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시인 한하운(韓何雲)
“전략(前略)
태평양 전쟁의 전세는 일본 본토에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내 몸에 이상이 오는 것을 느꼈다. 결절이 콩알 같이 스물스물 몸의 양역에 울뚝울뚝 나타나는 것이었다. 검은 눈썹은 자고 나면 자꾸만 없어진다. 코가 막혀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말은 코 먹은 소리다. 거울을 보니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바로 문둥이 그 화상이었다. 기절할 노릇이다. 결절은 팔, 다리, 얼굴 할 것 없이 나날이 기하급수로 단말마의 발악처럼 퍼지는 것이었다. 이곳저곳에서 쑥덕쑥덕 한다.
하루는 상사가 부른다. “문둥병이 아닌가?”라고 묻는다. 빨리 치료를 하라는 것이었다. 이제는 그만이다. ‘세상아, 잘 있거라!’ 하면서 나는 창황히 집으로 돌아왔다.
고향땅 함흥에 돌아왔으나 이 꼴로 집에 들어갈 수가 없다. 더욱 동리 사람의 눈이 무서워서 도저히 밝은 낮에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진종일 밤이 오기를 기다렸다. 사람이 안 다니는 들에서 종일 굶으며 기다려야 했다. 이제는 정말로 문둥이 된 설움이 가슴을 찢는다. 문둥이 생활로 입학하는 분함과 서러움에 하루 종일 잔디에서 울었다. 내가 나를 생각해 보아도 내 값이 정말로 한 푼어치도 되지 않는 것 같다. 이제는 인간 폐업령이 내려졌다. 나는 원한의 피를 토하며 통곡하였다. 몇 백 번 고쳐 죽어도 자욱자욱 피맺힌 서러움과 뉘우침이 가득 찬 문둥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후략(後略)“
문둥병 시인 한하운이 남긴 말을 찾을 수 없어 그의 자전기인 ‘나의 반세기’의 일부(위의 글)를 유언으로 대신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한하운은 문둥병시인으로 그 독특한 서정(抒情)에 담은 비극의 묘사가 자못 읽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후보로 해마다 오르는 고은(高銀) 시인은 어려서 한하운의 시를 읽고 너무나 감동하여 시인이 되기로 결심 하고 시인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천재가 다른 천재에게 시적 영감을 주었고 그 영감은 받은 소년은 이제 세계적인 시인이 되었습니다.
한 시인은 1919년 함경남도 함주에서 태어나 1937 이리 농림학교를 졸업하고 1943년 북경대학 농학원을 졸업하고 1944년 함경남도 도청 축산과에 취직했으나 그동안 잠복했던 한센씨 병증(病症)이 들어나면서 직장을 사직하고 함흥 집으로 돌아옵니다.
낮에 들어가는 것이 두려워 집근처 잔디밭에 숨어서 밤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종일 울었다고 했습니다. 집에서는 남의 눈이 무서워 벽장 속에 숨어 살았다고 하였습니다.
밥도 용변도 벽장에서 보는 때가 다반사였답니다. 카프카의 ‘변신’을 방불케 합니다.
1947년 그는 함흥에서 서울로 월남합니다. 병도 고치고 시작도 본격적으로 할 의도였습니다. 그러나 해방이후의 서울은 혼란스러워 그가 치료받을 병원도 변변한 것이 없었고
시를 써서 출판사에 가져가면 출판사 직원들은 문둥병자의 원고를 만지지도 않고 내 쫓아내는 일이 계속 되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정음사에서 그의 최초의 시집 ‘한하운 시초’가 발간됩니다. 남쪽의 시인들은 그를 보기만 하면 외면하고 달아나기가 일쑤 였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시라도 문둥이가 쓴 것은 그렇게 저주 받았습니다. 625 직후에는 그가 쓴 ‘전라도 길’이 빨갱이를 찬양하는 시라는 모함을 받아 상당히 곤욕을 치루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강인한 정신은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나병의 치료와 시작을 병행하게
하였습니다. 1960년 드디어 음성 판정을 받고 나병에서 완전히 풀려났습니다.
나병환자들의 보호시설도 만들고 출판사도 경영하면서 활발히 사회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는 젊어서부터 몇 명의 여인이 곁에 있었으나 그의 나병으로 모두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친구의 동생과의 열애는 그의 병으로 식어버렸고 북경대학에서 만난 여인은 그의 나병을 알고는 자살하였다 합니다.
한 하운은 1975년 2월 어느 날 간 경화증으로 별세하였습니다.
다음은 그의 시 두 수입니다.
문둥병 환자에게서 시상이 그것도 아름답고도 서러운 시상이 샘솟는 것이 눈물 겹습니다.
발가락이 떨어져 나간 것을 헌데 딱지가 떨어진 것처럼 태연하게 표현합니다.
그러나 독자가 읽으면서 서럽고 또 서러운데 발가락을 잃은 시인의 본심은 어떠했을까요?
전라도 길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뿐이다
낯선 친구 우리 만나면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황톳길 숨막히는 더윗길
길을 가다 신발을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하나 없고
남은 두 개 발가락 잘릴 때까지
천 리 먼 전라도 길
보리피리
보리 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인환(人寰(인환)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下)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ㄹ 닐니리.
* 인환...인간 * 기산하...산하가 얼마였던가?
옮김 (글/ 강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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