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내가 그들 가운데 영원히 살리라 외 7

鶴山 徐 仁 2016. 6. 18. 18:56
6월 18일 (토)
내가 그들 가운데 영원히 살리라 겔 43:1-9
   
 

1. 그 후에 그가 나를 데리고 문에 이르니 곧 동쪽을 향한 문이라
2.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 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말미암아 빛나니
3. 그 모양이 내가 본 환상 곧 전에 성읍을 멸하러 올 때에 보던 환상 같고 그발 강 가에서 보던 환상과도 같기로 내가 곧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더니
4. 여호와의 영광이 동문을 통하여 성전으로 들어가고
5. 영이 나를 들어 데리고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더라
6. 성전에서 내게 하는 말을 내가 듣고 있을 때에 어떤 사람이 내 곁에 서 있더라
7.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는 내 보좌의 처소, 내 발을 두는 처소, 내가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에 영원히 있을 곳이라 이스라엘 족속 곧 그들과 그들의 왕들이 음행하며 그 죽은 왕들의 시체로 다시는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8. 그들이 그 문지방을 내 문지방 곁에 두며 그 문설주를 내 문설주 곁에 두어서 그들과 나 사이에 겨우 한 담이 막히게 하였고 또 그 행하는 가증한 일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으므로 내가 노하여 멸망시켰거니와
9. 이제는 그들이 그 음란과 그 왕들의 시체를 내게서 멀리 제거하여 버려야 할 것이라 그리하면 내가 그들 가운데에 영원히 살리라

 
   
   
 

에스겔이 이상 중에 본 거룩한 광경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으로부터 오고, 하나님의 음성은 영롱한 물소리와도 같습니다. 일찍이 솔로몬의 가증한 일로 동문을 떠났던 주의 영광이 이제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땅이 그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빛났습니다. 에스겔이 본 그 하나님의 영광은 이전 그발 강가에서 본 이상과도 같아 그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립니다. 동문으로 들어온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으로 들어가 짙은 어두움을 몰아내고 밝은 빛으로 채웁니다. 그렇습니다. 에스겔처럼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한 사람은 누구나 그분의 영광에 압도되어 하나님을 경배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내가 너희 가운데에 영원히 살리라>(9절)며 약속하십니다. 주님도 제자들을 향해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고 다짐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영원히 사시는 일에 하나의 전제를 제시합니다. <그들이 그 음란과 그 왕들의 시체를 내게서 멀리 제거하여 버려야 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얼마나 지당한 말씀입니까?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시기에 우상숭배와 죽은 왕들의 시신을 신으로 섬기는 미신 행위를 그대로 고집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 역시도 거룩해야, 죄를 회개하고 멀리해야 비로소 우리 가운데 강림하사 영원히 함께 사실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임하사 기이한 일을 행하시리라>(수 3:5).

여호와께서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을 성결하게, 거룩하게 해야 함을 잊지 마십시오. 또 여호와께서 우리 가운데 임하셔야 마침내 홍해가 갈라지고, 요단강에도 길이 난다는 사실을 오래 기억하실 일입니다.

 
   
   
 

-<내가 그들 가운데 영원히 살리라>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잡으십시오.
-<죄를 멀리하고 제거해 버려야 할 것이라> 하신 전제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라고 한 로마서 8장의 말씀을 통해 큰 용기와 희망을 가지십시오.

 
   
   
 

주님, 하나님은 언제나 저희 가운데 계십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너희 몸이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6:19)고 했습니다. 저희로 하여금 새삼 깨닫게 해 주시옵소서. 홀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하시므로 교감과 소통과 연대 속에 있음을 깊이 체험하게 해 주시옵소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살게 해 주시옵소서.

 
   
     
 

나를 희망의 미래로 이끌어 주는 힘

사명의 사전적인 뜻은
“자신의 미래를 이끌어 주는 힘”이다.
나를 희망의 미래로 이끌어주는 힘이 사명이다.
그러므로 사명을 가진 사람은 미래를 힘차게 열어가지만,
사명이 없는 사람은 죽지 못해서 살 정도로 힘들게 산다.
신앙생활에 기쁨이 없고 힘이 드는가?
사명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여러분도 다 사명자의 삶을 사시기 바란다.
-권오선 목사의 ‘이렇게 바뀌었습니다’에서-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사명에 살면 아침에 일어날 때,
너무나 흥분이 되어 아침식사를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교회 안과 밖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잊지 마십시오.
사명을 잃어버리면 온전한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사탄에게 끌려가는 피곤한 인생이 됩니다.
우리에게 사명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사명을 주셨다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럴 때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될 수 있습니다.

 
     
       
 

잠언 30:8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Keep falsehood and lies far from me; give me neither poverty nor riches, but give me only my daily bread.

 
       
 
   
  하나교회 최종명 목사
  영들을 분별하라
   
   



6월 17일 (금)
이는 거룩한 곳이라 겔 42:10-20
   
 

10. 남쪽 골방 뜰 맞은쪽과 남쪽 건물 맞은쪽에도 방 둘이 있는데
11. 그 두 방 사이에 길이 있고 그 방들의 모양은 북쪽 방 같고 그 길이와 너비도 같으며 그 출입구와 문도 그와 같으며
12. 이 남쪽 방에 출입하는 문이 있는데 담 동쪽 길 어귀에 있더라
13. 그가 내게 이르되 좌우 골방 뜰 앞 곧 북쪽과 남쪽에 있는 방들은 거룩한 방이라 여호와를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이 지성물을 거기에서 먹을 것이며 지성물 곧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을 거기 둘 것이니 이는 거룩한 곳이라
14. 제사장의 의복은 거룩하므로 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에 바로 바깥뜰로 가지 못하고 수종드는 그 의복을 그 방에 두고 다른 옷을 입고 백성의 뜰로 나갈 것이니라 하더라
[성전의 사면 담을 측량하다]
15. 그가 안에 있는 성전 측량하기를 마친 후에 나를 데리고 동쪽을 향한 문의 길로 나가서 사방 담을 측량하는데
16. 그가 측량하는 장대 곧 그 장대로 동쪽을 측량하니 오백 척이요
17. 그 장대로 북쪽을 측량하니 오백 척이요
18. 그 장대로 남쪽을 측량하니 오백 척이요
19. 서쪽으로 돌이켜 그 장대로 측량하니 오백 척이라
20. 그가 이같이 그 사방을 측량하니 그 사방 담 안 마당의 길이가 오백 척이며 너비가 오백 척이라 그 담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것이더라

 
   
   
 

<그가 내게 이르되 좌우 골방 뜰 앞 곧 북쪽과 남쪽에 있는 방들은 거룩한 방이라 여호와를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이 지성물을 거기서 먹을 것이며 지성물 곧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을 거기 둘 것이니 이는 거룩한 곳이라>(13절).

그렇습니다. 성전의 제사장들의 방, 제사장들이 제사에 쓸 제물을 준비하고 보관하고 혹은 제사 후 지성물을 먹는 등 하여간 하나님께 예배하는데 이용되는 모든 방은 다 거룩한 방이며 거룩한 곳입니다. 제물이 거룩하고 제사장이 거룩하고 제사에 이용되는 제사장의 방이 거룩한 이유는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주일이 거룩하고 교회가 거룩하고 예배가 거룩한 이유는 시간이 거룩하고 공간이 거룩하고 의식이 거룩해서가 아니라 주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거룩한 것도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이고 헌금이 거룩한 것도 그것을 열납하시는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5).

그렇습니다. 거룩한 곳에서는 일상의 때묻은 신을 벗어야 합니다. 거룩한 곳에서 신을 벗지 않는 것은 곧 하나님의 신성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제사장의 의복은 거룩하므로 ...>(14절). 거룩함을 입으십시오. 제사장의 의복 같이 <거룩>으로 옷을 삼으십시오.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도>입니다. <거룩한 무리>들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신 까닭입니다. <거룩>이란 말인 히브리어 <카도쉬>는 <구분, 분리>의 뜻을 가진 말로 <하나님을 위한 성별>을 의미합니다. 세속 가운데 살면서도 세속에 동화되거나 타협하거나 세속에 굴복하지 않고 구별된 삶을 살며 믿는 자의 정체성을 지키며 사는 삶, 주일을 지키고,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며 사는 삶이 곧 <거룩>이라는 것입니다. 부디 하나님을 위해 구별된 거룩한 곳에서 신을 벗으십시오. 거룩함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십시오.

 
   
   
 

-믿는 자들이 왜 반드시 거룩해야 하는지를 말씀해 보십시오.
-구원과 성화의 관계를 설명해 보십시오.
-왜 주일이 성일이고 신자들이 성도인지를 말씀해 보십시오.

 
   
   
 

주님, 저희가 거룩해서가 아니라 주님이 거룩하셔서 저희가 성도입니다. 일요일이 거룩해서가 아니라 그날이 주님의 날이기에 성일입니다. 천국은 거룩한 나라이기에 저희가 더욱 성화에 힘써야 합니다. 부디 <거룩>의 개념을 바르게 깨닫게 하사 더욱 거룩하신 주님의 모습을 닮아가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저희 성도들 되게 해주시옵소서.

 
   
     
 

사랑의 대상을 분명히 하라

여러분, 이제 사랑의 대상을 분명히 하십시오.
나이가 먹고 신앙의 연륜이 쌓일수록,
분명히 해야 합니다.
베드로처럼, ‘내가 주님을 이 모든 사람들보다 더 사랑합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이 아십니다!’라며
다시 고백하고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직도 내 사랑의 대상이
세상의 정욕과 육체의 자랑거리에 머물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주님의 양 무리들을 치도록
일꾼들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최부옥 목사의 ‘주님의 양을 치려면’에서-

 
     
 
   
 


주님 사랑이 없거나 흐려져 있으면
우리는 모든 것들을 다 잃게 됩니다.
하지만 주님 사랑이 우리 안에 힘 있게 보전되어 있고
역사하고 있으면, 우리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게 됩니다.
진정 주님 사랑만이 힘이요 살 길입니다.
그에 대한 사랑만이 우리를 하나 되게 합니다.
주의 사랑으로 모두가 하나 되어 나아갈 때,
새로운 역사의 무대를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Since you call on a Father who judges each man's work impartially, live your lives as strangers here in reverent fear.

 
       
 
   
  주는교회 강성현 목사
  둥지 광야
   
   




6월 16일 (목)
나를 데리고 가시는 하나님 겔 42:1-9
   
 

1. 그가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북쪽 뜰로 가서 두 방에 이르니 그 두 방의 하나는 골방 앞 뜰을 향하였고 다른 하나는 북쪽 건물을 향하였는데
2. 그 방들의 자리의 길이는 백 척이요 너비는 쉰 척이며 그 문은 북쪽을 향하였고
3. 그 방 삼층에 회랑들이 있는데 한 방의 회랑은 스무 척 되는 안뜰과 마주 대하였고 다른 한 방의 회랑은 바깥뜰 박석 깔린 곳과 마주 대하였으며
4. 그 두 방 사이에 통한 길이 있어 너비는 열 척이요 길이는 백 척이며 그 문들은 북쪽을 향하였으며
5. 그 위층의 방은 가장 좁으니 이는 회랑들로 말미암아 아래층과 가운데 층보다 위층이 더 줄어짐이라
6. 그 방은 삼층인데도 뜰의 기둥 같은 기둥이 없으므로 그 위층이 아래층과 가운데 층보다 더욱 좁아짐이더라
7. 그 한 방의 바깥 담 곧 뜰의 담과 마주 대한 담의 길이는 쉰 척이니
8. 바깥뜰로 향한 방의 길이는 쉰 척이며 성전 앞을 향한 방은 백 척이며
9. 이 방들 아래에 동쪽에서 들어가는 통행구가 있으니 곧 바깥뜰에서 들어가는 통행구더라

 
   
   
 

<그가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북쪽 뜰로 가서 두 방에 이르니 ... >(1절).

하나님이 에스겔 선지자를 데리고 성전의 북쪽 뜰에 있는 제사장의 방들로 인도하시는 대목입니다. 단아한 아름다움과 따뜻하고도 정감 넘치는 사랑이 느껴지는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믿는 자의 삶이란 언제나 하나님의 손에 이끌려 사는 것이어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이 나를 데리고 가시는 생활, 지금 당신의 삶은 어떻습니까? 당신이 하나님의 이끄심을 받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당신의 탐욕에 따라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계십니까? 내가 내 소망을 이루기 위해, 내 뜻을 관철하기 위해 하나님을 끌고 다니는 것은 결코 믿음이 아닙니다. 다윗의 고백을 보십시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시 23:1-2절).
나를 데려가시는 하나님의 이끄심을 받으십시오. 한순간만이 아니라 평생을 그렇게 살아야 복됩니다.

메리 스티븐슨의 시 <모래 위의 발자국>입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그가 주님과 함께 해변을 걷고 있는 꿈이었습니다. ... 그는 모래 위의 발자국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드문드문 한 사람의 발자국만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자신이 가장 힘들고 가장 아파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짐, 제가 가장 힘들고 가장 주님을 필요로 했던 순간마다 주님은 왜 저와 함께 하지 않으셨나요? 보십시오! 저렇게 자주 한 사람의 발자국 뿐이지 않습니까?” 주님이 대답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저 숱한 시련의 때, 너가 아파하는 순간에는 내가 너를 업고 걸었단다.”>

언제 어디서나 나를 데리고 가시는 하나님, 필요하시면 아예 나를 업고가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바치십시오.

 
   
   
 

-벌써 6월 중순입니다. 올해도 주님이 당신을 여기까지 데리고 오셨음을 믿으십니까?
-다윗처럼 주님이 나를 항상 <푸른 풀밭으로,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실 것>을 확신하십니까?
-때로 내가 느끼지 못할 뿐이지 주님은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이끌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에벤에셀의 하나님, 저희를 그 옛날 에스겔 선지자처럼 친히 데리고 가시고, 다윗처럼 인도하셔서 정말 범사에 부족함이 없게 해주시옵소서. 저희가 주님을 저희 욕심의 방향대로 강제하지 않고, 언제나 주님의 이끄심에 전적으로 순종하며 목자의 뜻에 온전히 따르는 착한 양들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저희는 자주 주님 곁을 떠나 길을 잃는 일이 있어도 주님은 결코 저희를 떠나시지 않음을 확신하는 저희들 되게 해 주시옵소서.

 
   
     
 

제자 된 자의 삶의 참모습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지만
그러나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않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것이 주님을 따르는 자의 삶의 모습이다.
주님을 따르는 자는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없다.
곧 자기 원하는 대로, 자기 뜻대로 살 수 없다.
이제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주님의 제자 된 자의 삶의 참 모습이다.
-손재호 목사의 ‘너는 나를 따르라!’에서-

 
     
 
   
 


오늘날 이 시대는 제2의 르네상스와 같은 시대입니다
. 인간이 우선시 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자신의 삶이 우선이고,
자기만족이 우선인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곳에 가고 싶고,
원하는 것을 이루고 싶고, 원하는 대로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제자들은 자기가 원하는 일보다
주님이 원하는 일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 메인바 된 제자들은
자신의 삶이 우선이 될 수 없습니다.

 
     
       
 

디모데후서 2:22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Flee the evil desires of youth, and pursue righteousness, faith, love and peace, along with those who call on the Lord out of a pure heart.

 
       
 
   
  주는교회 강성현 목사
  진짜 믿음
   
   




6월 15일 (수)
그리스도인은 가정에 파송된 선교사입니다. 고린도전서 7:10-20
   
 

10.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11.(만일 갈라섰으면 그대로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12.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를 버리지 말며
13.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14.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15.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16.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 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17.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18.할례자로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19.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20.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목회를 하다보면, 선교에 대한 사명을 깨닫게 됩니다. 단기선교를 비롯해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대해서 헌금과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애쓰게 됩니다. 매년 재정의 얼마를 선교에 사용하느냐가 그 교회의 목회비전과 맞물려서 평가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선교에 중요한 측면을 잊어버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 속에서 파송된 선교사라는 사명을 말입니다. 단기선교를 위해서 헌금하고, 기도로 영적 싸움을 준비하고, 어떤 불이익이나 시련이 있어도 담대하게 기쁨으로 봉사하고, 성령의 능력과 증거를 체험하고 선교지에서 돌아와서 우리는 가정을 불편하기까지 합니다. 회사생활과 임금노동은 은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모두가 단기선교를 다녀온 사람들은 모두 선교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 선교지에서는 좋았는데...”라고 말하면서 말이죠!

생각해 보십시오! 왜 선교지에서 좋았을까요? 성령이 역사하시기 때문일까요? 그곳에서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당신이 선교를 떠날 때, 기도로 준비하고, 그 어떤 역경 속에서도 주님의 이름으로 승리하고, 얼굴에서 웃음을 잃지 않고, 서로가 믿음으로 격려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역으로 왜 가정과 회사, 그리고 교회에서 그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걸까요? 자신에게 솔직해 보십시오! 매일 가족들 앞에게 내가 가장 낮은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결단하십니까? 아침에 출근하면서, 오늘 있을 영적싸움을 위해서 기도로 준비하고 있습니까? 나의 얼굴을 통해서 회사 동료들이나 연관사업의 직원들에게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기 위해서 담대하게 주님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가정에서 매일 일어나는 사소한 일에 내가 주님의 종으로서 기쁨으로 봉사하고 있습니까?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자녀와 부모님에게 말할 때, 선교지에서처럼 긍정적이고 소금을 치는 말을 하고 있습니까? 아무리 화가 나도 인내하고, 가족을 선교해야 할 대상처럼 대하십니까?

그렇게 하지 않으니까? 당신의 가정과 회사에서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오늘 지금 이 순간, 가정과 회사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당신이 기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었다면, 그곳을 선교지로 여기고 사명을 감당하라고 말합니다.

13.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14.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사도 바울은 결혼을 누구와 하느냐 보다도, 할례를 받았느냐 아니냐 보다도, 내가 어디에 있느냐 보다도 중요한 것은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바로 그 자리라고 말합니다.

20.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그리스도인으로서 서 있는 모든 자리를 우리가 ‘하나님의 선교지’라는 사명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분명히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모든 열방뿐이 아니라,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바로 그 변화가 시작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 오늘 가정과 직장에서 선언해 보십시오. “나는 오늘부터 가정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선교를 떠날 때 가졌던 마음으로 내가 그 일을 감당하겠습니다.” 그리고 실행에 옮겨보십시오.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 살아계신 예수님! 나의 삶의 전부를 주님께 드립니다. 내가 죽고 예수님이 사는 곳이 바로 내가 매일 마주하는 가정과 일터, 그리고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나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 성령님! 내 안에 살아계셔서 나의 모난 성품과 생각으로 인해서 주변의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나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성도의 가장 크고 중요한 소망

사람에게 소망은 중요하다.
소망(희망)이 없으면 더 이상 살아갈 의욕을 갖지 못한다.
내일은 나아지고 좋아지리란 소망이 있어야 오늘을 살 수 있다.
여러분에게 소망이 있는가? 어떤 소망을 가지고 사는가?
‘앞으로 잘되리라’는 소망인가? 출세와 성공을 기대하는 소망인가?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성도의 소망은 다르다.
천국을 소망하며 더 나아가 부활을 소망한다.
예수님의 부활은 성도의 부활을 보증하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20)
-김인수 목사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에서-

 
     
 
   
 


과실나무에 첫 열매가 열리면 농부는 확신합니다.
‘그 다음해에도 열매가 열릴 것이다.’라고.
예수님의 부활은 성도의 부활을 보증합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살아 있는 자들도 부활체로 변화하여
공중에서 주님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과 더불어 항상 함께 거하게 될 것이며
이것이 성도가 가지는 가장 크고 중요한 소망입니다.

 
     
       
 

이사야 38:17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내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내 모든 죄를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Surely it was for my benefit that I suffered such anguish. In your love you kept me from the pit of destruction; you have put all my sins behind your back.

 
       
 
   
  은총교회 정종진 목사
  분을 다스리라
   
   




6월 14일 (화)
승리하는 삶의 비결 야고보서 4:1-10
   
 

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4.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5.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9.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문제도 많고 탈도 많은 것이 우리네 인생입니다. 잘되어 가는 것 같았는데 안 되기도 하고, 올라가도 내려오는 일이 생기고, 건강하다가도 질병이 찾아오고, 근심과 걱정이 몰려오기도 합니다. 불교에서는 인생을 원래 고해라고 하며 고통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아무런 해결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바람 잘날 없는 인생의 모든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치료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줍니다. 야고보 기자는 모든 문제의 원인과 해결의 방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먼저, 겸손해야 합니다(6). 싸움과 다툼 원인은 정욕과 욕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1-2). 모든 정욕과 욕심을 이기고 승리하는 삶의 비결은 겸손해지면 가능합니다. 겸손은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 앞에 죄를 고백하고, 철저하게 자신을 낮추며, 용서함을 받은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탐욕과 욕심을 따라 남을 속이고 빼앗고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교만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 헤롯왕은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는 교만으로 충이 먹어 죽임을 당했습니다(행12:20).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베풀어주지만, 교만한 자는 물리치십니다. 이제부터 하나님께 충성하고, 타인에게 겸손하며, 자신에게 진실한 크리스천으로 살아 가십시다.
또한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7). 마귀를 대적하려면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처럼, 싸움의 상대를 잘 알아야 준비하고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마귀는 어떤 존재입니까?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에 욕심을 심어 주며, 영적 눈을 어둡게 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못하도록 방해를 합니다. 또한 시기와 질투를 일으켜 미워하게 만들고, 불평과 불만을 갖게 하며, 낙심과 두려움을 주기도 합니다. 가인은 시기에 사로잡혀 동생을 죽이는 죄를 범했고,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선한 일로 시작했지만, 탐욕 때문에 거짓으로 성령을 속이려 하다가 영혼이 떠나는 일도 있었습니다. 대적한다는 것은 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로 싸워서 이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 사나운 개를 만났을 때 도망가면 좇아와 물리지만,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대적할 때 피하는 것처럼, 주의 말씀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하고 명령할 때 마귀는 피하며 떠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8).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 하나님께서도 가까이 해 주십니다. 손을 깨끗이 하라는 것은 행위를 똑바로 하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과 세상을 함께 하는 두마음을 품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선행 조건은 애통하며 회개함으로 자신을 성결케 하는 것입니다(9). 하나님이 우리와 가까이 계실 때 온갖 귀한 은혜를 경험할 수 있으며, 마귀의 그 어떤 공격과 위협에도 보호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중심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가난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주 앞에서 낮추며, 주를 바라볼 때에 주께서 높여주시는 것입니다(10). 이처럼 인생의 모든 문제 앞에서 하나님 주신 지혜로 날마다 승리하는 삶이되시기 바랍니다.

 
   
   
 

- 지금 당하고 있는 여려움은 영적인 문제인지 육신적 문제인지 정리해 봅시다.
- 영적 실존인 마귀의 존재를 인정하십니까? 대적하는 믿음을 위해 기도합시다.
- 하나님을 가까이 함에 있어서 장애요소는 무엇인지 생각하고 결단합시다.

 
   
   
 

승리의 주 하나님, 지난 날 많은 문제 앞에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아가지 못함을 고백합니다. 이제 믿음으로 하나님께 복종함으로 더 겸손하게 하시옵소서. 주님을 더 가까이 함으로 구원의 확신과 역사하는 믿음으로 마귀를 대적하고 영적 승리의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올바른 길이 있습니다

인생길을 걸어가는 데에는 올바른 태도가 필요합니다.
“살다가 싫으면 헤어지지 뭐” 하는 태도는 옳지 않습니다.
끝까지 잘 사는 태도가 옳습니다.
좀 힘들다고 뜻을 포기하거나 멈추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힘들어도 견디는 태도가 옳습니다.
“필요하면 거짓말도 하는 거지 뭐” 물론 옳지 않습니다.
항상 진실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옳습니다.
“난 너를 이해할 수 없어. 난 네가 싫어!”
하는 말을 쉽게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가능하면 이해하고 가능하면 사랑하는 태도가 옳습니다.
돈을 적게 벌더라도 바른 길을 가는 태도가 옳습니다.
손해를 보더라도 양보하며 살아야지 하는 태도가 옳습니다.
-안두익 목사의 ‘어떻게 살아야 하나’에서-

 
     
 
   
 


이 세상에는 올바른 길이 있습니다.
그 길로 가면 축복이요 끝이 좋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옳지 않은 길도 있습니다.
그 길로 가면 아픔이요 후회를 가져옵니다.
옳은 길로 가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축복하십니다.
‘하나님 내 삶의 자세가 항상 바르게 되도록 인도하시고
행여 잘못하면 고쳐주시고 바른 길을 가도록 도와주세요.’
하고 기도하십시오.
그렇게 나아가면 올바른 태도가 습관화 되어서
반듯한 인생길을 가게 됩니다.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But God demonstrates his own love for us in this: While we were still sinners, Christ died for us.

 
       
 
   
  은총교회 정종진 목사
  혼돈되는 사회속에 하나되는 방법
   
   




6월 13일 (월)
창조질서를 회복하라 롬 8:19-22
   
 

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는 회복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삶에 회복의 영역은 참으로 많습니다. 사회 전반에도, 개인과 가정에도 회복이 필요합니다. 과연 회복이 가능할까요? 가능한 것은 하나님은 회복케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하고 확실한 방법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메마름 광야에 샘이 넘치게 하시고, 홍해를 육지처럼 가르시고,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 분이십니다. 그러한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심을 믿고 그분과 동행할 때 그가 우리의 모든 무너진 것을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이러한 회복을 누리는 비결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을 찾고, 그분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와 죽음을 이기시고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주님으로 믿고 그 이름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또한 보혜사 성령님께 나의 삶을 의논하고 맡기며 동행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이 복음적인 삶입니다. 복음적인 삶은 주일과 주일사이의 날들을 어떻게 사는가에 따라 판가름 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마음으로 살고, 영혼들을 위한 선교적 마인드로 살고, 이웃을 위해 섬김과 나눔의 k삶을 살아간다면 모든 것이 회복될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만 회복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연계에도 필요합니다. 요즘 주위를 둘러보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계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원래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은 참 아름다웠습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자연만물이 공존하며 조화를 이루는 것을 보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감탄하셨습니다(창1:31). 그러나 아담에 의해 죄가 세상에 들어옴으로 땅도 저주를 받았습니다(창3:17). 인간의 죄가 왜 자연에까지 영향을 주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역할에 기인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자신의 대리인으로서 자연의 관리자로 세우셨습니다(창1:28). 인간은 자연을 잘 관리하고 다스려야했는데 죄로 인해 타락했기 때문에 결국 자연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 것입니다. 이 환경위기의 책임은 욕심덩어리인 인간에게 있는 것입니다.
환경회복의 비결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날 때 가능합니다(19). 하나님의 사람들인 우리는 예배만 중요시할 것이 아니라, 자연을 보호하며 잘 다스려 피조물들을 저주의 속박으로부터 자유하게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21). 우리는 창조질서를 회복해야 할 사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첫째, 창조신앙관을 회복해야합니다. 자연은 우리가 마음대로 해도 좋은 사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물이며 살아 숨 쉬는 생명체라는 것을 인정해야합니다. 둘째, 자연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합니다. 권리만 주장하지 말고 구원해주신 이유를 생각하며 할 일을 해야 합니다. 셋째, 자연과 동반자 의식을 가져야합니다. 자연은 하나님의 정원이요, 우리와 후대를 위해 준비해 주신 축복의 선물임을 믿고 살아가야 합니다.
천병상 시인은 ‘귀천’에서 인생을 소풍에 비유했습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언젠가 하나님 뵐 날을 생각하며 창조 질서회복을 위한 실천에 동참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 나에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회복은 무엇이며, 그 방법은 무엇일까요?
- 복음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 내게 부족한 것이 있는지 생각해봅시다.
- 환경회복을 위해 결단하고, 내가 실천해야할 항목들을 정리해 봅시다.

 
   
   
 

창조주 하나님, 우리를 지으시고 만물을 다스리라 하셨지만, 이 지구와 환경을 잘못 다스림으로 어려움이 많습니다. 책임을 다하지 못한 불충함을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사람들로 잘 보존하고 회복하는 이 사명 감당케 하시옵소서.

 
   
     
 

사랑의 대상을 분명히 하라

여러분, 이제 사랑의 대상을 분명히 하십시오.
나이가 먹고 신앙의 연륜이 쌓일수록,
분명히 해야 합니다.
베드로처럼, ‘내가 주님을 이 모든 사람들보다 더 사랑합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이 아십니다!’라며
다시 고백하고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직도 내 사랑의 대상이
세상의 정욕과 육체의 자랑거리에 머물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주님의 양 무리들을 치도록
일꾼들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최부옥 목사의 ‘주님의 양을 치려면’에서-

 
     
 
   
 


주님 사랑이 없거나 흐려져 있으면
우리는 모든 것들을 다 잃게 됩니다.
하지만 주님 사랑이 우리 안에 힘 있게 보전되어 있고
역사하고 있으면, 우리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게 됩니다.
진정 주님 사랑만이 힘이요 살 길입니다.
그에 대한 사랑만이 우리를 하나 되게 합니다.
주의 사랑으로 모두가 하나 되어 나아갈 때,
새로운 역사의 무대를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Here is a trustworthy saying that deserves full acceptance: Christ Jesus came into the world to save sinners--of whom I am the worst.in his body is done with sin.

 
       
 
   
  은총교회 정종진 목사
  한가지 부족
   
   




6월 8일 (수)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5:1-8
   
 

1.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2.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3.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런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4.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5.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6.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8.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오늘 우리가 읽은 고린도전서 5장을 보면, 고린도교회 안에서 심각한 죄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전 5:1)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고전 5:2)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고린도교회 안에 음행하며,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바울은 그 사실을 통회하면서, 너희 중에서 그런 사람들을 쫒아내지 않았다고 책망합니다. 왜 바울은 그 사람들을 사랑으로 포옹하라고 말하지 않고, 쫓아내라고 말하는 걸까요?

(고전 5:6)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것은 음행의 죄를 회개하고 끊어버리지 못하고 끌려 다니고 있는 사람들로 인해서 죄가 누룩처럼 퍼져나가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인 가운데서도 ‘죄를 범하지 말라’는 말 듣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습니다. 심지어 ‘회개하라’는 말에 대해서 과민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죄를 범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우리가 죄를 범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이 거룩하게 됩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거룩하게 되고 영화롭게 되기 위해서 어떤 존재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죄를 범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득이 될 것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죄를 범하지 말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위한 말씀’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서 주시는 말씀’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죄를 범해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 때, 어떤 감정이 들었습니까? 마음이 평안하고, 생명과 진리를 맛보았습니까? 아니면, 죄책감과 두려움으로 본래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평강을 잃어버리고 살았습니까?

아마도 후자였을 것입니다. 죄가 드러날까 봐 두렵기도 하고, 죄책감으로 스스로를 자책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죄를 가까이 하면서 살아갑니다. 죄에서 돌이키지 못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7장 19절에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 안에서 죄의 작은 누룩, 묵은 누룩이 나타났을 때, 그것을 내버려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그것을 내 힘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바울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을 의지하고 ‘작은 죄라도 민감한 심령’을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주시는 진정한 평안과 기쁨, 은혜를 체험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나에게 오는 죄의 유혹을 뿌리치고 승리한 것을 적어보면 어떨까요?
매일 죄의 유혹을 성령의 능력으로 이겨나가는 훈련이 바로 경건의 훈련이 아닐까요?

 
   
   
 

- 내 안에 있는 죄의 속성과 뿌리를 바라보면서, 그 모든 죄에서 자유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또한 가족과 나와 함께 하는 공동체 안에서 그 죄가 물러가도록 기도합시다.
- 이 땅에 죄의 관영함을 회개하고, 교회를 바라보면서 중보기도 합시다.

 
   
     
 

천둥번개 영성, 햇살의 영성

천둥번개 영성은 ‘급하고 강한 바람’이 지나간 후에 허전하다.
바람은 일회성이다.
그리스도인은 한 번 체험하는 은사가 아닌 일상성을 추구한다.
더 중요한 것은 집단이 아닌 하나님과의 개인적 만남이다.
말씀과 일대 일의 교제이다.
나의 일상 속에서 나의 감수성으로 만날 수 있는
햇살같이 고요하고 잔잔한 내면의 체험이다.
천둥번개 같은 한 번의 체험이 아니라
소리 없이 내리는 은혜로운 말씀을 선택하고 집중한다.
우리의 속사람은 한꺼번에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꾸준히 먹을 때 성숙하는 것이다
-정대운 목사의 ‘양과 밀알의 영성’에서-

 
     
 
   
 


햇살의 영성은 비둘기 같이 온유한 성령 체험,
그 성령 안에서 말씀과의 뜨거운 만남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하고 집중하면 귀가 열립니다.
마음의 할례가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해지면
주님을 사랑하고, 순종합니다.
그때 우리는 햇살 같은 영성으로 매일매일 자라나서
사랑과 은혜의 그리스도인으로 성숙해가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4: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Have nothing to do with godless myths and old wives' tales; rather, train yourself to be godly.

 
       
 
   
  사랑과평화의교회 박상혁 목사
  예수님의 부활
   
   




6월 6일 (월)
크리스천 부모로 살아가기 마가 10:13~16
   
 

13.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16.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부모들의 고민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의 자녀들을 믿음 안에 굳게 세울 수 있겠느냐 일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자녀들의 신앙교육 가능할까요? 다른 육신적, 정신적 것은 몰라도 이 영적인 문제는 개개인의 문제이기에 바르게 지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한다면 부모로서 직무유기가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사는 청지기입니다. 생명, 건강, 물질, 재능, 자녀, 복음 ... 주인이 위임한 내용들을 가지고 나는 관리자로 내 것이 아니고 당신의 것으로 장사 잘해야 합니다. 달란트 비유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욕심 부리지 말고 비교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마25장).
크리스천 부모로서 먼 할일은 은혜의 현장으로 자녀들과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13). 본문을 보면 예수께서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려오는 사람들은 그 아이들의 부모들입니다. 부모들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됩니다. 그들 중에는 실제로 예수님의 은혜와 능력을 체험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보고 듣고 체험한 은혜들을 자녀들에게도 허락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들처럼 자녀들의 손을 붙잡고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적극성을 배워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부활의 신앙만이 이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내가 만나고 체험한 이 복음, 이 예수, 우리의 자녀들도 만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걸어 자녀들을 주님께로, 은혜의 강가로 인도해야 합니다.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 어떤 것보다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합니다(롬10:17).
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자녀들과 함께 공유해야 합니다(14). 이 말씀은 제자들을 꾸짖는 말씀이지만, 가정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으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숨은 의도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부모들인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구별된 은총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탐욕적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거룩한 세대가 되기 위해서 부모들은 이 세상에서의 성공에 대한 갈망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리고 크리스천의 부모들은 자녀들을 날마다 축복해야 합니다(16). 이 장면을 연상해보면, 예수님이 안고,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는 행위가 일회적이고 특별한 행위가 아닌 지극히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모습을 보여주시며 하나님이 주신 축복권을 부모의 영적 권위로 일상의 삶에 사용할 것을 간접적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부모들의 축복이 예수님과 동일한 능력은 아닐지라도 자녀들에게 최고의 선물이 될 것입니다. 믿음의 선진들, 특히 야곱의 자녀를 위한 축복이 실제로 그 후손들에게 이루어진 것처럼, 주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축복의 기도가 실제로 자녀들의 미래를 바뀌게 될 것입니다.

 
   
   
 

- 나는 자녀에 대한 청지기의 직분을 잘 감당하고 있는지 점검해 봅시다.
- 자녀들과 함께 은혜의 현장으로 나아가는데 장애는 무엇입니까?
- 크리스천의 부모로 자녀들을 날마다 축복하기로 결단하시고 실천해 보세요.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이 가정의 달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모든 것의 공급자되시는 하나님안에서 우리의 가정을 새롭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자녀들을 지켜주시고 주의 나라의 일군으로 세워주시옵소서. 주의 집에 뿌리내린 믿음의 사람들되게 하옵소서.

 
   
     
 

세상만사가 헛된 줄 알 때

우리는 흔히 무엇이 헛되이 돌아갔을 때
“물거품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전도서에서는 세상만사를 물거품처럼 생각합니다.
가만 보면 세상만사가 물거품과 같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오로지 ‘나’를 위해 삽니다만,
그 ‘나’라는 놈 역시 언젠가는 흙 속으로 사라져갈 놈이지요.
아니 이미 흙의 도움을 받아 사는 흙과 같은 존재이지요.
그걸 모르고 영원하기라도 할 것인 냥 집착하며 사는 게 문제랄까요.
꿈이 곧 깨어질 꿈인 줄 모르기에 꿈속에 있으면서
걱정하고 불안하고 떨고 그러는 것이지요.
우리가 꿈을 꿀 때 정말 그것이 꿈인 줄 안다면
그 꿈을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 이찬수 목사의 ‘진짜 새로운 것’에서-

 
     
 
   
 


세상만사가 헛된 줄 알 때 세상을
제대로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것을 깨닫고 나면
세상만사를 제대로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만 보면 무상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전도서의 진리도 이와 통합니다.
헛된 것을 헛된 것으로 볼 줄 알아야
세상에 속박되지 않으면서
세상을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15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Neither circumcision nor uncircumcision means anything; what counts is a new creation.

 
       
 
   
  신일교회 배석찬 목사
  기다리는 자의 성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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