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4.28 05:25
-'세월호 구조작업 상세한 설명' 해군 SSU 김진황 대령
"20명 타는 배 2척에 120여명, 2시간 자며 수색
대원들 10㎏씩 빠져… 정말 최선을 다합니다"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열흘째인 25일 진도 실내체육관 연단에 한 군인이 섰다. 장관도 총리도, 심지어 대통령까지 욕을 먹은 그 자리다. 해군 해난구조대(SSU) 구조대장 김진황(50·해사 40기) 대령은 200인치 TV 화면에 세월호 도면을 띄워놓고 실종자 가족들에게 구조 상황을 상세히 설명했다.
"선체 우현에 난 유리창을 통해 내부로 진입, 갯벌에 박혀 있는 좌현 방향으로 나아가며 수색하고 있습니다. 온갖 부유물이 떠다니고 있는 선체 내부는 동서남북도 분간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더 구조를 못 해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김 대령이 긴 설명을 끝내고 거수경례를 하자 실종자 가족들 사이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가족들이 군·경을 포함해 정부 관계자에게 손뼉을 친 것은 지난 17일 박근혜 대통령 방문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선체 우현에 난 유리창을 통해 내부로 진입, 갯벌에 박혀 있는 좌현 방향으로 나아가며 수색하고 있습니다. 온갖 부유물이 떠다니고 있는 선체 내부는 동서남북도 분간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더 구조를 못 해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김 대령이 긴 설명을 끝내고 거수경례를 하자 실종자 가족들 사이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가족들이 군·경을 포함해 정부 관계자에게 손뼉을 친 것은 지난 17일 박근혜 대통령 방문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 브리핑하는 金대령 "천안함 때보다 구조활동 더 어려워" - 지난 25일 진도실내체육관에서
- 해군 해난구조대(SSU) 김진황(오른쪽) 대령이 실종자 가족들에게 브리핑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
"침실은커녕 화장실, 식당 같은 모든 공간이 부족합니다. 중령도 창고나 소파에서 쪽잠을 자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금 사고 해역엔 해군 구조함이 2척 떠 있다. 정원은 각 20명이다. 이 두 배에 해군 장병 120여명이 타고 있다.
사고 해역은 조류가 강할 뿐 아니라 변화도 크다. 하루 네 번 찾아오는 정조 시간도 들쭉날쭉해 예보보다 1시간 일찍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김 대령은 "바다가 잠잠해지는 이 시기를 놓치지 않으려면 대원들이 잠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며 "잠수대원들이 하루 2~3시간씩밖에 못 자고 바다에 뛰어드는 상황"이라 했다. 85㎏씩 나가던 대원들 몸무게가 10㎏ 이상 빠졌다. 잠수병인 질소 중독 때문에 팔다리 마비가 찾아온 대원도 많다고 했다.
인원을 증파하면 안 될까. 김 대령은 "이미 탈탈 털어 왔다"고 했다. 해군은 전군에서 가장 뛰어난 잠수대원 120명을 사고 현장에 보냈다. 김 대령은 그중에서 다시 66명을 추렸다. 큰 구조함 역시 사고 해역에 들어오기 어렵다. 김 대령은 "해역이 비좁고 이미 너무 많은 배가 있기 때문"이라 했다.
이렇다 보니 천하의 SSU 대원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오는 상황이라 했다. "제가 해난구조대를 3년간 지휘하며 온갖 곳을 다 가봤지만 우리 대원들이 불평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무슨 소리냐 하면, 이곳 현장은 상상할 수 없는 극한 환경이라는 것입니다. 과장이 아닙니다."
천안함 구조 작전 때와 지금을 비교해 달라 하니, 김 대령은 "지금이 훨씬 더 어렵다"고 했다. "천안함은 똑바로 해저에 앉았지만, 세월호는 옆으로 누워 있습니다. 또 군함은 부유물이 적고 구조도 단순합니다. 조류는 여기가 훨씬 더 강합니다."
26일 오후 김 대령은 대책 회의에 참석하러 팽목항에 갔다가 길에서 신부(神父)를 만났다. 가톨릭 신자인 김 대령은 지나가는 신부 팔을 붙잡았다. "신부님, 저도 가톨릭 신자입니다. 저 어린 애들을 위해서 기도하시겠지만, 현장에서 고생하는 대원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주십시오." 김 대령은 이 말을 전하며 전화기 너머에서 울먹였다.
최악 환경이지만 김 대령은 대원들에게 별다른 주문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저 눈빛을 마주치고 등 두들겨주는 게 전부다. "겁 안 나는 사람 어디 있겠습니까. 내 몸 지켜줄 잠수복과 공기통, 눈빛만으로 통하는 동료들. 다 압니다. 눈 한번 마주 보고 그냥 가는 겁니다."
그런 그도 지난 23일은 예외였다. 선미 중앙 격실에 여학생 40여명이 모여 있는 걸 확인하고, 그들을 끌어내려고 대원들이 준비하던 때였다. 김 대령은 대원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가서 학생들 만나면 손잡고 '아저씨가 좋은 데로 데려갈게 가자. 우리 여기 있지 말고 같이 나가자' 그런 이야기를 마음으로 하면서 데리고 나와라. 그러면 아마 따라 나올 거다."
무뚝뚝한 아버지 같은 김 대령도 사실은 대원들을 바다에 들여보내 놓고 마음을 졸인다고 했다. "우리 대원들, 세계 어디 내놔도 지지 않는 최고의 대원들입니다. 그런데도 이 바다에 내보내면 마음이 놓이질 않아요. 기도하고 또 기도합니다. 우리 해군 절대 허투루 일하고 있지 않습니다."
27일 풍랑주의보가 내린 사고 해역 파고는 2m, 풍속은 초속 10.4m였지만, 그들은 이 바다를 뚫고 자맥질해 시신 한 구를 건져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