ 한정판 신발을 생산하고 있었는데요. 학교 수업이 끝나면 공장에 가서 운동화를 떼어다 한국에 팔았어요. 개당 10만원에 받아 한국 무역업체에 납품했는데, 그게 한국에선 100만원에 팔렸어요. 그렇게 물건 떼다 팔면서 3년간 3~4억원을 벌었어요.”
금융분야에서 알아주는 푸단대 금융학과에 입학했다. 사업을 멈추지 않았다. “학교에서 문제아였어요. 친구들에게 창업을 권유했거든요. 사실 상하이는 창업 볼모지에요. 푸단대 학생을 보면 30%는 아이비리그로 유학을 가거나, 골드만삭스 같은 IB에 취직합니다. 상하이가 금융중심지라 창업을 장려하는 분위기가 아닌거죠. 저는 그런 현실에 도전했습니다. 소셜커머스 창업을 해봤고, 한류 기사를 번역해 미국과 한국 매체에 공급하는 사업을 했고, 섬유기계를 팔기도 했어요. 모두 대학 다니며 한 거에요.”
◇애니팡 게임에서 인상 받아 창업
-취업한 적은 없나요.
“대학 다니면서 2010년부터 3년 간 락앤락 상하이 법인에서 일했습니다. 신규비즈니스를 담당할 젊은 인력이 필요했는데, 수업시간에 낸 락앤락 분석 리포트를 우연히 접하고 연락을 주셨죠. 공부하랴, 일하랴 바빴습니다.”
-비자가 나옵니까.
“유학생 신분으로 취업비자 받기가 어렵죠. 그래도 불가능한 게 어디 있습니까. 무조건 편지를 썼습니다. 대사관에 ‘중국통이 꿈입니다. 유학생인데, 중국에서 꼭 꿈을 이루고 싶다’고 보냈더니 대사관에서 취업비자를 내주더라고요.”
-군대는 어떻게 했습니까.
"어릴 때 재생불량성 빈혈 판정을 받았고, 군면제를 받았습니다. 평생가도 잘 고치기 어려운 병인데, 어릴 때부터 사실 학교생활에 적응을 못했고 건강이 지금도 좋지는 않아요. 그러나 기독교인이라서 신앙심으로 극복하고 있습니다."
2013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락앤락을 나와 창업에 뛰어들었다. 락앤락 상하이 법인에서 3억5천만원을 투자했고, 개인적으로 모은 돈 10억원도 있었다. 상하이 외곽의 허름한 아파트를 월세로 빌렸다.
-바로 머니락커를 아이템으로 삼았나요.
“네. 대학 시절인 2012년말 한국에 들어 왔다가 모두가 애니팡 게임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신기했습니다. 중국 구글에 다니는 친구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IT 생태계 변화를 주목하라더군요. 그러면서 잠금화면 아이디어를 주더라구요. 답이다 싶어 아이템으로 갖고 있었습니다.”
-창업 초기 어땠나요.
“처음 문을 연 2013년부터 2014년 중반까지 투자금을 포함해 10억원을 거의 다 까먹었습니다. 중국이 당시만 해도 스마트폰 보급이 활성화 되지 않았던데다, 제대로 된 개발자를 못구해 원하는 서비스를 만들지 못했어요. 참지 못해 최고의 두뇌만 모인다는 베이징대 IT연구실로 날아가 기다리고 기다렸어요. 그러다 여자친구가 상하이에 있다는 한 개발자를 만났습니다 ‘내가 비행기 표 끊어줄게. 인생 바꿔주겠다’고 해서 데려왔습니다.”
◇ 월급 50만원에 공동 숙소 생활
2014년 6월 서비스를 출시했다. 하루 20만명씩 사용자가 늘었다. 곧 소식이 퍼져나갔고 스냅쳇, 그루폰, 페이스북 등에 투자한 세계적인 투자자들이 몰렸다.
-그때부터 순항했나요.
“네. 기업 제휴가 잘돼서 사용자가 빨리 늘었어요.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중국 최대 택시앱인 '디디추싱'이 1년에 30개 업체하고만 제휴하는데, 그 중 하나가 저희입니다. 그런데 곧 위기가 왔어요. 겸손을 잃었던 게 원인이었죠. 구글 정도 되는 회사라 착각한거에요. 한번은 벤처캐피탈에서 2000만달러 투자를 약속받았어요. 계약이 끝난 줄 알고 터키로 여행을 갔죠. 돈을 막 썼습니다. 그런데 여행을 다녀오니 계약이 파기돼 있더라구요. 회사가 넘어갈 뻔 했습니다. 직원들 사이 불화도 생겼구요. 부랴부랴 다시 설득해 겨우 투자를 진행했고, 불화도 잠재울 수 있었어요. 그때 초심으로 돌아갔습니다.”
이후 월급을 1원만 받았다. “상장할 때까지 집과 차, 월급을 안받겠다”고 선언한 것. 최근에야 50만원으로 월급을 올렸다. “회사 지분의 30%를 갖고 있습니다. 회사가 성공하면 제가 가장 큰 혜택을 보는데, 이런 인재들이 저와 같이 일하는 이유를 만들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제가 누리는 걸 포기하고 직원들에게 인센티브를 더 주는 거죠.” 그는 지금도 회사의 주요 창업 멤버들과 작은 아파트를 빌려 공동 생활을 하고 있다.
-곧 상장하신다구요.
“중국 법규에 따라 상장에 유리하도록 중외합작회사로 변경하고 있습니다. 정부 인가를 기다리고 있죠. 상장은 주간사를 선정해 진행 중입니다.”
-성공 비결을 하나만 꼽아 주세요.
“초한지를 보면 유방은 스스로 능력이 없어요. 하지만 장량, 한신 같은 인재들로 성공합니다. 저도 제가 앞에 나서지 않고, 중국 인재들을 내세웁니다. 이 친구들이 더 잘하도록 지원하는 거죠. 중국은 아직 잠재력이 무한합니다. 그만큼 도전 가치가 큽니다.”
-요즘 한국에서도 창업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한국은 벤처에 대한 지원이 많습니다. 얼마 전 한국에서 찾아온 스타트업을 만났는데, 직원 2명 회사가 10억원의 정부 지원을 받았다 하더라고요. 그 친구들이 상하이에 와서 하는 일이란 게 5성급 호텔에서 자고, 좋은 식당에서 '데모데이'란 걸 여는 거였어요. 지금까지 우리 회사를 다녀간 한국 스타트업이 300개가 넘는데 모두 이런 식이에요. 지원에 길들여지면 자생할 수 없습니다. 중국은 지원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일단 창업하면 자생하는 곳이 많습니다.”
-예비 창업자에게 조언을 해주세요.
"한국인 중에선 중국 창업 1세대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에서 맨손으로 시작해 성공한 한국인이 별로 없거든요. 제 모토는 세가지입니다. 첫째 ‘성공하는 삶보다 성장하는 삶을 살자.’ 반짝 성공하면 금방 망할 수 있습니다. 둘째 '돈이 목적이 아니다.' 저는 연결을 통해 새로운 IT 생태계를 만들자는 돈 이외의 목표가 있습니다. 마윈, 스티브 잡스 그 누구도 돈이 최고의 목적이 아니었어요. 사명이 있으면 위기가 와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은 '오늘보다 내일을 믿으라'는 겁니다. 그래야 오늘 힘들어도 버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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