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고위급 접촉 결과에 대한 분석
우리 정부는 2014년 2월 14일 17시에 언론발표를 통해 남북이 판문점에서 열린 고위급 접촉에서 3개 사항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합의사항은 다음과 같다 : ① 남과 북은 이산가족 상봉을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② 남과 북은 상호 이해와 신뢰를 증진시키기 위하여 상대방에 대한 비방과 중상을 하지 않기로 했다. ③ 남과 북은 상호 관심사로 되는 문제들을 계속 협의하며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적극 노력하기로 했으며 상호 편리한 날짜에 고위급 접촉을 갖기로 했다.
우리측 수석대표인 김규현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은 이날 고위급 접촉 결과 브리핑을 통해 “우리 정부 들어 처음으로 개최된 이번 남북 고위급 접촉을 통해 신뢰에 기초한 남북관계 발전의 첫 걸음을 내딛게 된 것을 의미 있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현안에 대해 남북 상호간의 입장차를 확인하기도 했으나 장시간 솔직한 대화를 통해 당면한 이산가족 상봉 행사의 차질 없는 개최와 남북관계 개선 필요성에 대해 인식을 같이했다”고 설명했다.
또 “남과 북은 이번 접촉을 통해 남북 간 주요 관심사항에 대해 격의 없이 의견을 교환했다”며 “특히 우리측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기본 취지와 내용을 북측에 충분하게 설명했고 북측도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기본 취지에 이해를 표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오늘의 결과를 출발점으로 해서 앞으로 남북 당국이 대화를 통해 신뢰를 계속 쌓아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면서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이 차질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계속 착실하게 준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김 1차장은 북측이 우리측의 “우리 대통령의 마음이시니 믿어라”라는 설득에 “대통령이 신뢰를 중시하신다니까 그 말을 믿겠다”며 “통큰 양보”라는 표현을 썼다고 말했다. 북측이 자신들이 통 큰 양보를 했으니 “앞으로 잘해보자”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언론은 북한 입장에서는 꽉 막힌 남북관계의 물꼬를 틀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 외에는 말 그대로 남측에 통 큰 양보를 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북한 입장에서는 이번 접촉에서 실질적으로 얻어가는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많은 양보를 했다”며 “북한은 당장의 실익을 못 얻었지만 남북이 앞으로 대화를 지속하고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하기로 한 것만으로도 대내적으로 악화된 이미지 개선과 정세관리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北, 南 진정성 요구에 ‘통큰 양보’…왜 그랬나”, 연합뉴스, 2014.2.14).
이번 접촉 결과에 문제는 없는가? 아니다. 교훈이 도출되었다.
① 청와대가 북한 통일전선부(우리 통일부)의 대화 상대가 되었다.
우리측은 김규현(62)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이 수석대표로 하고 홍용표 청와대 통일비서관과 손재락 총리실 정책관, 김도균 국방부 북한정책과장(육군대령), 배광복 통일부 회담기획부장 등이 합류했다.
북측은 원동연(67) 노동당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이 수석대표로 하고 김성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 부장과 남북회담 경험이 많은 전종수 조평통 서기국 부국장, 국방위 서기실 정책부장인 리선권 대좌(육군대령급)가 대표단에 포함됐다.
우리 측은 청와대가 주축이고 북한은 우리의 통일부에 해당하는 통전부가 주축이다. 조평통은 통전부 소속이다.
이를 의식한 듯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월 14일 17시4분에 접촉 결과를 발표하면서 “접촉에는 우리측에서 원동연 노동당 부부장을 단장으로 하는 국방위원회 대표단이 참가했다”고 언급, 이번 고위급 접촉에 나선 북한 대표단이 ‘국방위원회 대표단’이라고 처음으로 밝혔다.
뒤늦게 고위급 대표단의 명칭을 북한 헌법상 최고 권력기구인 국방위 대표단으로 공개한 것은 청와대의 카운터파트가 국방위라는 점과 이번에 남과 북의 최고 결정기구가 만났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우리 정부가 고위급 접촉의 수석대표로 김규현 1차장을 선임한 것은 ‘청와대 관계자’를 협상 대표로 지목한 북측의 요청(2014.2.8) 때문이다. 우리는 북측의 의도를 잘 읽지 못하고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격도 맞지 않고 국가 품위를 손상할 소지가 있다.
② 합의서 상 우리가 잃은 것이 많다.
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2013년 9월 25일~30일(금강산) 계획된 것을 북한이 4일 전인 9월 21일 갑자기 취소했다. 북한은 2014년 1월 24일 판문점 적십자 통신선으로 보낸 전통문에서 “(상봉) 날짜는 준비기간을 고려하여 설이 지나 날씨가 풀린 다음 귀측(우리측)이 편리한대로 진행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리고 남북은 2014년 2월 5일 판문점에서 적십자 실무접촉을 갖고 상봉 행사를 2014년 2월 20일~25일 금강산에서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합의 당시 한미연합 연습이 2월 24일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북한은 알고 있었다. 북한이 이번 접촉에서 연습을 상봉행사 이후로 연기하라고 주장하다가 철회한 것은 양보가 아니다.
비방과 중상에 대한 중단 문제는 2010년 5월 24일 우리 정부의 5·24조치를 위반하는 것이다. 당시 정부는 북한에게 천안함 폭침에 대한 사과, 재발방지 약속,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고 대북심리전 재개를 천명했다. 이후 정부는 심리전 일부를 재개했다. 그러나 휴전선 확성기 방송과 전광판은 북한군 협박에 굴복하여 재개를 미루고 있다.
그런데 북한은 아직까지 천안함 폭침에 대해 어떤 사과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우리 정부의 자작극’이라고 억지주장을 하고 있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정부가 대북심리전 약속을 걷어 들이는 것은 북한 억지주장을 수용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고위급 접촉 재개 문제는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③ 수석대표의 전문성 문제다.
북한 수석대표로 나온 원동연은 25년 넘게 대남 협상에 잔뼈가 굵은 자다. 대남 관계를 전담하는 통전부의 ‘넘버 2’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김일성종합대 경제학부 출신으로 1990년 9월 남북고위급회담 북측 수행원으로 대남사업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방북을 포함해 남북간 주요 회담과 접촉에 빠짐없이 관여했다. 2002년 10월 북한 경제시찰단 일원으로, 2007년 11월 김양건 통전부장 수행원 자격으로 서울에 오는 등 한국 방문 경험도 많다. 남북관계가 경색 국면에 빠졌던 이명박 정부 시절 이뤄진 물밑 접촉도 원동원 주도로 이뤄졌다. 2009년 8월 고 김대중 대통령 서거 당시 북한조문단(김기남 비서) 일원으로 서울을 방문했고 그 해 10월 싱가포르에서 이뤄진 남북간 비밀접촉(남북정상회담 추진)에 김양건 부장을 수행해 참가했다.
이에 비해 우리측 수석대표인 김규현 NSC 사무처장은 최근까지 외교부 차관으로 근무한 정통 외무관료다. 서울대 치대 출신으로 1980년 4월 제14회 외무고시로 외무부에 입부했다. 2000년 2월 북미1과장, 2002년 1월 주미국참사관(정무), 2004년 12월 북미국심의관, 2006년 2월 국방부 국제협력관, 2007년 8월 주미국공사(정무), 2009년 12월 장관특별보좌관, 2010년 2월 평가담당대사겸 장관특별보좌관, 2012년 5월 차관보, 2013년 3월 외교부 제1차관 등 북미 업무분야를 중심으로 외교관으로 일했다. 2014년 2월 3일에 NSC사무처장 겸 국가안보실 1차장에 내정되었다.
정부 관계자는 “남북 접촉에는 처음 나서지만, 담대하면서도 빈틈없는 성격이어서 기선제압이 중요한 이번 접촉의 최적임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남북 분야에서 경험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청와대는 남북 고위급 접촉과 관련, 2월 15일 오후에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개최한다고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이 2월 14일 전했다. 회의에서는 김규현 1차장이 접촉과 관련한 보고를 하며, 이를 놓고 북측의 의도 등을 분석하는 한편 향후 대처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합의는 우리가 이산가족 상봉 성사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살피지 못한 것은 없는지 냉정히 되돌아봐야 한다. 도출된 교훈을 반영하여 바로 잡아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동안 대북 분야에서 중시해온 비정상의 정상화를 되살려야 한다. 우리 통일부-북한 통전부 라인으로 복귀해야 한다.
이것이 어렵다면 북한과 같이 통일부전문가를 수석대표로 하면서 청와대 직책 겸무로 하면 될 것이다. 우리 언론이 대북보도에서 위축된다든지 민간인 단체의 방송과 전단 살포를 제한해서도 안 된다.
북한 비핵화와 천안함·연평도 도발에 대한 북한의 합당한 조치가 없는 한 대북지원(쌀, 비료 지원), 금강산 재개, 개성공단 확장 등을 협상의제로 해서는 안 될 것이다.(konas)
김성만 예비역 해군중장(재향군인회 자문위원, 전 해군작전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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