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억 들여 세운 하천실험센터, 3년간 연구용역 맡은건 단 1件
입력 : 2016.07.27 02:42 | 수정 : 2016.07.27 07:59
['made in Korea' 신화가 저문다] [제2부-3] '정치'가 망치는 R&D사업
지자체 "남들 하는데 우리도"… 정부 출연硏 분원 2000년 이후 50개 생겨
표 얻으려 유치했다 무용지물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2009년 경북 안동에 하천실험센터를 세웠다. 44억원을 들여 23만3000㎡ 부지에 초대형 수로 3곳을 설치했다. 하지만 이 센터는 개점 휴업 상태다. 시설 유지·보수에 연간 24억원이 들지만, 이 시설에 맡겨진 외부 연구는 지난 3년간 한 건뿐이었다. 전북 부안의 재료연구소 풍력시험동은 2011년 170억원을 들여 건설됐지만 최근 3년간 13억원의 용역만 수주했다. 매년 10억원의 유지·보수비가 든다.
'지역 균형 발전' 논리에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이 줄줄 새고 있다. 지역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이 선거 때마다 유치 공약을 내걸고 치적(治績)으로 홍보하면서 무분별한 지방 분원 설립이 가속화됐기 때문이다. 또 지역 경제를 육성하겠다는 명분하에 R&D 특구나 클러스터(기업·연구소 집합단지)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지만,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곳이 상당수다.
미래창조과학부에 따르면 26일 현재 전국적으로 57개의 정부 출연연구소 분원이 운영 중이고 7개가 건설 중이다. 2000년 이후 생긴 50개 중 37개(74%)가 정치권과 지자체 요구로 만들어졌다. R&D 특구는 전국에 5개, 지자체와 정부가 지정하는 클러스터도 100개에 이른다.
지방 R&D 특구와 클러스터도 기업이 들어오지 않아 텅 빈 곳이 많다. 그런데도 정치권과 지자체는 이들이 지역 과학기술과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한 지방자치단체 부지사는 "R&D 특구나 클러스터로 지정이 되면 기업들이 쉽게 정부 연구비를 탈 수 있고 지방세와 국세 감면 등 세제 혜택도 크다"면서 "정치인 입장에선 어떻게든 이를 유치해야 실적이 된다"고 했다.
정치권과 지방자치단체들은 국가 전체적인 정부 연구·개발(R&D)의 효용성을 따지기보다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정치적 명분을 우선시한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정미정 성과평가부장은 "전국의 출연연 분원에 대한 구조조정을 하고 있지만, 해당 지역에서 강력하게 반발해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게다가 정치권과 지자체는 유치에만 적극적일 뿐 비용 부담은 꺼린다. 지난해 지자체는 출연연 분원 운영에 필요 예산의 2.21%인 143억원만 분담했다.
정치권은 '지역 차별'의 논리까지 동원한다. 지난 2010년 정부는 대구광역시와 광주광역시에 R&D 특구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국정감사 때마다 "정부 R&D 투자 예산의 70% 이상이 수도권과 대전·충남에만 집중되고 있다"는 영·호남 출신 국회의원들의 지적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새 R&D 특구가 지정되면 기존 R&D 특구에서는 '역(逆)차별'이라고 아우성을 치는 일이 다반사다. 올해 2월 정부가 서울 양재동과 우면동 일대를 '한국판 실리콘밸리'로 키우겠다고 발표하자
, 충청권 지자체와 지역 국회의원들이 "대덕 연구단지에 집중된 역량을 분산시키는 일"이라고 거세게 반발했다. 한 전직 장관은 "우리나라가 70~80년대 과학 기술 개발과 산업화를 일굴 때는 R&D 투자의 효율을 무엇보다 우선시했지만 정치 논리가 개입되기 시작하면서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도 성과를 내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 정부 R&D 예산 받는 클러스터 100여곳… 선심쓰듯 전국에 '남발' 전주=김강한 기자
- "국내 과학기술 출연硏 25곳… 과감히 정리해야" 박순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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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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