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ree Opinion

[넷향기] 박상희 소장의 "가족이야기를 하기 싫은 사람" 외 1

鶴山 徐 仁 2015. 4. 29. 05:34
가족이야기를 하기 싫은 사람
박상희

제가 여러분들게 질문을 하나 던지고,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여러분께서는, 여러분의 가족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잘 하시는 편입니까? 숨기십니까? 아니면 얘기하시면서 기분이 좋아지시면서 자랑스럽습니까? 창피하시거나 바꿔서 이야기하셔야 합니까? 
재미있게도 이런 설문을 해보면 익명을 전제로 해서, 설문조사의 결과는 이야기하기가 싫다라는 응답이 훨씬 많다고 합니다.
그렇게 우리 현실의 삶이라는 것은 치열하고 사실은 인간의 희노애락이 뭉쳐서 남들에게는 공개하기 싫은, 아프고 창피한 이야기들이 많죠.

저에게도 ‘내 이야기를 숨기고싶다. 과거를 숨기고 싶다. 나를 부정하고 싶다. 내 가정을 부정하고 싶다. 내가 지금 여기까지 왔는데 내 가족이 내 발목을 잡고 있다.’ 라고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한 여성 내담자의 경우에는 정말 유능하고 외모가 화려하고, 정말 튀는 여성이었습니다.
그 여성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자기관리를 잘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매력적으로 보이고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어필하는 것을 체득하였고, 그것에 대해 훈련이 된 여성이었습니다.
근데 이 여성은 순간순간 우울하고, 슬픔이 엄습해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말 무대위에 있는 여주인공같은 그녀를 볼 때마다, 찬사를 보내고 감탄을 보낼 때마다 행복하고 즐거운 느낌을 받았지만 혼자있을 때나, 또는 바쁘지 않을 때는 밀려들어오는 이유없는 슬픔이나 절망감 때문에 무척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그 여성을 상담하면서, 우리가 함께 발견한 것은 이 여성이 너무 많은 것을 숨기고 있기 때문에, 너무 많은 것들을 포장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이 도리어 혼자있는 시간에는 충돌을 일으켜서 원래의 내가 생각하는 나와 만들어진 내가 충돌을 일으켜서 슬프고 힘든 것이었는데요.

근데 참 재미있는 것은, 세상 사람들은 생각보다 다른 사람들의 가족사에 큰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여성의 경우에는 그 이야기를 첫번째로 저에게 불운했던 창피했던 가족이야기를 조심스럽게 털어놓았구요. 그것에 대해서, 사실 솔직히 저는 많이 놀라지 않았고, 제가 놀라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습득하고 흡수해서, 그 여성에게는 또다른 시각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해서 나가서 지인들에게, 또는 자기가 사귀고 있는 연인에게 살짝 자기의 이야기를 해보는 것을 시도했는데, 의외로 사람들이 자기가 생각했던 아주 창피했던 숨겨야 된다고 생각하던 것을 별로 놀라거나 무시하거나 그 사람을 깍아 내리지 않고, 도리어 그런 환경에서 지금의 너가 된것에 대해서 존경한다는 말을 들음으로써 이 여성이 진정한 자신감을 회복해서 정말 이제는 진짜로 멋진 여성이 되가는 것을 보면서,
내가 숨기고 싶은 내 가족사를 내가 꽁꽁꽁꽁 숨기고 있으면 그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심리 어느 한켠에 남아서, 사람들이 없는 나 혼자 있을 때, 내 존재 그대로가 될 때는 나를 부끄럽게 하고, 이중적으로 괴로움을 주는데,
내가 사람들에게 조금씩 조금씩 다치지 않는 한도내에서 어느 정도 내 진짜 모습, 가족이야기를 조금씩이나마 다치지 않는 한도내에서 할수 있을 때, 사람들에게 수용되는 경험을 통해서, 이 여성이 치유가 된 것처럼 여러분께서도 혹시 숨기고 싶고 창피한 가족이 있다면, 그 가족을 이제는 드러내고 또 이해할수 있는 그런 시간 반드시 필요할 것 같습니다. 

다음 시간에 저는 더 좋은 주제로 여러분들을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육이 아니라 교육입니다.
이병준

안녕하십니까? 부부Fun더하기 이병준입니다.

새해 아침 경복궁에서    
2015년 새해 첫날이었습니다.
신정연휴라 가족나들이 겸 때마침 진주에 사는 처조카가 방학을 맞아 우리 집에 놀러와 있었기에 서울 구경도 시킬 겸 경복궁으로 향했습니다. 때마침 불어 닥친 한파로 꽤 추웠는데도 우리처럼 가족나들이를 나온 사람들과 단체 관광 중인 중국인들과 일본인들, 외국인들까지 복잡했습니다.
인파에 휩쓸려 근정전을 돌아 경회루 쪽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옆에 있던 딸아이가 “저런 한심한 사람을 봤나? 아휴! 저런 거 보면 한국 사람인 게 쪽 팔려.” 라며 혀를 끌끌 찹니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삼십대 중반의 아이 엄마가 궁궐 담벼락에 서너 살 정도 된 아이의 오줌을 누이고 있었고 중국인과 일본인을 비롯해서 수많은 외국인들이 그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외국인이 남의 나라에 와서 그런 몰상식한 행동을 했다면 그건 일종의 국가 모독죄에 해당하니 개인을 넘어 국가를 상대로 문제제기를 할 만한 사안이니 그럴 리 없을 테고 한국인이 수많은 외국인들이 보는 앞에서 그런 행동을 했다면 그것은 스스로가 국가를 모독한 셈이니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만약 임금이 사는 때였지만 삼족이 죽임을 당하는 중벌에 해당될 죄목이죠.  

가르칠 것을 가르쳐야 한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최근 자녀 문제로 상담실 문을 두드렸던 수많은 부모들의 표정들이 떠올랐습니다.
어릴 때부터 자식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걸 각오로 자식을 길렀던 분들이 성장한 아이로부터 복수를 당하는 기현상을 겪을 땐 어찌할 줄 몰라 막막해하는 표정들 말이죠.
다 큰 자녀가 자기 방 정리하기, 인사하기, 제 시간 식사하고 제 시간 잠자리에 들기, 부모에게 공손하기.. 등등 지극히 기본적인 일조차 하는 않는 까닭에 속 터져 죽겠다는 하소연입니다.
그런 부모들을 워낙 많이 대하다 보니 오줌 누는 그 아이가 성장한 후에 아이 엄마가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 미래가 심히 걱정스러웠습니다.
궁궐답사에 서너 살 박이 아이를 데리고 나온 엄마라면 사전 조치를 먼저 했어야 했지요.
수분을 땀으로 배출하지 않는 겨울철엔 여름에 비해 화장실 가는 빈도수도 더 많아지는 건 어른 아이 구분할 것 없는 자연스런 생리현상입니다.
서너 살 박이 아이들은 밖에 나가 조금만 몸이 힘들면 목마르다는 둥 오줌 마렵다 둥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그 상황을 회피하려 합니다.
더구나 궁궐이 뭣 하는 곳인지 개념도 없는 아이가 그 추운 날 자기에겐 아무런 재미도 없는 곳에 있는 것 자체가 선호자극이 아니라 혐오자극입니다.
그런 곳에 어린 아이를 데리고 온 것도 잘못이지만 사전 준비를 안 한 것은 더 큰 잘못입니다.
설령 데리고 왔다면 관람시간을 계산해서 미리 소변을 누이고, 관람 중에는 소변이 불가하다는 것을 사전에 알려줘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소변보기를 요구한다면 관람을 마치는 시간까진 참게 해야 합니다.
거기서 억지를 과도하게 부린다거나 배탈 설사와 같은 긴급한 일이 발생한 경우라면 관람을 중지하고 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그러나 그 아기 엄마는 아이가 호소하는 지금 당장의 불편함을 해결해 주느라 때와 장소를 구분하지 않은 채 소변을 보게 했습니다.
아이는 결국 참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것이죠.
때와 장소에 대한 거룩함을 배우지 못한 아이가 어떻게 인생을 진지하게 살 수 있을까요?
자기 나라의 존엄이었던 임금이 살았다는 거룩한 공간에서 잠깐의 불편을 참지 못하고 오줌을 누도록 하는 부모는 자녀에 대한 교육철학을 가지고 있을까요?
그 엄마는 스스로 자녀를 위해 ‘헌신’을 했다지만 그것은 헌신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는 물론 아이까지 ‘헌 신짝’ 같은 존재로 만든 어리석은 짓입니다.

어른 안 된 채 결혼하는 부부들 증가
최근의 부부상담 추세를 보면 부모로부터 당연히 받았어야 할 가르침을 받지 못한 채 결혼한 후에 결혼관계를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성장하는 동안에 부모로부터 행동의 가부에 대한 기준과 원칙에 대한 설명을 들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잘못이나 죄의 개념 자체가 없거니와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를 어떤 순서로 처리해야하는지에 대한 개념이 없어 모든 문제의 원인을 상대방 탓으로 돌리거나 문제로부터 도망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논리적으로는 똑똑할지 몰라도 직관과 지혜의 부분에선 그런 바보가 없습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가 반드시 가르칠 것은 가르쳐야 합니다.
그저 먹이고 재우고 학교 보내고 하는 것을 양육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엄밀히 사육이지 양육이 아닙니다.
양육의 수준을 넘어 교육에 이르러야 합니다.
가르칠 것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입니다. 그것도 어릴 때부터 말입니다.
경복궁을 돌아 나오는데 내내 그 아이 엄마에게 성경 잠언에 있는 말씀 한 구절을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전할 이유도 없거니와 전한다 해도 아마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는 결과가 되리라 싶어 그저 쓴 웃음만 지으며 머릿속으로 되뇌기만 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언 22:6).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