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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際.經濟 關係

[송희영 칼럼] 여기서 한 번 더 주저앉으면

鶴山 徐 仁 2016. 6. 18. 19:22

[송희영 칼럼] 여기서 한 번 더 주저앉으면

  • 송희영 주필


입력 : 2016.06.18 03:06


  

미·영 利害에 휘둘려온 한국… IMF, 월가 태풍 때 큰 고통
이번엔 트럼프 현상·브렉시트… 감당하기 벅찬 위기 될 수도
소용돌이 거셀수록 생존을 위한 지혜 발휘해야

송희영 주필 사진
 송희영 주필

미국에 이어 영국도 달아오르고 있다. 트럼프가 '미국 제일(America First)'을 외치면 EU 이탈파들은 '영국 제일(Britain First)'을 합창한다. 트럼프가 멕시코 불법 이민자들이 미국을 망쳤다고 소리칠 때 대서양 건너편에선 시리아·루마니아 난민이 일자리를 도둑질한다고 호응한다.

트럼프 붐과 영국의 EU 탈출(브렉시트)은 닮은꼴이다. 불만계층이 살인을 저지를 만큼 기득권층을 공격하는 호전성부터 똑같다. 지지층도 많이 겹친다. 브렉시트가 성공하면 그 바람에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영국·미국의 용광로가 동시에 요동치는 것은 심상치 않은 조짐이다. 두 나라는 2차 대전에서 독일, 일본을 굴복시킨 전우(戰友)이다. 소련을 무너뜨리고 냉전도 함께 끝냈다. 두 나라 연대(連帶)는 300년 안팎 단단했다. 자유무역 질서와 국제금융이 순환하는 체제를 만들었고, 복싱·육상·골프 등 수많은 인기 스포츠 룰을 합작했다.

'영국은 어떻게든 해낸다(Britain muddles through)'는 영국 속담이 있다. 전투에서 매번 패해도 마지막 전투에서는 반드시 이긴다는 자부심이다. 그렇게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했다. 미국에 패권을 넘겨준 뒤에도 '영어 제국'의 파트너가 됐다.


그러나 거의 300년 지탱해온 영어 국가 연합이 위기에 처했다. EU는 독일이 주도권을 휘두르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거센 도전에 직면했다. EU에서 영국의 발언권은 곧잘 묵살되고 난민 수용 등 손해를 감수해야 할 일만 늘어갔다. 불법 이민에 골머리를 앓는 미국과 다를 게 없는 처지다.

'미·영(美英) 연합 제국'의 혁명 열기는 벌써 파장을 키우고 있다. 전 세계 주가가 폭락하는가 하면 환율도 춤을 춘다.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구제금융을 풀기 시작했다. 일본에선 '트럼프 엔다카(円高)'라는 단어가 탄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면 엔화가 급등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미국·영국의 내부 열병(熱病)은 독감으로 끝날 수도 있다. 브렉시트만 성공하고 트럼프는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독일과 중국이 턱밑까지 쫓아온 세력 판도나 극심한 빈부 격차 상황이 바뀌지 않는 한 그 열병이 언제 다시 폭발할지 알 수 없다.

우리의 근대 역사는 영어권 해양 세력의 이해관계에 따라 단맛과 쓴맛을 다 봤다. 100여년 전 미국·영국이 일본과 손을 잡았을 때는 일본의 식민지가 됐다. 일본이 연합국에 도발하다 실패했을 때는 독립국가로 탈바꿈했다.

우리 세대가 기억하는 아픔도 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미국의 우월주의는 아무도 견제할 수 없었다. 1995년 미국이 '강한 달러 정책'을 선언하자 전 세계가 흔들렸다. 2년 뒤 한국은 외환 위기를 맞았다. 그 후 비정규직이 양산되면서 빈부 격차가 확대됐다.

2008년 월스트리트가 붕괴됐을 때도 쓰나미를 피할 수 없었다. 달러 부족으로 인해 2차 외환 위기를 겪었다. 성장률은 2%대로 뚝 떨어졌고 청년 실업이 사회문제로 등장했다. 2차 외환 파동의 여진은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도 미국·영국이 앓고 있는 몸살이 곧 우리에게 닥칠 것이다. 그것이 가벼운 감기 증상으로 끝날지, 지독한 독감으로 번질지, 아니면 온 나라를 뒤흔드는 공황 사태로 커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우리가 이번마저 무너지면 다시 일어서기는 좀체 힘들 것이다. 체력이 그만큼 약해졌기 때문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온통 걱정거리뿐이다. 미국·일본과 관계가 매끄러운 것도 아니다. 권력 핵심 청와대는 고집으로만 똘똘 뭉친 바윗덩어리로 보인다. 세 조각으로 쪼개진 정치권이 밀어닥치는 쓰나미에 공동으로 방파제를 쌓을지 의문이다. 국민이 나를 지켜줄 것이라고 믿고 몸을 맡길 만한 곳이 없다.

미국과 영국의 요즘 움직임은 300년 만에 흐름이 달라지는 대격변은 아니다. 1989년 냉전이 끝난 후 미국은 한때 유일한 강대국이었다. 2008년 금융 위기로 미국 패권에 금이 간 이후 국제 질서를 지배하는 새로운 틀은 갖춰지지 않았다. 중국·독일이 컸다곤 하지만 미국·영국처럼 세계 공통의 룰을 만들 힘을 갖지 못했다.

만약 브렉시트가 성공하고 트럼프까지 대통령으로 등장하면 그동안 세상을 지배했던 룰은 조금씩 바뀔 것이다. 하나가 좌절하거나 둘 다 실패해도 영어 제국은 '아메리카 퍼스트' '영국 제일'을 앞세워 자국(自國) 이익을 최우선으로 할 것이다.

소용돌이에 휘감기더라도 중견 국가로서 살아남을 지혜를 찾아야 한다. 트럼프 열풍을 우습게 보며 새바람을 거부하는 바보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새로운 룰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자발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그게 손해를 덜 보고 작은 몫이라도 챙길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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